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출(송강호 분)은 일제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팡질팡 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 추석 극장가를 강타하면서 11일만에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넘었다. 추석 연휴 내내 <밀정>의 예매율은 50%를 넘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이고, 감정의 베일을 벗기고 나면 <밀정>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밀정>은 송강호, 이병헌, 공유, 한지민, 박희순, 신성록 등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특히 일제 강점기 스파이 역할을 했던 '밀정(密偵)'의 색출, 변절과 전향, 그리고 의열단원들의 독립운동 등 긴장감과 처연함이 돋보인다. <밀정>은 일제 치하라는 안개 속에 그림자처럼 살아야 했던 인물들의 절망과 희망을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영어 제목은 '그림자들의 시대(The Age of Shadows)'다. 아울러, 김지운 감독만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미장센은 추석 명절을 맞아 극장가를 찾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디테일한 볼거리 역시 풍부하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조선이 독립될 것 같은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결국 개인의 문제인 사상 전향으로 직결된다. 개인들의 의지가 모여 한 사회를 구성하고, 그 의지들의 집합은 시대의 비극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왜 이정출은 임시정부 통역관에서 조선 경무국 이경부로 전향했다가, 또다시 의열단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분)이 지적하듯 마음의 변화야 말로 가장 무서운 무기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정출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는 의열단과 일본 경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흔들리는 마음을 탁월하게 소화했다. 제국주의가 짙게 깔린 1920년대에 그림자처럼 숨죽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정출이다.
조선의 독립 가능성과 개인의 사상 전향하지만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왜 일까. 만약 <밀정>이 대중성을 배제하고 정말 김지운 감독만의(다운) 지독하고, 냉혹한 감성을 객관적으로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아쉽게도 <밀정>은 상업영화로서의 흥행공식을 일부 차용하다보니 전개상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아마 관객들은 그러한 지점을 슬그머니 흘려버릴 정도로 친일과 반일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