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상한(?) 뉴스(정확히는 뉴스 프로그램)가 있다. 정해진 '시간'이 돼서 타성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궁금함에 자발적으로 '찾아서' 보는 뉴스다. 요즘 뉴스답지 않게 난데없이 '진실'을 추구한다고 말하고, 자꾸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다며 이리저리 뉴스를 뜯어 살핀다. 어려운 개념이나 분명치 않은 부분이 있으면 거듭해서 되짚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팩트 체크'를 시도한다. 남자 앵커는 '앵커 브리핑'이라는 코너를 통해 매번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시청자의 귀에 쏙쏙 들어가게끔 전달한다.

기자들은 자신만의 롤을 부여받아 적극적인 뉴스 생산자로서 기능하고, 다른 뉴스들이 여자 앵커를 '앵무새' 쯤으로 소비하는 것과 달리 본인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역할과 공간을 마련해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부터다. 뉴스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어떤 보도를 하겠다고 '예고(선전포고)'를 띄우고, 심지어 뉴스의 말미에는 앵커가 직접 선곡한 OST(Original Soundtrack)까지 틀어준다. OST의 핵심은 역시 영화 혹은 드라마의 내용 및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조화(調和)에 있다.

딱 맞아떨어지는 노래선곡

 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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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최초로 최순실씨의 태블릿 PC와 관련한 보도를 터뜨리던 날(10월 24일)에는 '안녕하신가영'의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를 선곡했는데, 이 노래의 가사에는 "예감했던 일들은 꼭 그렇게 되는지 놀랍지도 않지"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지난 16일에는 코어스(The Corrs)의 <Everybody Hurts>를 선곡했는데, 제목을 한국어로 고치면 '모두가 다친다'는 뜻이다. 지금과 같은 시국에, 그리고 그 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절묘한 노래가 또 있을까.

17일에는 루시드폴의 <아직, 있다>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교실에 있을까', '따뜻한 집으로 나 대신 돌아가줘. 돌아가는 길에 하늘만 한 번 봐줘',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주렴' 등의 가사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당일 보도했던 뉴스 가운데 '세월호 관련 청와대 문건'을 공개하면서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여객선 사고'로 규정하는 등 애써 폄하하려 했던 부분을 비판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OST였다.

드라마 형식으로 청와대를 상대하는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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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짐작(을 넘어 확신)하고 있었겠지만, 이 이상한 뉴스의 정체는 바로 JTBC <뉴스룸>이다. '예고'에 'OST'까지, 이쯤이면 '힌트'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 <뉴스룸>은 드라마의 형식을 취한다. 더욱 놀라운 건,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의 '구성'에 있어서도 드라마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특성은 최순실씨의 PC와 관련된 특종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더욱 뚜렷히 나타났다. <뉴스룸>은 청와대와 정면으로 맞붙게 될 뿐만 아니라 나라를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소스'를 확보하고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나의 로드맵(road map)이 완성된 후에는 '스텝 바이 스텝' 단계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모든 카드를 한꺼번에 꺼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드를 보여준 후 상대방의 반응을 살폈다. 가령, 첫 날은 '연설문'까지만 터뜨려 놓고 청와대와 대통령이 '거기'까지만 사과하고 덮으려 하자, 다음 날에는 그 이상의 폭탄을 던져 상대방의 대응을 아예 무력화하는 식이다. 가장 약한 무기를 먼저 보여주고, 상대방을 낚는 지능적이고 고도화된 전술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청와대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청와대의 대응 전략을 살펴보고, 그에 맞게 상황에 맞는 뉴스를 공개하는 <뉴스룸>의 보도 방식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피드백을 통해 내용을 보강, 수정하는 드라마의 성질과 닮아 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를 비롯해 고영태, 차은택 등 주변 인물들의 충격적인 스토리, 박 대통령이 차움병원에서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내용 등 막장 드라마를 우습게 만드는 쇼킹한 뉴스는 그 자체로 재미(?)있지만, '기승전결'이라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을 뉴스에 적용한 <뉴스룸>의 파격적 선택이 이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슬라이드  <뉴스룸> 시청자라는 걸 밝힌 하지원
<뉴스룸> 시청자라는 걸 밝힌 하지원이정민

"사실 저도 저녁을 먹으면서 JTBC <뉴스룸>을 보고 있다가 길라임이라는 이름이 언급된 것을 보고 사실 놀랐다" (하지원)

연예인도 시민인지라 '뉴스'를 봤다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가 저녁을 먹으면서 본 뉴스가 다른 공중파의 뉴스가 아니라 <뉴스룸>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16일 다시 9%를 넘어선 시청률이 그 다음날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SBS <8뉴스>의 4.7%, MBC <뉴스데스크> 4.1%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쯤이면 '신드롬'이라 불릴 만한 현상이다. 권력 앞에 몸을 숙이고, 고개를 조아렸던 다른 언론과 달리 '진실' 앞에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뉴스에 대해 시민들이 보내는 열렬한 화답이다.

의미를 따져보면, '뉴스(news)'는 새로운 사실이나 소식을 뜻한다. 따라서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어제'의 뉴스는 뉴스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더 이상 뉴스가 아닌 셈이다. 이 당연한 개념을 <뉴스룸>은 뒤집어 엎었다. 세월호 국면에서 <뉴스룸>은 '뉴스'의 또 다른 이름이 '기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보여줬다. <뉴스룸>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아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의 뉴스다. 그것이 우리가 이토록 '이상한 뉴스'에 환호하며, 오늘도 '본방사수'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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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능보다 뉴스가 재미있는 시대',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흥미진진한 시대'는 시민의 입장에서 결코 바람직한 시대는 아닐 것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불행한 시대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뉴스'가 아니라 예능을 보며 박장대소를 해야 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쌓여있던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야 한다. 하루빨리 이 괴상한 시대가 종식되기를, 그래서 뉴스가 그저 뉴스인 시대가 다급히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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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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