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박유사, 박돈사 감독.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박유사, 박돈사 감독. ⓒ 성의석


일본 교토 우토로 마을에서 요양을 하며 암을 이겨내던 저널리스트가 있었다. 도쿄조선 초급학교를 취재했던 이 해외 리포터는 재일조선인 할머니들이 반겨주던 우토로 마을이 좋았다. 날 좋으면 빨래도 널고, 고추도 말렸다. 하지만 기록자로서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우토로 마을 어귀에 카메라 삼각대를 세웠다. 그때, 키 크고 안경 쓴 한 남자가 앵글로 들어왔다.

<60만번의 트라이>(18일 개봉)를 함께 연출한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첫 만남이었다. 한국인 저널리스트와 재일동포 3세 남성은 그렇게 우연히 조우했고, 한달음에 우토로와 재일동포 문제, 한일 역사와 현안, 페미니즘과 젠더, 영화와 다큐 얘기로 내달렸다. 그 뒤 2년 후인 2010년, '작은 목소리 낮은 시선'을 모토로 디아스포라 재일조선인과 마이너리티로서 재일동포들의 삶을 기록해 나가는 '꼬마프레스'를 결성했다.

두 사람의 만남만큼이나 여러 화두를 품은 <60만번의 트라이>는 전국대회 4강에 진출한 오사카 조고 럭비부 학생들의 활약과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2010년 1월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한 '하나노조' 경기부터 2013년 2월 주인공들의 성인식 장면까지를 담았다. 전체적인 촬영은 약 3년간 럭비부 학생들과 동거동락을 함께한 박사유 감독이 맡았고, 박돈사 감독은 영화 완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조력자 역할을 자임했다.

촬영 이후 개봉까지 기약이 없던 상황에서 두 사람에게 힘을 준 이는 바로 <우리학교>의 김명준 감독과 <그라운드 이방인>의 조은성 PD였다. 60분짜리 500여개의 촬영 테이프를 공들여 편집할 수 있었던 힘은 "무조건 완성해서 한국으로 가라"던 김명준 감독의 조언의 영향이 컸다. 김명준 감독은 지난 2006년 개봉한 <우리학교>를 통해 공동체상영 붐을 일으키며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 문제를 환기시켰던 장본인.

그리하여, 2014년 3월 일본 도쿄 시부야 상영을 시작으로 8개월 장기 순환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18일 개봉 이후 1주일 만에 1만 관객을 돌파하며, <비긴어게인>에 이어 다양성영화 흥행 순위 수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나란히 세월호 리본을 가슴에 단 박사유, 박돈사 감독을 개봉 후 만났다. 일본 내 상황은 주로 박돈사 감독이, 전반적인 이야기는 박사유 감독이 들려줬다.   

왜 일본은 재일조선인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졌나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포스터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포스터 ⓒ 인디스토리

"동포들도 많지만, 특히 일본 사람들이 극장을 많이 찾아요. 우리의 사회의 이야기고 현안이라고 하면서. 일본에서 독립 다큐영화가 1만 명을 동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작은 규모의 극장에서 순환 상영을 하는 중인데, 극장으로 '우리 동네에선 상영 안 하느냐'는 문의 전화도 많데요. 동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일본 사람들이 기뻐하며 같이 봐주는 모습이 굉장하다고 느꼈어요."(박돈사 감독)

무명의 외국인 감독이 만든 재일조선인 관련 다큐멘터리가 장기상영을 통해 1만 3천 명을 넘게 동원한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60만번의 트라이>가 일본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오사카 조교 럭비부의 활약과 성과도 감동적이지만, 그 안에 내재된 외국인 차별이나 재일조선인 문제, 일본정부의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무상화 정책 배제 등 현안들에 반응한 결과이리라. 일본에서 나고 자라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두 일본학교를 다닌 박돈사 감독은 사실 한국에서의 반응에 더 관심이 컸다. 

"일본에서도 재일조선인이나 조선학교를 다룬 작품은 극히 드물어요. 일본 사람들이 많이 본 것도 놀랍지만,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더 놀랍죠. 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크게 응원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동포로서 더 고맙고요.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재일동포 모두의 기쁨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면 그것 자체로 큰 의미라고 할 수 있고요. 저도 그렇지만 우리들을 알아 달라는 그런...(웃음)"(박돈사 감독)

그렇다고 일본 내 재일조선인에 대한 시선이 눈에 띄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 재특회를 비롯한 우익들이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박돈사 감독이 피부로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hate speach'라고, 혐오 발언이 늘고 있어요. 이례적으로 교토 조선학교 습격사건(2009년)은 인종차별 행위라 판결이 났지만요. 재일조선인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하거나 폭력을 일삼는 이들이 이제는 커뮤니티로 모여들고 있어요. 동포들은 상처를 입고 불안감에 떨고 있죠.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없었던 일로)복구하기가 쉽지 만은 않은 것 같아요."

