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루더도어>에서 카일 왕자를 연기하는 전재홍
간 프러덕션
- 아버지가 배우 전국환씨다. 아버지는 아들이 뮤지컬하는 것을 어떻게 응원하시는가.
"아버지는 아들이 배우가 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적에는 배우가 되겠다는 별다른 꿈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 음악을 좋아해서 록 밴드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가 홍대 근처였다. 홍대 클럽에서 연주도 해보았다.
밴드를 좋아해서 진로도 실용음악학과를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공부할 게 너무 많았다. 고3이라는 1년 동안 실용음악학과 진학을 위한 공부를 소화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찼다. 연극과에 진학해서 밴드나 콘서트하는 무대 연출을 공부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예대에 원서를 내는 저를 보고 연기를 하리라는 걸 눈치 채셨다.
서술예대에 입학하면 학교에서 공연하는 일이 많아진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어떻게 공연하나 하고 궁금해서 찾아오시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는 재학 시절 제가 공연하는 걸 한 번도 찾아오시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학교 다닐 동안 열심히 공부해라. 나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 너를 보겠다. 네가 연기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졸업 후에 판단하겠다. 만약 연기를 못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 두어라'고 하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한 공연이 <그리스>였다. 이때 아버지가 제가 공연하는 걸 보러 오셨다. 2막에서 싸우는 장면이 있었다. 아버지는 연극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공연을 보시고 저에게 '싸우는 장면에서 네가 조금 더 옆으로 가야지 얼굴에 조명을 받는다'는 충고를 해주셨다. 이런 아버지의 충고가 고맙게 들리면서도 조금 연기를 더 해보라는 맥락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러 작품에서 저를 찾아주셔서 감사하게도 쉼 없이 연기로 달려올 수 있었다.
<쓰루더도어>를 하기 전 송일국 선배님의 연극 <나는 너다>를 공연했다. 한명구 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아버지가 산울림극장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연기할 때 한명구 선생님을 보았다. 그때 한 선생님이 연기하는 게 어쿠스틱 기타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연기적인 울림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워낙 인상적이라 10번 정도 보았다.
그렇게 존경하던 한명구 선생님과 <나는 너다>에서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게 그렇게나 행복했다. 연출을 윤석화 선생님이 맡았고, 박정자 선생님과도 함께 공연할 수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이 공연하는 걸 보러 오시지 않고 한명구 선생님이 공연하는 날에 관람하러 오셨다. 아버지는 아들이 배우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지 궁금했을 것이다. 다행히 한명구 선생님이 저를 좋게 보아주셔서 좋은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해주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는 너다>를 하기 전부터 저에게 '네 또래 배우들과 하는 공연을 아무리 많이 해보았자 소용없다. 어르신과 함께 하는 공연을 많이 해보아야 배우로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고,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너다>를 공연하면서 전에 해주신 아버지의 조언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무대의 대가들과 같은 연습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력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선배 배우들이 해주시는 한 마디 한 마디를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 말을 이해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이 말을 이해해야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중압감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제가 좋은 대로만 연기하다가, 저의 모든 걸 충고 받는 자리에 서면서 '나는 여기에서 선생님들에게 배우러 왔지. 선생님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감사하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하고 <나는 너다>를 끝냈다. 연습실에 서는 자세가 <나는 너다> 전보다 달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