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4일, 한 천재가 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아직 47세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였다. 그렇기에 팬들이 받은 충격 역시 대단했다. 그의 이름은 콘 사토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유명세를 떨친 애니메이션계의 대가였다.

콘 사토시 감독은 한국에서는 주로 <천년여우>(2001)라는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한 여배우의 1000여년에 걸친 사랑 이야기를 테마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뛰어난 액자식 구성 방식으로 풀어내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내었다.

<천년여우>는 본래 일본 감독들이 뛰어남을 보이는 서정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애니메이션 영화'이기에 가능한 여러 기법들 - 가령 시공간의 경계를 잊은 채 작중 인물들이 자연스레 조우하고 대화하는 것-을 차용함으로서 신선함까지 잡아내었다. 처음 국내 스크린에 소개되었을 당시에는 10개의 관에서 6천여명 정도가 관람하였으나, 이후 입소문을 통해 지금까지도 꾸준히 팬을 늘려가고 있다.

그런데 사실 콘 사토시의 일반적 작품 세계는 <천년여우>와는 상당히 괴리가 있다. 그의 첫 영화인 '퍼펙트 블루'(1992)나 국제적 명성을 안겨다 준 '파프리카'(2006), 그리고 유일한 TV 방영용 작품인 '망상 대리인'(2004)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모두 상당히 어둡고도 난해하다.

진지한 주제를 환상적 기법으로 표현한 감독 

 등장인물들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파괴하고픈 현실의 고통과 마주한다

등장인물들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파괴하고픈 현실의 고통과 마주한다 ⓒ 매드하우스


<망상 대리인>은 캐릭터 디자이너인 츠키코가 야구 배트를 들고 롤러를 탄 채 움직이는 의문의 사나이 '소년 배트'에게 길거리 테러를 당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한다. 소년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그녀가 테러의 타깃이 되었는지, 그리고 소년은 잡힐 수 있는지를 둘러싼 미스터리극의 형식을 띤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작품은 콘 사토시 감독의 유일한 TV 방영용 작품으로, 총 1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 감독으로 주로 활동했던 점 때문인지, 각각의 회차는 상당히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옴니버스 작품처럼 구성되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회차는 도입부처럼 소년 배트와 그에게 테러 당한 이들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이다.

얼마 보지 않아 시청자들은 '아,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구나'하고 재인식하게 된다. 그만큼 영화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환상적 기법들을 감독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기 때문이다.

한 인물이 여러 장소에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다거나, 급작스레 사람이 거대한 괴물로 변화하는 등의 형체상의 환상은 일차적이다. 작품 후반부에는 자신들의 '망상'이 구현된 공간 속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들의 발버둥과 그것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끊임없는 과거-현재라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적 배경이 존재했던 공간들 사이의 병치와 중첩으로 표현된다.

압박해온 야구 배트를 직접 든 채, 그 모든 시공간적인 환상과 괴물을 때려부수는 형사의 모습은 <망상 대리인> 전체의 피날레이다. 13개의 옴니버스 내내 이어져온 '망상'의 세계를 일단락 시키는 마침표로 그려진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전형적이지 않은 표현 방법을 택한만큼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현대인을 짓누르고 있는 여러가지 압박들이 하나하나의 옴니버스 이야기마다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리'가 '소년 배트'로부터 테러당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모든 망상과 괴물을 파괴한 것은 그러한 출구없는 '도망'을 끝내고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여러 의견 중 하나일 뿐이고, 또한 작중의 세세한 상징, 비유에 대해서도 여러 코멘트들이 존재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처음에는 재미로 보기 시작하되 이내 깊히 공감하며 주제의식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일면 무거운 내용을 콘 사토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활용해 매우 가볍게 환상의 세계처럼 그려내는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국제 무대에서의 활약과 마지막 유언 

콘 사토시가 처음 발표했던 데뷔작 <퍼펙트 블루>는 처음부터 국제 무대에서 호평을 이끌어 내었다. 한국에서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한 것을 계기로 감독이 직접 방문한 적이 있었고 당시 영화표는 매진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분노의 질주>, <서부의 용자> 등으로 이름을 알린 로저 코먼 감독은 히치콕에 비견하며 찬사를 보내었다. 또한 대런 애러노프스키는 <레퀴어 포 어 드림>이나 <블랙 스완> 등에서 <퍼펙트 블루>의 여러 장면들에 영감을 받은 듯한 장면을 여럿 배치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영상미와 장면의 배치에서 첫 작품에서부터 독특함이 녹아 있었다. 

 영화 <파프리카>

영화 <파프리카> ⓒ 부산국제영화제


마지막 영화로 유작이 되어버린 <파프리카>의 경우도 일본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고베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진출하기도 하였다. 여러 참신한 아이디어들과 표현 기법들이 이 작품에서도 활용되었는데, 이들이 본 작품 이후 비슷한 내용으로 <인셉션>에 등장하기도 하여 <파프리카>를 <인셉션>의 전신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콘 사토시 감독이 세상을 떠나갈 때 남긴 편지는 생전 그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이들의 가슴에 까지도 강한 울림을 던졌다. 자신이 떠남으로 곤란해질 동료들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가장 큰 미련은 영화 <꿈꾸는 기계>이다"라며 아직 완성해 내지 못했던 작품(영화 <꿈꾸는 기계>)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을 짙게 한탄하였기 때문이다.   

아직 한창 재능을 꽃피우던 중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작품들을 발판 삼아 세계 곳곳에 새로운 감독들이 꾸준히 탄생해 나갈 것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역시 더 넓은 폭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그려내었던 천재의 죽음은, 너무 빨랐지만 또한 많은 씨앗을 이미 뿌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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