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한 편을 두고 이념적 갈등은 매번 있어 왔다. <변호인>이 그랬고, 지금은 <인천상륙작전>이 그렇다. 논쟁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소모적인 갈등을 부추기고 논점을 흐트러트리는 이들이 있다. ⓒ NEW
[기사 수정 : 9일 오전 10시 40분]약 3년 전 나는 영화 <변호인>을 관람했다. 실존인물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시작 전의 자막에도 불구하고 모두 알다시피 이 영화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겪었던 부림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 논하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당시에 영화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에 주목해 보았다.
지난 2013년 10월 30일, <조선일보>의 온라인 뉴스매체인 <조선닷컴>은 단신 기사를 하나 내보냈다. 내용인즉슨, 보통 특급 배우들은 1년에 한 편 정도의 영화에 출연하곤 하는데, 송강호는 한 해 동안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걸 보니 급전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는 것이다.
"보통 특1급 배우들은 1년에 한편 정도의 영화에 출연하는 정도였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송강호가 '급전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였다. 송강호는 올해만 설국열차와 관상 같은 흥행 대작에 연이어 출연했기 때문이다." - <조선닷컴> '설국열차, 관상 이어 변호인까지... 송강호 연이어 영화출연 "급전 필요한가?"'(2013년 10월 30일) 중에서<조선일보>는 민감한 주제를 다룬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항상 이념적으로 판단해 왔다. 정치적으로 자신들과 맞지 않는 영화라면 비난하는 데 힘을 쏟았고, 그 반대의 영화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내용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추측성 보도, 배우 개인 그리고 그 배우를 아끼는 사람이 들었을 때 무례하다고 느낄 법한 이 문장. 다른 곳도 아닌 <조선일보>에서 뱉은 의도가 의아했다.
"비평을 꺼리면 평론가 타이틀 내려놔라"
▲ 영화 <연평해전>은 그 만듦새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영화가 재미없는 걸 재미없다고 하는데 왜 '이념'을 들먹이는 걸까. ⓒ ㈜로제타시네마
작년 6월 개봉한 <연평해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디어오늘>의 기사(관련 기사 :
조선일보 '연평해전' 마케팅, 감독이 사장 만나 감사인사)에 따르면, 영화 <연평해전>의 개봉날인 2015년 6월 24일부터 2015년 7월 7일까지 '연평해전'으로 검색되는 <조선일보> 지면 기사·칼럼·사설은 48건인 반면. 같은 기간 <중앙일보>는 18건, <동아일보>는 24건이었다. <경향신문>은 8건, <한겨레>는 6건에 불과했다.
<조선일보가> 이 영화에 가지는 애정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김학순 <연평해전> 감독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만나 "<조선일보> 덕분에 <연평해전>이 흥행하고 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할 정도였단다.
회사가 특정 영화의 흥행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며, 이를 칭찬하는 칼럼을 쓰는 배경에는 '이 영화는 온 국민이 당연히 보아야 할 영화'라는 인식이 깔린 게 아닐까. 다른 언론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반면 유독 <조선일보>만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조선일보>의 바람과는 달리, <연평해전>은 만듦새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영화는 부상한 군인의 모습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마냥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나열되면서 높은 점수를 주기에는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를 무시한 채 '당연히 보아야 할 영화'라는 콘셉트 밀어붙이다 보니 <조선일보>는 개인의 취향 문제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 <조선일보>는 영화 <연평해전>과 관련한 카드 뉴스까지 만들어 이념 논쟁을 부추겼다. ⓒ 조선일보
당시 카드뉴스까지 만들어 <변호인> 같은 영화는 칭찬하고 평론을 쓰면서 왜 <연평해전>은 비판만 하거나 관련 글을 쓰지 않느냐는, 거의 '떼쓰기' 수준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위에서 말한 <조선일보>가 <변호인>을 대하는 방식을 고려하면, 단순히 '이 영화에 칭찬을 안 해주는 이유를 모르겠다'를 넘어서 '당연히 칭찬해야 할 영화에 대해 비판 혹은 침묵하고 있는 당신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라는 평을 하는 것이다.
또한, 당시 한현우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은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을 당시와는 반응이 모순적이라는 점을 들어 "곤욕을 피하려고 일부러 <연평해전> 비평을 꺼리는 것이라면 전문가 타이틀을 반납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인으로서의 평론가도 얼마든지 영화의 호불호를 나타낼 권리가 있다. 또 때에 따라서는 아무 말 없이 지나갈 권리도 있다. 그런데 한현우 차장은 무슨 권리로 전문가 타이틀을 내려놓으라는 말을 하는 것인지.
▲ <인천상륙작전>을 혹평한 이동진을 향해 일부 누리꾼의 공격이 이어졌다. 사진은 지난 2013년, SBS <금요일엔 수다다>의 두 진행자로 나섰던 김태훈과 이동진의 사진. ⓒ SBS
상황이 이 정도에 다다르다 보니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연평해전> 논란 당시,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에 별점 2개를 주고 혹평을 했었는데, 그의 블로그에 많은 누리꾼이 몰려와 갖은 비난을 쏟아낸 바 있다. 한현우 부장의 말처럼 '당신이 평론가 자격이 있느냐'라는 인신공격부터 온갖 욕설까지…. 블로그는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과연 이념적으로 판단을 하는 건 어느 쪽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동진 평론가가 최근 <인천상륙작전>에 별점 1개를 주자, 비슷한 논란은 또 반복됐다.
그래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영화에 대한 취향 문제에 이념적 잣대로 타인에게 시비를 거는 행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10점 만점에 3점이라니 영화도 아니라는 것"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천상륙작전>과 관련하여 10점 만점에 3점을 준 일부 평론가들에 대헤 비판했다. ⓒ 홍준표
최근 개봉한 <인천상륙작전> 논란에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불을 키웠다. 지난달 28일 홍 지사는 그의 SNS에서 "인천상륙작전은 보기 드문 수작이다"라고 칭찬하면서 "그런데 일부 평론가들은 10점 만점에 3점을 주었다고 한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혹평을 남긴 평론가들을 비난하는 논조의 말을 이어갔다.
사실 홍준표 도지사가 <인천상륙작전>을 인상 깊게 보았다는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얼마든지 영화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으니. 오히려 영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느냐로 토론을 하는 것은 영화 감상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할 만하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단순히 '아니 이 좋은 영화에 10점 만점에 3점을 준단 말이야? 그게 말이 돼?'라는 태도는 영화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자는 게 아니다. 그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말싸움하겠다는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연 홍준표 도지사의 태도는 <변호인>과 <연평해전>을 바라보는 <조선일보>의 태도와 얼마나 다를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념적 잣대로 영화를 판단하지 말라'라는 말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이념적 잣대로 불필요한 논쟁을 부추기는 쪽은 <인천상륙작전>에 10점 만점에 3점을 준 평론가들이나 <연평해전>을 비판한 사람들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어떻게 <연평해전> (혹은 <인천상륙작전>)을 좋다고 할 수 있느냐 말도 안 된다'라며 높게 평가한 이들을 비난했다면, 같은 차원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눈에서 해당 영화를 비판했을 뿐, 이 영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공격하거나 매도하지 않았다. 단순히 다른 생각을 표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건 과연 누구 쪽인가.
결국 <변호인>부터 <인천상륙작전>까지, 불필요한 이념적 논쟁을 부추기며 개인의 감상을 깎아내리는 쪽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