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영화의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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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 <스물>은 청춘영화다. 영화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 청년의 스물을 그린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정해진 일과를 소화하는 열아홉까지의 삶은 젊음일지언정 청춘은 아니었기에 스무살, 찬란한 청춘에 주목한 것이다.
영화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세 친구가 열망과 절망,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극화되어 담겼다. 감독은 별다른 목표 없이 유흥에만 열중하는 치호(김우빈 분), 가난 속에서 꿈을 위한 공부와 생계를 위한 일을 병행하는 동우(준호 분), 몰래 찾아든 사랑에 혼란스러워 하는 모범생 경재(강하늘 분)의 이야기를 통해 청춘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고민의 순간을 유쾌하게 다루고 있다.
김우빈, 강하늘, 민효린 등 젊고 매력적인 배우를 내세워 B급 코미디를 풀어낸 신선함과 청춘이야기 특유의 발랄함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청춘이 면책의 특권이라도 되는양 좌충우돌 종횡무진하는 대범함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등장인물의 명백한 결함을 가리는 대신 그들의 매력과 젊음을 강조하기를 선택한 솔직함과 과감함도 근래 개봉한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부분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찬란하고 다치기 쉬운 영화 속 청춘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한껏 매료시킨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스무살 청춘은 현실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주인공들이 이 땅의 청춘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방황과 고민, 타협에서는 '진짜'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배우들의 잘 꾸며진 외모처럼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극화된 이야기들이 영화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소속사에 의해 접대를 강요받고 스폰서를 잡아 성공가도를 달리려는 연예인 지망생과의 연애, 교수와 불륜관계인 여선배를 짝사랑하는 대학생,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알바를 전전하지만 쌀을 살 돈도 없이 가난하게 생활하는 청년의 모습은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겠으나 일반적인 스무살 청춘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영화가 그리는 청춘의 인상이란 여대생이 끄는 아우디와도 같다. 짜릿하고 멋스럽지만 보편이 될 수 없는 비현실적 판타지인 것이다. 영화가 반드시 보편의 이야기를 할 필요까진 없겠으나 모두가 겪었거나 겪게 될 '스물'이라는 제목을 가졌다면 보다 있음직한 청춘을 이야기해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청춘의 진실한 성장통을 다룬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까지는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나는 이제 영화에서 받은 불쾌함을 이야기하려 한다. 영화가 유쾌하고 발랄하여 즐거운 감상을 안긴 것도 사실이지만 이로써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 불편함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무례함이었다. 이 영화를 즐겁게 본 이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영화의 무례함을 지적하려 한다. 나아가 무례함을 불편히 여기지 않는 이들의 무신경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나는 이 영화가 무례하며 그 무례함에 응당한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물스물 피어나는 무례함에 대하여
▲스물영화의 한 장면NEW
<스물>은 우선 여성에 대해 무례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을 주변화시키는 이 영화는 단순히 여성을 소외시킬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객체화하고 그로부터 바람직하지 않은 편견을 주입한다. 여성의 외모를 웃음의 소재로 적극 활용하는 건 물론이고 극 중 인물인 소민(전소민 분)과 주인공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아마도 상당수 여성이 불편해 할만한 발언을 농담이랍시고 던지고는 소민에게 이를 받아넘기게끔 한다. 이러한 태도는 소민과 치호가 처음 사귈 때부터 지속적으로 보이는데, 소각장에서 허락없이 소민의 가슴을 만진 치호가 그녀와 사귀게 된다는 설정부터가 그러했다.
끊임없이 무례한 치호의 행동을 소민이 거듭 받아넘기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이러한 무례에 면죄부를 주는 듯도 하다. 하지만 소민이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해서 관객들까지 영화를 문제삼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영화는 피해 당사자인 극 중 인물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는 모습을 통해 이같은 무례함을 무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한다. 타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쾌함을 안기는 행위를 하는 건 무례한 태도임에도 영화는 이를 청춘 특유의 치기와 찌질함 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일쑤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치기와 무례는 다르다. 치기어린 행동은 스스로 반성하면 그만이지만 그로 인해 빚어진 무례는 사과를 구하여야 마땅한 것이다. 명백히 무례한 행위를 스무살의 치기와 찌질함 쯤으로 치부하는 게 관대함이 아님은 물론이다. 실제로 한국의 수많은 건전한 청년들이 이같은 무례를 범하지 않고도 그 젊은 시절을 살아가지 않던가!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가 주인공들에게 성장의 계기를 제공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설정된 점도 문제다. 연예인으로 성공하기 위해 스폰서에게 몸을 파는 여자, 유부남 교수와 불륜행각을 벌이다 도피하는 선배, 다짜고짜 자신의 가슴을 만진 남자와 사귀며 그의 외도를 방치하는 여자로 가득한 이 영화는 결코 우리 모두의 '스물'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영화는 지속적으로 여성상을 왜곡하고 이를 방치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교묘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하게 함으로써 관객에 대해서까지 무례를 범한다. 나는 바로 이 점에서 <스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청춘코미디를 표방한 영화이기에 일부의 문제로 전체를 판단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저 웃고만 넘기기엔 이 영화가 범하고 있는 잘못이 결코 가볍지 않다. 모두의 스물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이 영화가 스물이란 이름의 청춘을 말하는 것이 나는 몹시도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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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