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톤 교구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탐사보도한 언론인들의 실화를 담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톤 교구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탐사보도한 언론인들의 실화를 담았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신문사를 배경으로, 혹은 기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이미지들이 있다. 빽빽이 채워진 책상, 그 사이를 가르는 파티션들, 커피잔을 들고 좁은 통로를 휘젓고 다니는 지저분한 머리의 군상들. 그 들은 쉴새 없이 전화를 받고, 서로가 목도했던 기막힌 사건들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1976년 작, <네트워크>의 오프닝 신에 대한 서술이지만 여타 다른 저널리즘을 주제로 한 영화들의 시작 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그 뒤로 펼쳐질 이야기도 다소 예상할 수 있다.

1. 한 기자가 비리를 제보받거나 알게 된다.
2. 외압이 엄청난 이슈라서 본인이나 그의 가족이 협박을 받는다.
3. 갈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취재를 진행한다.
4. 결국, 진실은 승리한다.

위의 4가지 조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가 2016년에 개봉했고, 올해 재개봉 예정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고, 그 '이슈'라는 것이 정치계 인사 비리나 살인사건 등의 흔해 빠진 부류의 것이 아닌 성직자의 아동 성폭행, 그것도 단일 사건이 아닌 87명의 가해자와 200명이 넘는 피해자가 결부된 멀티플 케이스다.

재개봉 앞둔 <스포트라이트>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인 '스포트라이트' 팀.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인 '스포트라이트' 팀. ⓒ (주)더쿱


영화는 <보스턴 글로브> 지를 배경으로 하여 '스포트라이트' 라는 특종 전담팀이 이 케이스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 4명으로 구성된 이 기자들은 다년간의 끈질긴 취재로 87명의 신부뿐만 아니라 사건을 은폐하고 있었던 가톨릭 전체 시스템에 '묵인과 은폐의 죄'를 물음으로써 여론의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퓰리처 상을 받았다.

<스포트라이트>는 일단 배우들의 역량이 뚜렷이 드러나는 영화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관전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배우들이 전문직종의 배역 (PD, 기자, 프로그래머, 작가 등등)을 연기 할 때 그 직업이 가진 스테레오 타입을 연기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경우 배우가 역할에 감기지 않고 그 이미지만을 연기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예를 들어, 기자의 경우 시종일관 바쁘고 신경질적, 형사의 경우 염세적이고 세태에 찌든 말투와 행동, 프로그래머의 '오타쿠'스러움 등 대부분의 경우 상당히 과장 되어 있어서 보고 있노라면 인형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까지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엄연히 '기자들에 관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캐릭터도 '기자'를 연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한 인물을 연기한다. 예를 들어, 한 중견 기자의 은퇴 행사로 시작되는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배우의 저력이 압도적이다. 이 대목에서 스포트라이트의 팀장인 마이클 키튼은 그 특유의 저음과 안정된 발성으로 실제 <보스턴 글로브> 사무실에서 한 20년은 묵었을 만한 일상적이고 정겨운, 평범한 직장인의 작별 스피치로 동료의 은퇴를 '축하'한다.

마이클 키튼의 스피치는 격양되지 않지만, 모두를 주목하게 하고, 그가 읊조린 단어들을 되뇌게 만든다. 그의 어떤 행동도 으레 기자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재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의 전작인 <버드맨>에서의 연기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스포트라이트>는 곁가지에 낭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관습적으로 넣어야 할 장면이나 설정이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 부임한 편집장에게 마이클 키튼이 싱글이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는 그렇다 할 뿐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혹은 왜 보스턴으로 전근 오게 되었는지도 언급하지 않는다. 편집장은 영화에서 조연이지만 그가 성직자 케이스의 재취재를 명령한 인물이기에 그의 역할이 작지 않음에도 작품 전체에서 그에 대한 그 어떤 사적인 배경도 밝혀지지 않는다.

곁가지에 낭비하지 않는 영화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출연 배우들. 왼쪽 부터 마이클 키튼(월터 로빈슨 역), 리브 슈라이버(마티 배런역), 마크 러팔로(마이크 레젠데스 역), 레이첼 맥아담스(샤샤 파이퍼 역), 존 슬래터리(벤 브래들리 주니어 역), 브라이언 달시 제임스(맷 캐롤 역)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출연 배우들. 왼쪽 부터 마이클 키튼(월터 로빈슨 역), 리브 슈라이버(마티 배런역), 마크 러팔로(마이크 레젠데스 역), 레이첼 맥아담스(샤샤 파이퍼 역), 존 슬래터리(벤 브래들리 주니어 역), 브라이언 달시 제임스(맷 캐롤 역) ⓒ 더쿱


이는 다른 주요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이 나누는 작은 농담 ("일요일에도 사무실 나오면 와이프가 안 싫어해?") 이나 결혼반지 등으로 그들의 사생활을 추측해 보지만 영화는 그 어떤 작은 디테일도 유의미하지 않은 것에 낭비하지 않는다. 이러한 요소는 많은 한국 상업영화에서 가족관계에 대한 디테일이나 억지스러운 유머, 신파 설정을 기본적으로 '끼워 넣는' 것과는 대조적인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스포트라이트>에선 무엇이 유의미한가? 바로 증언이다. 이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실관계를 파헤치는 기자들의 증언과 그 증언들이 전달될 당시의 생생한 묘사가 중추를 이루는 영화다. 이 부분에서는 영화적 상상이 실제 증언을 바탕으로 기능 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배신(Betrayal)>이라는 원제를 가진 영화의 원작(책)은 매우 건조하다. 감정적인 수사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대화 글보다는 수치와 날짜, 통계 등의 사실관계의 기록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르포르타주(reportage)의 형식을 따른다.

대조적으로, 영화에서는 증언이 전달되는 당시 상황이 디테일하게 재현되는데 가령 성추행 피해자('신성모독'이라는 단체의 단체장)와 스포트라이트 팀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피해자의 입을 통한 자세한 정황 서술에 주목할 뿐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기자들의 표정과 몸짓 등을 클로즈업을 통해 섬세히 그려낸다.

피해자가 왜 자신이 했던 과거의 피해 제보들은 모두 묵살 당했는지 원망하며 증거들을 모아놓은 상자를 던졌을 때 이를 바라보던 마이클 키튼의 복잡한 표정(팀원들은 모르고 있지만, 그가 과거에 이 사건의 제보를 무시했던 본인이다)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전달된다.

 포스터 속 표정처럼, 영화는 그 표정만으로 말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포스터 속 표정처럼, 영화는 그 표정만으로 말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한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좋은 영화란 "관객이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영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나는 "과하지 않은 영화"라고 자답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트라이트>는 박찬욱 감독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의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는 작품이다.

한 도시에서만 80명의 성직자가 2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성추행했다는 충격적인 주제로도 이미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식이 관객에게 더 가감 없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가 이를 단순 역할극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디테일과 미학적인 미묘함으로 가득 찬 시각적 르포르타주(visual reportage) 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 블로그 잡지 <이리>(http://postyri.blogspot.kr/)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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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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