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감독 스스로 자신을 '영화광 최씨'라는 캐릭터로 타자화시켜 쓴 <고백할 수 없는>의 영화제작일지이자 영화리뷰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고백할 수 없는>

최인규 감독이 영화 <고백할 수 없는>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4년 전쯤의 일이다. ⓒ 최인규


영화제에서 우연히 알게 된 최 감독이 <고백할 수 없는>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4년 전쯤의 일이다. 그는 유학을 갔다 와서 10여 년간 절치부심 충무로에서 버텼지만, 데뷔작을 쉽게 만들지 못했다. 그는 꾸준히 단편 작업과 시나리오를 병행했지만, 번번이 캐스팅과 투자의 고비를 넘지 못했고 시쳇말로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리스트도 멜로, 스릴러, 호러 등으로 장르별로 다양했다.

비슷한 시기 충무로에서 이력을 시작한 동료들은 하나둘 감독으로 데뷔했거나, 또 많은 이들은 충무로를 등지기 시작했다. 그는 늘 영화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지만, 점점 멀어져만 가는 감독의 길은 그를 고민의 늪으로 빠트렸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그맘때는 그와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2010년께의 일이다. 영화제나 시사회를 통해 지속해서 교류를 나누던 그가 한동안 보이지 않자, 나는 그가 충무로를 떠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개봉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던 작품

2012년 여름. 오랜만에 최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고, 작은 펍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뜻밖에도 그 펍이 자신의 펍이라고 했다. 역시나! 나는 그가 결국엔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했다. 맥주잔을 기울이며 오랜만의 회포를 풀 무렵, 그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얘기를 꺼냈다. 펍에서 맥주를 팔아서 번 돈으로 인디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때 사실 나는 최 감독이 술김에 너스레를 떤 것이라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이후로 가끔 지인들과 최 감독의 펍을 방문했다. 펍은 영화인들로 성시를 이루었고, 최 감독은 늘 취기 어린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그 어렵다는 자영업에 그는 잘 안착한 듯 보였고, 사람 좋아하는 그의 성격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몇 달이 지났을 무렵, 그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고백할 수 없는>이라는 시나리오가 첨부된 메일이었다. 신의 90%를 집이 차지하는 그의 시나리오를 본 순간 미카엘 하네케의 <퍼니 게임> 등 집을 주 무대로 하는 몇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어둡고 시니컬한 느낌의 하우스 스릴러 장르의 시나리오였다. 아버지와 딸, 그리고 딸의 남자 친구의 고백이 한정된 공간인 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짜임새 있는 구성이었지만 대중영화로 보기엔 너무 어둡고, 스케일이 작아 보였다. 그의 말대로 인디영화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이후 그는 펍을 지인에게 맡기고 자신의 애초 계획처럼 <고백할 수 없는>의 프리 프러덕션을 진행해 나갔다. 펍에서 번 돈을 시드머니 삼고 거기다 지인들이 참여한 프렌즈 펀딩(Friends' Funding)을 합쳐 제작비를 조달했다. 그야말로 인디영화이자, 그의 표현대로 핸드메이드 영화였다.

 영화 <고백할 수 없는> 촬영현장

영화는 무더운 여름 더위를 이겨내고 11회 차 촬영을 끝으로 크랭크 업 했다. 사진은 영화 <고백할 수 없는>의 촬영 현장. ⓒ 최인규


<고백할 수 없는>의 주인공, 허세 가득한 윤 감독 역에 성격파 조연 배성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건 2013년 여름이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없는>은 거침없는 행보로 크랭크 인을 향해 달려갔다. 촬영장을 방문한 건 2013년 8월이었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그는 수십 명의 스태프들과 3층짜리 독특한 형태의 집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사운드 레코딩 때문에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는 관계로 모두 탈진한 듯 보였다. 유독 최 감독만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날아다녔다. 그에게 그동안 현장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영화는 그렇게 무더운 여름 더위를 이겨내고 11회 차 촬영을 끝으로 크랭크 업했다. 현장에서 최 감독은 늘 신이 난 표정이었지만, 제작과 감독을 겸했던 탓에 늘 예산에 쪼들렸다. 후반 작업이 1년 넘게 걸렸던 것도 바로 부족한 예산 때문이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결국 영화는 2015년 초반 완성되었고, 최 감독은 감개무량하다는 듯 스탭들과 지인들을 대상으로 기술시사를 열었다. 나도 시사를 통해 최 감독의 데뷔작을 첫 번째 관객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낭보가 날아든 것은 2015년 3월이었다. 영화가 2015년 전주영화제 한국영화 경쟁부문에 선정된 것이다. 개막식 때 배성우 배우와 레드 카펫을 밟고 있는 최 감독의 모습은 오랜 인고의 세월에 대한 작은 보상처럼 보였다.

