지난 1일 대학로 소재의 SBS '웃찾사 전용관'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신인 개그맨들의 무대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지난 1일 대학로 소재의 SBS '웃찾사 전용관'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아직 개그맨들의 무대가 열리고 있었다. ⓒ 유지영


 신인 개그맨들이 무대가 끝나고 관객들이랑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신인 개그맨들이 무대가 끝나고 관객들이랑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유지영


목표로 바라보던 꿈의 무대가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때의 기분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달 31일 결국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아래 <웃찾사>)가 사라지면서 개그맨 지망생들은 또 하나의 목표를 잃었다. "내가 봐도 요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재미없더라"라는 자조도 흘러나왔다. 이들 역시 최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부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SBS <웃찾사>의 폐지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폐지와는 사뭇 다른 결정이다.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수명을 다하면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이들은 기존에 쌓아온 유명세로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 나서면 되지만 <웃찾사> 같은 신인 개그맨들의 무대가 없어지면 이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당장 2016년 공채로 뽑힌 SBS 신인 개그맨들의 행보에 물음표가 생겼다. 충분히 다 자라기도 전에 인큐베이터가 열려버린 격이다.

또 <웃찾사> 무대는 미래 예능인이나 방송 진행자의 산실이다. 무엇보다 <웃찾사> 혹은 <개그콘서트>를 목표로 대학로 등지에서 개그맨의 꿈을 키우는 미래의 유재석, 미래의 김숙이 있다. 음악 방송 없이 신인 가수가 데뷔할 수 없듯이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없이 신인 개그맨이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통로는 현재로서 확보되지 못했다. 그 어떤 예능도 사람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인 개그맨을 출연자로 쓰지 않는다.

무대에서 하는 공개 코미디를 전문으로 하는 대학로 소극장을 다니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대학로에서 만난 한 지망생은 화가 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개그가 제일 미천하니까 그렇다. 우리가 제일 만만하니까." <웃찾사>가 폐지돼도 이들은 무대에 선다. 그렇게 일하면 하루에 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다.

 개그맨 이용식씨는 19일 오후 4시 40분쯤 목동 SBS 본사 앞에서 SBS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의 폐지에 항의하며 "웃기던 개그맨들이 울고 있다. 한번 더 기회를..."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개그맨 이용식씨는 5월 19일 오후 4시 40분쯤 목동 SBS 본사 앞에서 SBS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의 폐지에 항의하며 "웃기던 개그맨들이 울고 있다. 한번 더 기회를..."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 이용식 제공


"개그할 맛 나지 않는다"

대학로에 있는 SBS 웃찾사 전용관, <웃찾사>가 폐지된다고 발표된 이후 이곳에서는 개그맨들을 볼 수 없다. 대신 신인 개그맨을 꿈꾸는 지망생들이 무대를 채웠다. 28살 이소룡(가명)씨는 "사실 개그를 할 맛이 나지 않는다. 공개 코미디를 위해 그간 준비를 해왔는데 무대가 아예 없어지다 보니"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개그맨의 꿈을 꾸고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도, 몇 년째 '지망생'이라는 유예 딱지를 붙이고 '개그맨 공채'라는 좁은 문을 뚫어보고자 했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재훈(29)씨는 "공채 시험을 볼 수 있는 곳이 SBS와 KBS 두 군데 있었는데 그중 50%가 줄어버렸다. 나이 많은 사람 입장에서 시험 칠 수 있는 곳도 별로 없다"라면서 막막함을 토로했다. 한편, 무대에 오른 지 이제 2년이 됐다는 남예진(24)씨는 "다들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다. 최종 목표인데 갈 곳이 없어지니까"라고 말했다.

갈갈이홀에서 개그맨의 꿈을 키우는 박원준(26)씨는 <웃찾사> 폐지에 관해 묻자 한숨을 크게 쉬었다.

"지망생 입장에서는 방송국에 무조건 가야 한다. 지금 26살인데 다 포기하고 여기(대학로)에 왔다. 오로지 개그맨을 하려고 왔는데. 많이 힘들다.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는 것 자체가 많이 힘든 것 같다. 사실 집에서 울었다."

 SBS <웃찾사>에 출연하던 신인 개그맨들은 이제 갈 곳이 막막해져버렸다.

SBS <웃찾사>에 출연하던 신인 개그맨들은 이제 갈 곳이 막막해져버렸다. ⓒ SBS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공개 코미디가 쇠퇴하고 있다는 세간의 지적에는 모두 동의했다. "10년 전 15년 전 했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관객들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고 장재우(30)씨는 말한다. 이들이 코미디 쇠퇴 배경으로 꼽은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SNS의 발달이다.

