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트>의 한 장면

영화 <카트>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기를 다룬다. ⓒ 명필름


지난달 28일, 스무 살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1997년생 김군은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들어오는 열차에 부딪혔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는 언론 브리핑에서 "전자운영실과 역무실에 작업 내용을 보고해야 하는데 보고 절차가 생략됐다"며 숨진 김군의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브리핑을 본 사람들은 질타를 쏟아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인 정수영 안전관리본부장은 사과문을 통해 "사고의 원인이 고인의 잘못이 아닌 관리와 시스템의 문제가 주원인임을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당일 브리핑에서 고인에게 책임을 전가해 유가족분들께 깊은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서 한 번 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김군이 숨진 후 유품정리를 하던 중, 김군의 가방에서는 각종 공구 및 수첩들이 나왔다. 그중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 물건이 나왔다. 컵라면이었다. 평소 시간에 쫓겨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김군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가지고 다닌 것이다. 김군은 7개월간 용역업체에서 일하며 약 14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매일매일 녹초가 돼서 퇴근했지만 언젠가 공기업 정규직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했다. 그러나 28일, 김군은 생일을 하루 앞두고 참변을 당했다.

이번 구의역 사고는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김군은 서울메트로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은성PSD 소속이었다. 이 회사는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유지 및 관리를 담당하는 하청업체다. 김군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직종은 조금 다르지만 오늘 소개할 영화도 비정규직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다. 부지영 감독의 2014년 작품 <카트>다.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영화 <카트>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해나간다. ⓒ 명필름


<카트>는 이랜드 홈에버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벌어진 유통업체 계산원 노동자들의 싸움을 극으로 재구성했다. 영화에는 염정아, 문정희, 천우희 등의 여배우와 아이돌그룹 엑소의 멤버인 디오(도경수)가 나와 열연을 펼쳤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실제 일어난 사건과 거의 흡사하다.

<카트>는 직원들이 모두 모여 영업 전 구호를 외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선희(염정아)는 마트 내 손꼽히는 우수 직원이다. 조금 있으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한 가정의 어머니기도 하다. 극 초반부에는 손님과 비정규직 직원의 갈등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불이익을 당해도 참고 넘어간다. 그러던 중 회사가 인수합병을 통해 개편되자 운영진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일괄적으로 해고를 하려 한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독립영화가 아니다. 상업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줬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카트>는 충분히 호평받을 자격이 있다. 지금까지 사회고발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다수 개봉했지만,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흥행과 주제의식을 동시에 이루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카트>는 배우들의 연기와 주제가 잘 맞물려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작중 등장인물 묘사 또한 사실적이어서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규직 전환을 목전에 둔 두 아이의 엄마 선희(염정아), 싱글맘 혜미(문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 88만 원 세대 미진(천우희), 정직원이지만 부당한 현실에 순응하고 싶지 않은 동준(김강우)까지. 우리의 엄마, 누나, 삼촌일 수도 있는 사람이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던 사람들은 왜 투사가 되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용역 깡패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했을까? 영화는 우리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글을 쓰던 6월 1일 아침에도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오전 7시 20분께 경기도 남양주시 지하철 공사현장이 붕괴돼 작업 중이던 근로자 4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근로자들은 당시 공기로 현장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용단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강력한 가스폭발이 발생했고, 공사장이 붕괴됐다.

용단작업은 가스를 사용하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가스가 폭발한 것이다. 이 사고의 사상자 역시 포스코건설의 공사현장에 투입된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용접 자격증조차 없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구의역에서 사고를 당한 김군도, 오늘 아침 남양주 붕괴사고 현장의 근로자들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구의역 사고를 추모하고자 많은 시민들이 온∙오프라인으로 김군을 애도했다. 영화 속 마트의 노동자, 그리고 사고를 당한 김군과 남양주 사고의 인부들은 모두 내 주변의 이웃과 가족이다. 우리 또한 언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지 모르고, 사고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 남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나, 우리를 위해 행동하자는 것이다. 부당한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한다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와 내 아이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영화 속 선희의 대사로 글을 마친다.

"저희가 바라는 건 큰 게 아니에요. 저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덧붙이는 글 강한결 시민기자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글쓰기 콘텐츠 동아리 Critics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Critics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사회 구의역 비정규직 카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림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에서 글쓰기 동아리 Critics를 운영하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고있습니다. 춘천 지역 일간지 춘천사람들과도 동행하고 있습니다. 차후 참 언론인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