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송권과 앙상블배우 박송권과 앙상블 연기자들이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지난 14일 커튼콜에서, 넘버 '인간은'을 다시 열창하고 있다. 노예의 장을 연기한 박송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나, 비중 자체가 워낙 곁가지인지라 전체 이야기에 녹아들지 못한다.
곽우신
그나마 이 극에서 가장 훌륭한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는 건, 조연인 노예의 장이다. 이름도 없는 노예장 캐릭터는 1막과 2막에서 각각 '검다는 것'과 '인간은'이라는 넘버를 부른다. 웅장한 멜로디에 애절한 가사, 앙상블과의 힘 있는 합창이 어우러져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마가 뒷받침하는 소울풍의 화음도 착착 감긴다.
그러나 정작 노예장을 위한 스토리나 에피소드는 전혀 없다. 그냥 갑자기 튀어 나와서 남부 노예들의 고달픈 삶과 불평등한 처우에 대해 절규한다. 이전까지 아무런 장면 묘사도, 설명도 없다. 심지어 노래 두 곡을 제외하면 대사조차 없다. 그러니 노예들이 아무리 자유를 외쳐봐야, 이 작품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소음에 지나지 않게 된다.
노예장과 앙상블의 '인간은'은 커튼콜에서도 불린다. 극이 막을 내리고 극장을 빠져나올 때 뇌리에 남아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정작 극의 이야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인물의 넘버라는 건 아이러니하다. 아무리 뛰어난 노래라도, 작품과 별 연결점도 없는 두 곡을 듣기 위해 14만 원(VIP석 기준)을 지불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는, 26개의 독립된 노래를 부르는 갈라 콘서트 같다.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장르를 넘나드는 넘버들은, 동기부여 없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다니는 인물들 덕택에 오히려 단점으로 다가온다. 토막 난 이야기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각각의 노래는 미려하지만, 작품에 녹아들지 못해 큰 감동을 주는 데 실패한다.
메시지도 산발적으로 퍼진다. 이 극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여러 종류가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인간 평등과 박애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전쟁의 참혹함이 어떻게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릴 수도 있고, 남북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메시지 전달에 실패한다. 메시지의 문제가 아니라, 메신저의 문제다. 극 중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관객의 관심법이 필요할 지경인데, 그가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관객의 마음에 다가오겠는가.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보지 않은 채로, 뮤지컬만 보고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만 가득 찼다. 해외의 수작이 라이선스 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설픈 번역과 어처구니없는 각색으로 인해 망가지는 경우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 정도면 죄질이 심각하다.
그나마 가장 명료하게 다가오는 교훈은, '있을 때 잘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 정도이다. 결국 무대에 남은 건 자신을 사랑한 남자의 마음을 일찍 받아주지 못하고, 그가 떠나는 때에야 뒤늦게 후회하는 한 여자의 어리석은 선택뿐이다. 스칼렛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만을 탐하려다 정작 자신의 바로 옆의 가장 소중한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뒤늦게 깨우치지만, 그가 이별을 결심한 후였다. 그때가 돼서 후회한들, 레트 버틀러의 말마따나 "솔직히, 내 알 바 아니다"
서울에서 막을 내린 이 작품은 오는 3월 17일부터 부산에서 다시 막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