황현홍(28)씨는 "변명을 하자면 시대를 잘못 만난 것 같다. 다들 SNS 하지 누가 요즘 한 시간 동안 앉아서 TV를 보나"라고 지적했다. 또 "그러니 시청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방송국 입장에서도 손을 놓아버릴 수밖에"라고 말한다. 그는 자조적으로 "한국에서 뜨는 것보다 중국어를 배워 한국에서 짰던 코너로 중국에서 개그 하는 게 더 빨리 뜰 것 같다"며 웃었다.

소재에 제약이 많다는 지적도 반복적으로 나왔다. 이민지(가명)씨는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20·30대로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에서 본 자극적인 걸 좋아하니까. 조미료를 엄청 먹었는데 <개그콘서트>나 <웃찾사> 같은 건 당연히 맛이 약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시청률의 논리만으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한 지망생은 공개 코미디의 풍자 기능을 언급했다.

"예를 들면 <개그콘서트>의 '대통형' 같은 정치를 풍자하는 코너. 그 시간만큼은 정치도 풍자할 수 있다. 예능과 달리 무대 코미디는 사회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개그콘서트>의 코너 '대통형'.

<개그콘서트>의 코너 '대통형'. 사회 풍자 코미디가 속속 돌아왔다. 코미디 무대에서만 구현 가능한 영역이 분명 있다. ⓒ KBS


"정말 계급장 떼고 붙어봤으면"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미정이다. 여러 선배 개그맨들의 우려 속에도 결국 <웃찾사>는 폐지됐고 신인 개그맨들은 무대를 잃었다. 900회를 맞아 시청률 반등에 나섰던 <개그콘서트>를 향한 시청자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 않다. 당장 새코너가 들어서고 예상했던 수준의 재미를 주지 못하자 "<웃찾사>에 이어 <개그콘서트>까지 없어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한 피디는 <오마이뉴스>에 "<웃찾사>는 잘 나갈 때는 잘 나간다는 이유로 못 나갈 때는 못 나간다는 이유로 계속 편성 시간대를 옮겼다"고 말했다. <웃찾사>는 장수 프로그램이었으나 시간대에서만큼은 전혀 '장수'가 아니었다.

"사실 방송국의 논리는 시청률이 안 나오는 프로그램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건데 그런 논리라면 절반 이상 없애야 한다. <인기가요>는 왜 하고 있으며 교양 프로그램은 왜 유지하나. 보호를 해줘야 하는 콘텐츠인데 톱스타가 없으니 장기판 졸처럼 계속 편성에서 밀린다. 드라마 작가가 자기들 편성시간 좋은 거 달라고 하면 그 시간 날리는 거고. 이런 게 계속 반복됐다."

그는 제작진이 계속 교체가 되는 것도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가진 문제라고 주장했다.

"애정을 갖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싶으면 버라이어티 가라고 하고 급하니까 다른 거 기획하라고 하고. 연속성을 갖기 어렵다. 그래도 SBS가 웃찾사 소극장도 만드는 등 투자를 하는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회사가 못하겠다고 자빠지니까 개그맨들의 충격이 큰 거다."

 10일 오후 KBS 별관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900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개그맨들이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900회를 맞아 5월 14일부터 3주 연속으로 900회 특집을 마련해 공개 코미디의 반등을 노릴 계획이다. 3주 동안 이어지는 <개그콘서트> 900회 특집에는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 김준호와 김대희, 유세윤과 강유미, 그리고 유재석과 배우 남궁민, 가수 트와이스 등이 출연한다.

ⓒ KBS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개그맨 지망생들은 꿈을 꾼다. 장재우(30)씨는 "<웃찾사> 폐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지만 어떻게 보자면 개그맨이 자립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는 "개그 자체를 더 가치 있게끔 만드는 건 우리의 몫이라 본다"며 "조만간 대학로에 있는 코미디 전용 극장들이 연합해 하나의 공연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말 메이커나 브랜드 다 떼고 대한민국 개그맨이라는 이름 하나로 시청자들 앞에 설 수 있는 무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말했다. "저희는 1년에 한 번 공채 시험 3분 동안 노출된다. 1년에 한 번, 정말 잘하는 친구도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는 우리만의 가치 있는 리그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가능성이 있다."

개그맨 웃찾사 공개 코미디 개그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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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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