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펀치>에 출연한 배우 조재현

SBS <펀치>에 출연한 배우 조재현 ⓒ SBS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힘들게 정상으로 달려오다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느끼는 또 다른 게 있을 것 같다"며 "나름 인간적인 면이 보였으면 한다"는 배우 조재현의 바람은 반쯤 이뤄졌다. 17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서 그가 연기했던 검찰총장 이태준은 마지막 업무로 법무부장관 윤지숙(최명길 분)의 체포영장에 서명했고, 죽은 박정환(김래원 분)의 영상을 앞에 놓고 술잔을 기울이다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늘 정장을 입고 있던 TV 속 모습과는 달리, 패딩 조끼에 청바지 차림으로 취재진을 맞이한 그는 방 한 구석 난로에서 꺼낸 군고구마를 내밀었다. 영욕의 4개월을 살았던 이태준의 마지막을 앞에 뒀지만, 늘 그랬듯 유쾌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예전에 월화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낼 거라 자신한다고 했잖나"고 입을 연 조재현은 "초반 시청률 꼴찌로 시작했지만, 모두들 더 잘 될 거라 생각했다"며 "촬영 중 유일한 취미가 댓글 보기가 됐다"고는 웃음 지었다.

"'이태준 귀엽다'는 반응, 상상 못했다"

 "<정도전> 이인임과 비교하는 이야기도 있던데, 이인임이 이태준에 비해 더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태준은 상처도 더 많고 콤플렉스도 많은 사람이다. 이인임에 비해 능수능란함은 부족했지만, 잡초 기질만은 더 강했던 것 같다."

"<정도전> 이인임과 비교하는 이야기도 있던데, 이인임이 이태준에 비해 더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태준은 상처도 더 많고 콤플렉스도 많은 사람이다. 이인임에 비해 능수능란함은 부족했지만, 잡초 기질만은 더 강했던 것 같다." ⓒ SBS


-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백성을 걱정하며 대업을 도모하던 혁명가 정도전을 연기했다. 그에 비하면 180도 다른 이태준의 어떤 모습에 끌렸는지 궁금하다.
"정도전과 상반된다는 점에서 좋았다. 만약 이번에도 정직한 인물을 제안 받았다면 안 했을 거다. 그러면서도 인물을 끌고 가는 힘이 있었다. 너무나도 찌질하게 못 살았던 유년기의 콤플렉스로 오로지 성공하겠다는 욕망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 좋았고, 나쁜 행동을 하면서 '나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한다는 솔직함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 사투리를 쓰는 설정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뿌리를 갖고 끝까지 가겠다'는 이태준의 집념이나 냉혹함이 엿보이는 설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정말 야비하고 냉철한 사람이었다면 말투를 싹 바꿨을 거다. 이태준이 그 억센 사투리를 그대로 쓴다는 건, 내겐 자기 안에 갖고 있는 뜨거움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철저히 냉혹한 인간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었다."

- 그랬는데 어쩌다 시청자 반응은…. (웃음) '귀엽다'는 말들이 많더라. 알고 있었나.
"내가 무슨…(웃음) '이태준이 귀엽게 보일 것'이라 상상하진 못했다. 본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 거지. 이태준이 나쁜 놈이긴 하지만 형제애가 보이면서 설득력을 갖게 됐을 거고, (시청자가) 이 인간을 이해하고 연민하게 되면서 귀여움으로 발전한 게 아닌가 싶다. 댓글에도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이태준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게 있더라. 참 인상에 남는 댓글이지. (웃음)"

 "막상 현장에 준비된 귀마개를 보니 너무 큰 거다! 놀랐다. (웃음) '못하겠다'고 했는데, 감독은 괜찮다고 그냥 하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다."

"막상 현장에 준비된 귀마개를 보니 너무 큰 거다! 놀랐다. (웃음) '못하겠다'고 했는데, 감독은 괜찮다고 그냥 하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다." ⓒ SBS


- 박정환과의 독대에서 커다란 귀마개를 한 채 등장한 장면에선 '그 귀여움이 폭발했다'는 평이다. 시청자 사이에서 '쁘띠총장'이라는 별명도 생겼고. 본인의 애드리브였다고 하던데.
"(귀마개를 쓴) 첫 번째 의도는 굉장히 단순했다. 추웠다. 대본이 나온 걸 보고 내 실장(매니저)에게 '둔치로 나간다는데 큰일났다, 내복은 준비했냐'고 하다가 얼떨결에 귀마개를 떠올린 거였다. 그래놓고 다시 생각하다 보니 박정환에게 솔직한 이태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전까지 이태준은 추워도 춥다고 하지 않았을 거고, 귀마개를 하고 갔어도 (사람을) 만날 땐 뺐을 거다. 하지만 귀마개를 그대로 끼고 만난다는 건 자신의 인간적인 면을 상대방에게 다 보여준다는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감독(이명우 PD)에게 '귀마개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감독도 좋다고 했는데 막상 현장에 준비된 귀마개를 보니 너무 큰 거다! 놀랐다. (웃음) '못하겠다'고 했는데, 감독은 괜찮다고 그냥 하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다. 사실 내가 하자고는 했지만 그 귀마개 때문에 장면이 구축한 분위기를 깰까도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여기서 박경수 작가의 장점이 보이는 게, 늘 다른 이야기(맥락)를 밑에 깔고 간다는 점이다. 찍고 보니 (그 장면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지만 여전히 박정환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너는 나를 알지 않느냐' 하는 마음이 귀마개로 표현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환이니까 (귀마개를) 했던 거지, 그가 아니었으면 안 했을 거다."

