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 한 장면
이동우 감독
'독립영화의 스캔들' <노후 대책 없다>하지만 나는 <노후 대책 없다>를 서독제를 넘어 '독립영화의 스캔들'과 같은 문제작으로 평하고 싶다. 애초 <노후 대책 없다>에 등장하는 펑크 밴드들은 세속적인 성공과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동우 감독이 속해있는 펑크 밴드 '스컴레이드'는 지난 201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하드코어 펑크 음악 페스티벌 초청 이후, 전세계 펑크 신에서 러브콜을 받는 한류 밴드(?)가 되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극소수의 펑크 마니아들만 아는 듣보잡 밴드다. 역시 영화에서 비중있게 등장 하는 밴드 '파인 더 스팟' 또한 일본에서 활동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아마 <노후 대책 없다> 덕분에 파인 더 스팟, 스컴레이드를 알게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그 중에 나도 들어간다.)
극소수의 마니아들만을 상대로 공연을 하고 음반을 발매하는 이들은 자연스레 음악 활동 외에 또다른 직업을 가진다. 펑크는 좋아서 하는 거고, 또다른 일은 말그대로 생계를 위한 선택이다. 이들은 애초 음악으로 돈을 벌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다. 해외에서 공연 및 음반 발매 요청이 들어온다고 하나, 그들 스스로도 음악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의문이다. <노후 대책 없다>에 등장 하는 펑크 뮤지션들은 늘 불안하고, 그런 자신들을 자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사회 구성원이 대부분 인정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불안하고, 지금 당장은 돈이 많아도 그 나름대로 불안하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스컴레이드, 파인 더 스팟이 활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 펑크신의 기조를 다졌던 뮤지션 선배들 중 해외로 떠난 이들도 몇몇 등장한다. 이동우 감독은 미국으로 떠난 '반란' 보컬과 화상 채팅을 통해 펑크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한 때 진보화된 한국 사회를 열렬히 희망했지만, 지금은 스웨덴에 완전히 정착한 펑크 선배를 만나러 그가 살고 있는 스웨덴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한국이 싫어 미국 혹은 스웨덴으로 이주한 선배 뮤지션들은 일찌감치 해외 활동에 눈을 돌린 스컴레이드와 파인 더 스팟의 미래일 지도 모른다.
이동우 감독을 포함 자신이 속해있는 펑크 뮤지션들의 불안한 일상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은 <노후 대책 없다>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고, 조만간 극장 개봉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극찬 세례를 한 몸에 받은 화제작이라고 한들, 극장 개봉을 통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영역이다.
애초 <노후 대책 없다>가 관객들의 좋은 평가, 국내 영화제 상영과 수상을 노리고 만든 계산적인 영화 였다면, 그 영화를 본 관객들이 지금처럼 <노후 대책 없다>를 열렬히 사랑해주었을까. 이동우 감독은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스컴레이드가 그랬듯이, 그리고 그의 음악적, 정신적 동반자인 친구들이 늘 하던대로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말끝마다 비속어를 남발하고, 매 공연 때마다 과격한 퍼포먼스를 이어가는 이들의 캐릭터가 정말 흔하지 않기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다수의 관객 입장에서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노후 대책 없다>를 더욱 매력적이게 느끼게 하는 요소는 난해한 편집, 촬영, 내러티브 전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팍하고도 강렬한 에너지에 있었다.
만약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작법 기준에서 <노후 대책 없다>를 평가한다면, 이 영화는 엄청난 괴작에 가깝다. 하지만 엉성하게 대충 만들고 자른 것 같은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느껴지는 영화적 기본기는 놀라울 정도로 탄탄하다. 영화 시작에서부터 두서 없이 여러 인물들이 우르르 등장하고 갑자기 사라짐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사실 누가봐도 정신없고, 때로는 이상해 보이는(?) 펑크 뮤지션들을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인식시키는 방식이고, 실제 영화에 더욱 몰입시키는 극적 요소로 작용한다.
적어도 이 영화에는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으니, 어여쁘게 봐주세요" 식의 감성팔이가 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하면서 살아가는 영화 속 뮤지션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삶과 펑크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도 펑크와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는 이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배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