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더 헌트>

ⓒ (주)엣나인필름


영화 <더 헌트>를 봤다. 이 영화처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기분 차이가 이렇게 큰 영화가 또 있을까 싶었다. 혼자 보기에 제격일 것 같다는 생각에 보게 된 영화였는데 지금은 이 영화를 보게 된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지고 보지 않은 사람에겐 꼭 권하고 싶은 영화가 돼버렸다. 작품 자체가 대단하다는 건 둘째 치고 일단 주인공의 연기력으로 러닝타임 내내 몰입도를 끌어올렸다는 사실만으로 내용이 어찌 됐건 한 번쯤 볼만한 영화에 속한다.

주인공인 '루카스(매즈 미켈슨)'는 덴마크의 작은 시골 마을 유치원 교사다. 그의 품행은 항상 단정하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그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을법한 품성과 행실을 지녔다.

영화는 초반부터 폭력적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루카스'의 인격을 알 수 있는 단서는 루카스 자신이 아닌 마을 사람들의 눈에 의해 보이는 것뿐이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시선이었다 할지라도 그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는 누구도 알아챌 수 없는 폭력적인 잣대가 있었다. 그것은 '루카스'는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편견. 당사자의 어떤 호소도 들어가 있지 않은 루카스에 대한 편견은 마을 사람들의 신념 속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언제나 원래부터 나빴던 놈의 백 가지 죄보다 원래는 착했던 놈의 단 한 번의 실수가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듯 오류 덩어리의 작은 편견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숨막히는 결말을 낳게 된다.

심지어 루카스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믿음과 '루카스는 선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이 모든 사건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까지 오게 하였다. 루카스는 선했다. 그저 그들의 눈에는 어떤 잘못도 저질러선 안 되는 사람이었고 잘못을 저지른다면 더 큰 실망감을 주는 사람이 될 게 뻔했다. 작은 아이의 질투심에서 일어난 작은 거짓말 하나 때문에 루카스는 엄청난 범죄자가 되었고 그의 가족까지 피해를 보는 지경에 이른다. 이 또한 폭력적인 중반부였다.

 영화 <더 헌트>

ⓒ (주)엣나인필름


사실 여기까지 보면서 가장 많이 화가 났던 인물은 '클라라(루카스를 범죄자로 만든 아이)'였다. 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는지, 그 아이의 말대로 바보 같은 그런 말은 왜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였기 때문에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을 거라는 생각은 사실 조금도 들지 않았다. 클라라는 분명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루카스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며 그 거짓말의 내용 또한 꽤 자극적이었을 거란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임이 분명했다고 본다. 고백을 거절당했을 때의 수치심과 분노 수준이 최고치에 이르렀을 때 했던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아이도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아이도 논란거리의 중심이 될 수 있고 아이도 자극적인 수준의 말을 잘 알고 있을 수 있다. 아이라고 해서 편견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당연한 인물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난 클라라에게 화가 났다. 아이라고 해서 지탄의 대상이 되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그런데 내용이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아이의 말만 믿고 소문을 퍼뜨린 유치원 원장과, 그 원장의 말만을 듣고 한순간에 루카스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그래도 아이보단 어른들의 사리 분별력이 높아야 한다는 기대치 때문이었을까. 루카스와 오래된 우정을 자랑해왔던 사람들마저 그를 향해 돌을 던지고 주먹을 날리고 욕을 퍼붓는 편견 덩어리의 사람들이 돼버린 것에 클라라의 거짓말보단 사람들의 편견이 오히려 더 큰 잘못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심지어 증거가 적절치 못해 무혐의 처리가 돼 다시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차가운 눈길만 줄 뿐이었다. 마치 자신들의 잘못된 믿음이 그대로 실현됐으면 좋았을 법했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경찰 측의 무혐의 처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믿는 사실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루카스는 과거에 어떤 평가를 받았든 그저 마을사람들에게 '친구의 딸인 작은 아이를 성폭행한 파렴치한 인물'일 뿐이었다. 사람들의 자존심은 셌다. 자신들이 믿는 믿음에도 상처가 가지 않기를 바랐고 그것에 대한 반증이 나온다 하더라도 처음에 믿었던 믿음 그 자체를 신봉하길 좋아했다. 루카스는 철저히 피해자가 돼버린 것이다. 그들 눈엔 언제나 가해자로 보였을 테지만 말이다.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클라라가 엄마에게 '내가 바보같은 말을 했어요. 아저씨는 잘못이 없어요'라고 진실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라의 엄마는 '네가 하도 충격을 받아서 너의 무의식이 그 날의 상황을 지워버린 것뿐이야'라고 아이를 달래는 장면이었다. 아이를 달래는 수단치고는 오히려 자신의 아이를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에 세우게 하는 언사로 보인다는 걸 알지 못한 걸까. 정말로 피해를 봐야 마음이 후련한 걸까. 자신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를 봐야 말이다. 어쩌면 클라라가 끝까지 거짓말을 하고 루카스의 억울함을 말하는 눈빛이 마을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기를 바란 건 아니었을까.