<60만번의 트라이>가 보여주는 조선학교만의 그 특별함

<60만번의 트라이>는 물론 <우리학교>를 보며 가장 마음을 끄는 건 아이들의 순수함과 동포·조국 사랑이다. 입시다, 경쟁이다 순수함을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과 비교해 조선학교 학생들의 마음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비단 '노사이드 정신'으로 대변되는 스포츠맨십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합 때만 뭉치고 협력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게 해요. 노는 시간에도 그렇고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가족 같은 관계들인 거죠. 어렸을 때 친구가 되면서 신뢰감이 큰데, 아마 조선학교 없이는 힘들었을 거예요. 오사카 조교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우수한데요, 절대 1등해야지, 공부해야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친구랑 같이 즐겁게 협동하는 걸 중시하다보니 저절로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하게 되더라고요."(박사유 감독)

"문화인류학적인 측면이 아니라 직감적으로 말하면, 조선학교 생활은 공부나 클럽 활동이 전부가 아니라 조선 사람으로 어떤 정신을, 삶을 함께 배워가는 공간 같아요.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 하나 되어 동포로서 성장하고 탐구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거죠."(박돈사 감독)

아이들에 자연스레 밀착하면서, <60만번의 트라이>는 기술적인 완성도보다 감정이 살아있는 다큐로 완성됐다. 이 학생들에게 자연스레 다가서는 정서로 인해 훨씬 더 젊은 감독일 거란 오해(?)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대상과의 거리를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중요한 장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일본의 한 평론가는 영화를 보고 드라마인데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연출한 줄 알았다고 해요.(웃음). 최근 트위터에 올라온 글도 그렇고, 그만큼 아이들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이 많았죠." (박사유 감독)

재일동포들과 조선학교 학생들 "'세월호 사고' 마음 아파"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주역들.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주역들. ⓒ 성의석


데뷔작으로 한일 양국에서 관심을 받은 두 감독에 대해 조금 더 묻고 싶어졌다. 암을 이겨내면서 촬영을 병행했던 터라, 사실 여타 다큐만큼 좋은 화면을 찍지 못 했다는 박사유 감독, 그리고 그런 박 감독에게 천군만마와도 같은 존재였던 박돈사 감독. 재일조선인 다큐라는 흔치 않은 작품을 찍은 이들답게 분명 범상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들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3년을 촬영했는데, 항암 수술 방사선 치료 끝나는 시기와 맞물렸어요. 한 동포 분에게 전화를 받은 것이 2007년이었죠. 그 이후 오사카 조교도 알게 되고, 하나조노도 달려가서 촬영을 했죠. 교토에 살면서 오사카까지 달려가곤 했는데, 실신도 하고 민폐 아닌가 생각도 들었어요. 이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을 더 찍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촬영을 해 나갔죠." (박사유 감독)

"생협 조합 책방에서 일을 했는데, '반품 투쟁'이란 걸 했어요. 세상의 암적인 존재들, 우익 역사서 같은 책들은 어린 친구들이 보지 못하게 반품을 해 버리는 거죠. 더 좋은 책들을 많이 보여주기 위해서요. 꼬마 프레스 활동을 하면서 재일조선학교에 대해서나 제도적인 차별에 대해서 저 또한 많이 알게 됐습니다. 동포들은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있는데, 일본 사회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거든요. 보여도 모른척하기도 하고요." (박돈사 감독)

박돈사 감독은 2011년 대지진 이후 일본 내에서 어떤 일체감이 형성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대지진을 '국민의 비극'으로 몰고 가면서 국가가 '하나의 일본'을 국민들에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은 여전하다. 대지진이나 원전 사고를 거치며 재일조선인들 역시 구호와 복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그에게 일본에서 바라보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물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 동포들은 모두 마음 아파하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상황을 들으면 보이는 문제만 해결하려 하거나 어서 잊어버리자는 의견들이 더 큰 것 같아요.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 기사에 악플이 달리기도 하더군요. 대지진 이후 일본과 비슷한 모습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국민'을 호명하고, 통합을 강조한다는 면에서요." (박돈사 감독)

이날 인터뷰에선 함께 내한했던 영화 속 주인공 상현과 옥희가 촬영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사회인과 대학생이 된 두 사람 모두 다른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동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고. 몇 몇 친구는 현재 일본 럭비계의 유망주로 자리를 굳혔다고 한다. "앞으로 재일조선인으로서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기록자로서의 위치"를 유지해 나가겠다는 두 사람. 꼬마프레스의 두 번째 작품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도 좋을 듯하다.

60만번의트라이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