지난 3월 31일. 결국, 영화는 3년간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개봉했고, 나는 극장을 찾아 최 감독을 응원했다. 평소 강심장인 그였지만 극장 로비에서 그는 노심초사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을 주시했다. 초보 감독의 초조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귓속말로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이제 <고백할 수 없는>의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최 감독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서 <고백할 수 없는>의 시나리오부터 지켜본 지인이자 첫 번째 관객으로서 영화에 대해 몇 마디 정리해 보았다. 영화광으로서 오랜 습관이자 그의 영화에 대한 내 솔직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현실 풍자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고백할 수 없는> 

 영화 <고백할 수 없는> 스틸 사진

영화<고백할 수 없는>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병천과 세영이 한 장소에서 하나의 사건을 말하며 출발한다. ⓒ 최인규


최인규 감독의 데뷔작 <고백할 수 없는>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얼개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삼각형 형태로 캐릭터들이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잘 나가는 영화감독이자 고등학생 딸 나래의 아버지 윤병천이 삼각형의 우변에 위치한다면, 나래의 남자친구이자 '일진'인 이세영은 삼각형의 좌변에 위치한다. 물론 삼각형의 꼭짓점은 영화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캐릭터인 윤나래이다. 삼각형의 우변과 좌변은 그 거리만큼이나 간극이 있다. 병천과 세영은 기성세대와 청소년 세대로 표상되는 세대 간의 간극 그리고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표되는 계층 간의 격차를 대표하는 캐릭터이다.

영화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병천과 세영이 한 장소에서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의 대화는 예상대로 겉돌기만 할뿐 진실의 세계로 수렴되지 않는다. 영화는 병천과 세영이 털어 놓는 '고백할 수 없는 진실'을 뒤쫓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납치와 폭력이 개입되면서 영화는 하드코어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둘의 진검 승부 속에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란 관객의 호기심이 클라이맥스에 달할 무렵, 나래의 고백이 시작되고 삼각형은 그 꼭짓점을 완성한다.

영화는 진실의 정반합을 맞추는 과정을 통해 결말에 도달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과 로만 폴란스키의 <시고니 위버의 진실>의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변주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의 공간인 집은 밖이 보이지 않지만 내부는 전면 유리로 이루어진 폐쇄적이고, 독특한 구조의 공간이다.

가족의 공간인 집은 밖이 보이지 않지만 내부는 전면 유리로 이루어진 폐쇄적이고, 독특한 구조의 공간이다. ⓒ 최인규


영화는 삼각형이 사각형에 갇혀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 사각형의 구도는 영화의 네 번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집'이다. 윤병천의 작업실이자 가족의 공간인 3층짜리 집은 밖이 보이지 않는, 하지만 내부는 전면 유리로 이루어진 폐쇄적이고, 독특한 구조의 공간이다.

이 사각의 공간은 고백해야만 하는 '비밀'이 은폐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삼각의 캐릭터를 구속하고 억누르고 있다. 세 명의 캐릭터가 '고백'을 하지 않으면 벗어 날 수 없는 공간임과 동시에 이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비극적인 희생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쏘우> <큐브>처럼 공간이 캐릭터를 압도하고, 공간이 영화의 미스터리한 톤 앤 매너를 극대화한다.

사각의 공간은 연극적인 미장센이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현관문'을 중심으로 구사되고 있는 트래킹은 영화와 연극의 무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3막 구조의 평면적이고 연극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1막은 병천의 시점에서 진실의 정(正)을, 2막은 세영의 시점에서 반(反)을, 3막은 나래의 시점에서 합(合)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외피 속에 '진실 찾기'를 명분으로 한국사회의 지옥도를 그려내고 있다.

세대 간의 갈등, 계층 간의 반목, 서열화된 학교 교육의 문제, 편부모 가정 문제 등이 <고백할 수 없는>의 쉽게 고백할 수 없는 이슈들인 것이다. 바로 그 사각의 공간은 '지금 한국'이고 그 삼각의 캐릭터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인 것이다.

 영화 <고백할 수 없는> 포스터

영화 <고백할 수 없는> 포스터 ⓒ 더파인트픽쳐스



고백할수없는 배성우 인디영화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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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학생들과 나누는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입니다. 영화가 중심이 되겠지만 제가 관심있는 생활 속에 많은 부분들을 오마이 독자들과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여럿이 다양하게 본 것을 같이 나누면 혼자 보는 것 보다 훨씬 재미있고 삶의 진실에 더 접근하지 않을까요?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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