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 앵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Sully, 2016)을 짧게 언급하며 보수의 품격에 관해 이야기 했다.

양쪽 엔진 고장으로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기장의 판단으로 모든 탑승객을 구한 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감독은 영웅 이야기가 아닌 판단을 검증하는 사회 문화와 원칙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최근의 애국집회와 함께 가짜뉴스, 관제데모를 일삼고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었다던 그들이 자기 책임과 도덕성, 약자에 대한 연민과 연대로, 희생하며 책임지며 끝내 지켜내는 보수의 품격을 논할 수 있는지 물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보수주의자다. 그의 영화 <그렌토리노> <아메리칸 스나이퍼> 등에서 일관되게 관통하는 미국적 보수를 이야기해왔다. 스스로 재즈 피아노를 아티스트급으로 연주 가능하다는 감독의 최근작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자세히 보자.

재난 그리고 골든타임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기적과도 같았던 구조, 그리고 그 이후를 다룬다.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기적과도 같았던 구조, 그리고 그 이후를 다룬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는 2009년 1월 15일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뉴욕에서 샬롯으로 출발하는 국내선 항공기 US1549가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한 지 몇 분 만에 새떼와 충돌해 2개의 엔진을 모두 잃게 되고, 기장의 노련한 순발력과 판단력으로 허드슨 강에 무사히 불시착해 탑승객 155명의 생명을 전부 구한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의 스토리다. 기장은 사회적으로 영웅이 되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영웅 만들기를 이야기하진 않는다.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의 트라우마적 상태와 매스컴에 노출되어 불안한 심리의 '설리' 기장을 1인칭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안전위원회로부터 추락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으며 가족과도 만나지 못하고, 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나는 정황들로 인해 자신의 판단이 올바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당시 상황을 함께한 유일한 동료인 부기장의 심리상태도 주인공과 마찬가지인 불면증을 동반한 불안 상태고, 간단한 전화만 가능한 가족도 매스컴에 대한 불안과 경제적 문제에 대한 불안 등 영화 초반엔 주인공과 주변의 심리적 불안에 초점을 맞춘다. 기장도 그 비행기 사고 속에 있었던 한 사람이었다.

영화는 곧이어 사건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실제를 보여준다. 그곳에는 마지막까지 원칙을 지키며 사람들을 지켜낸 '기장'과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에 충실하며 매뉴얼과 원칙대로 행동한 '모두'가 있었다.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과 승객들, 관제사들, 출근 보트의 선원들과 잠수 구조대원까지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원칙을 지켜 사람들을 구해낸 모두의 기적.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의 대사가 없었더라도 영화는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연방 항공국에서 청문회가 이어진다. 인적 요소가 반영된 에어버스 조종사 시뮬레이션 결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는 달랐고, 라과디아 공항이나 테터보로 공항 모두 회항에 실패한다. 조종실 음성 기록을 확인하고 왼편 엔진 회수 결과 엔진은 완전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승무원을 비롯해 새 전문가, 항공 엔지니어를 면담하고,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모든 관계자를 만나본 결과, 기장이 없었으면 실패했을 것이란 결론에 다다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잔잔하게 진정한 영웅이 탄생하고, 그 영웅은 우리 모두의 노력과 기적을 말한다.

'진짜' 보수에 관한 이야기

 기장은 155명 전원 구조 '숫자'에 집착한다. 이게 보수의 품격이다.

기장은 155명 전원 구조 '숫자'에 집착한다. 이게 보수의 품격이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내용 못지않게 영화적 구성도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보수적 구성이 눈에 띈다. 감독은 저렴한 감성적 구성을 택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적적인 실제 사건에서 영웅적 미담은 할리우드의 전통적 휴머니즘 기법으로 흥행영화를 만들기 쉽다. 승객 개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고 사고 상황과 영웅적 미담을 배치하면 관객은 쉽게 공감하고 흥행하는 영화가 된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확정적 사실과 판단의 대사는 최대한 뒤에 배치하고 긴 시간 할애해 관객이 몰입하여 스스로 판단하길 바랐다.

그런데도 무사 사고에 대해서 아플 정도로 끝까지 검증하려 하는 사회문화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다. 영화는 쉽게 선악을 구분 짓지 않는다. 사고를 되짚어봐야 하는 임무를 띤 사람들 또한 그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자 개인의 판단에 사회적 리스크를 담지 않으려는, 시스템을 검증하고 안정성을 확보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 그것이 보수의 가치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회적 시스템이 무너져 버린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일까. 누군가는 청와대 보안시스템을 스스로 무력화시켜 정보를 빼돌렸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골든타임이 이미 지났었다는 말로 안전 시스템의 무력화를 숨기려 한다. 대통령의 7시간이 어찌 되었던 간에 이미 무력화되었던 안전 시스템과 VIP 보고 자료만을 강조하는 그들의 문화는 절대로 대형 사고에 대응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는 보수의 가치,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끝내 지켜내는, 또한 개인의 판단을 최소화하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믿음. 그 뒤에야 비로소 존재하는 영웅과 각자의 자리에서 원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했던 모두.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책임을 지려는 단 한 명이 없는 그들이 보수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것인가. 마지막까지 남아있을지 모를 승객을 챙겨보고, 155명이라는 전원 구조 숫자에 집착하는, 철저히 원칙적인 모습이 보수의 품격이 아닌가.

SULLY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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