 영화 <더 헌트>

ⓒ (주)엣나인필름


마녀사냥엔 근거는 없고 편견만 난무했다. 물론 근거를 찾기 힘든 일이었겠지만, 그렇게밖에 믿을 수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홀로 남겨진 루카스에겐 고통과 외로움의 투쟁으로 보낸 그간의 날들은 사람들의 그 '어쩔 수 없었던' 편견의 대가였고 그것에 대한 대가치고는 참 가혹한 날들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엔 클라라 아빠(루카스의 가장 친한 친구)의 편견이 벗겨지고 루카스와 화해를 한 뒤 루카스가 다시 마을 사람들의 일원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루카스의 아들 마쿠스가 성인이 되는 날로, 마을 어른들이 하던 '사냥'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기도 했다. 모두 축배를 들었고 일상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고, 루카스의 상처 따윈 그저 아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모두 잊고 있던 루카스의 '선한 사람'프레임을 다시 꺼내 든다. 루카스는 다시 그들에게 인품이 대단하고 선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된다.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루카스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루카스는 인간의 본성을 봤다. 인간의 본성이야 여러 부분의 여러 가지 모양이 있겠지만 잘못된 믿음에 자존심을 부려서라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추악한 본성을 본 것이다. 그것을 본 사람은 절대로 예전처럼 다시 편해질 수 없다. 그저 막연한 공포심을 안고 언제도 다시 내쳐질 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 그에 맞는 사람으로 꾸역꾸역 살아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미안함과 머쓱함으로 그저 웃었고 내쳐졌던 루카스를 넓은 마음으로 다시 받아주는 행동을 취하면 되는 것이었다. 루카스는 웃었고 편하지 않았다. 루카스를 내친 곳에도, 그를 다시 받아준 곳에도 그는 없었다.

엔딩 부분까지 와서 긴장을 풀고 있었는데 가장 폭력적이었던 장면이 맨 마지막에 나왔다.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일원으로 돌아왔지만, 그에게 누군가 총구를 겨누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여전히 누군가는 루카스를 어린아이를 범한 파렴치한으로 의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를 향해 겨눠진 총구만은 정확하게 묘사됐다. 오히려 누군지 알 수 없어서 더 잔인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일상 속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감독은 사냥의 대상을 우리 모두로 봤고 사냥의 주체 또한 우리 모두로 봤다고 느껴졌다. 우리 모두 마녀사냥의 주체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이 타인의 편견에 맞춰 행해질 수 있는 당연한 일임을.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를 편견으로 바라봤을 때 그 잘못된 믿음을 쉽게 떨쳐버릴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만 남겨지는 걸 부끄럽지만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이렇게 우리가 부족한 탓은 우리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로 끝을 맺어야 함을 영화를 통해 돌아본다. 인간이 숨을 곳이라곤 인간이라는 타이틀뿐. 항상 숨을 곳을 찾아야 하는 것도 슬프지만, 그곳이 우리의 존재 자체라는 것은 더 숨이 막힌다.

<더 헌트>, 인간이 주체인지 대상인지 분간할 수 없는 영화였다.

 영화 <더 헌트>

ⓒ (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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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사와 문학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과 관찰을 통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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