- 그러잖아도 박경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대본을) 보면 신이 났다. 대사도 금방 외워지고. 슥 보고 '아~ 뭐야'라는 말이 나오는 대본은 참 안 외워진다. <펀치>의 경우 쪽대본은 아니었어도 반토막씩은 대본이 나왔는데, '나왔어?'라고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다 외워져 있더라. 이 작가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그런 화법들도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력적이었다."

"'짜장면 먹방' 위해 기본 세 그릇씩 먹어...이젠 질린다"

 "사실은 맛없었다. 고기 같은 건 먹고 뱉어도 되는데 짜장면은 몇 번 씹으면 다 넘어가지 않나. 뱉을 수가 없어서 결국은 다 먹었다."

"사실은 맛없었다. 고기 같은 건 먹고 뱉어도 되는데 짜장면은 몇 번 씹으면 다 넘어가지 않나. 뱉을 수가 없어서 결국은 다 먹었다." ⓒ SBS


- '먹방'도 방영 내내 화제가 됐다.
"원래 잘 변하지 않는 게 식습관이다. 아무리 타워팰리스에 산다고 해도 어렸을 때 못 살았던 사람들은 허겁지겁 먹고, 지금 아무리 못 살아도 어렸을 때 풍요롭게 산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 나만 해도 허겁지겁 먹는데, 보면 먹다가 젓가락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유복했던 거지. 젓가락 놓을 시간이 어디 있어! (웃음) 이태준이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모습이 바로 그런 점을 보여주는 거였다."

- 덕분에 '<펀치>를 보니 짜장면이 먹고 싶어진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촬영 당시에 쓰였던 짜장면은 맛이 없었을 것 같은데. 대기하다 보면 불어 터질 때도 있지 않았나.
"중국집 매출이 살벌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웃음) 사실은 맛없었다. 고기 같은 건 먹고 뱉어도 되는데 짜장면은 몇 번 씹으면 다 넘어가지 않나. 뱉을 수가 없어서 결국은 다 먹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마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절대 깨작거리면 안 된다. 캐릭터와 연관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조금 먹고 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런 장면은 오전 2시에 찍더라. 기본 세 그릇씩은 먹었다. 원래 짜장면을 좋아하는데, 질렸다. (웃음) "

- 그 외에 이태준이 먹은 게 많다. 홍어, 파스타, 급기야는 탄 소고기까지 먹었다.
"아…(촬영 당시에) 유난히 탄 고기를 주는데, 대본에서 있으니 먹어야 하지 않나. 결국 그것도 안 뱉고 먹었다."

- 칡뿌리는 보면서도 좀 걱정이었다. 볼 때마다 흙도 묻어있고 푸석푸석한 게, 엄청 맛없어 보이더라.
"사실은 늘 새것이어서 말랑말랑했다. (웃음) 색깔만 그렇게 해서 건조해 보였지. 먹은 것 중에 칡이 가장 맛있었다. 아, 소고기도 맛있긴 했다. 촬영 끝나고 다 같이 먹었다. (웃음)"

 "이태준의 복잡한 심리세계와 화려함을, 동시에 '꼭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넥타이에 담았다."

"이태준의 복잡한 심리세계와 화려함을, 동시에 '꼭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넥타이에 담았다." ⓒ SBS


- 촬영 뒷이야기가 나온 김에, 얼마 전 공개됐던 메이킹 영상과 관련된 질문도 하겠다. 영상을 보니 이태준의 넥타이 색깔 또한 이태준의 캐릭터를 담은 설정이라고 하던데.
"내가 설정한 거다. 이태준의 복잡한 심리세계와 화려함을, 동시에 '꼭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넥타이에 담았다."

- 동시에 헤어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1회 순박해 보이기까지 했던 이태준이 점점 머리를 세우면서 화려해지더라.
"아, 그건…. (웃음) 헤어를 담당하는 스태프들이 점점 자신감이 생겨서 그렇게 된 거다. 그런데 1회 때 이태준과 종반의 이태준을 보면 좀 다른 것 같긴 하다. 진짜 늙었어! (촬영한 지) 6개월도 안 됐는데 화면으로 보니 정말 늙어버렸더라. 그러게 이런 드라마는 오래 하면 안 된다. 팍 늙을 것 같다. (웃음)"

[인터뷰 ②] 조재현 "딸과 예능 출연...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펀치 조재현 김래원 정도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