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포스터

영화 <명량> 포스터 ⓒ (주)빅스톤픽쳐스, CJ 엔터테인먼트


최근 영화 <명량 : 회오리 바다>(이하 <명량>)의 돌풍이 거세다. 많은 사람이 보는 작품이면 그렇듯이 크게 감동했던 관객들도 있지만, 졸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개봉 9일째인 현재 이미 800만을 넘어서 버린 <명량>의 저력은 한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해서 '영화관에 갔는데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봤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각종 사이트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이야기 중반 이후로는 눈물을 계속 흘리며 봤다는 평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심지어 영화가 끝나도 계속해서 눈물이 났던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이 사람들은 같은 영화에서 어떤 다른 점을 보았길래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

 영화 <명량> 포스터

영화 <명량> 포스터 ⓒ (주)빅스톤픽쳐스,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속에서 이순신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만다. 영웅 이야기가 으레 그러하듯 영화 전반부에는 위기감이 고조된다.

조선 시대 정유재란 중, 선조는 이순신을 시기하여 투옥했지만, 칠천량에서 조선의 수군이 대패하면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한다. 하지만 수군에 남은 배는 열두 척뿐이고 이순신은 임금으로부터 육군으로 편입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 와중에 왜군은 칠천량에서 죽은 병사들의 목을 배에 실어 보내 조선 병사들의 두려움을 증폭시켰고, 왜군의 전선이 330척에 달한다는 이야기에 부대는 패배감에 휩싸인다. 그렇지만 이순신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가 결론적으로 승리를 이뤄낸다.

사실 이 이야기는 줄거리만으로도 감동적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냉철한 전략과 강직한 뚝심은 영웅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연일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명량>의 폭풍질주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이순신에게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투사'의 모습이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낸 투사, 이순신과 송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앞에 나서는 행동은 범인으로서는 감히 이해하기도, 실천할 수도 없는 어려운 결정이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겨우 열두 척의 배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 저 뒤로 물러나 버린 열한 척을 등지고 홀로 맨 앞에 서서 싸웠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안전한 곳에서 하염없이 대장선 만 바라보고 있던 병사들과 도망가던 백성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도화선이 되었다.

전투 도중, 대장선이 바다 회오리에 갇혀 위기에 빠진다. 그 순간 백성들이 겨우 한두 사람 탈 수 있을 만한 나룻배와 갈고리를 가지고 전쟁터로 달려 들어와 대장선을 구출해낸다.

어디 그뿐인가, 화약을 가득 실은 배가 대장선을 향해 돌진할 때, 그 배에 타고 있던 탐망꾼은 죽음을 무릅쓰고 이 배가 대장선에 닿기 전에 폭발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리고 곧이어 조선의 열한 명의 장수도 대장선과 같은 열에 서게 된다. 이순신 혼자 영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싸움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까지도 말이다.

이런 모습은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변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명량을 보면 볼수록,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에 모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로 몰려 고문당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맞서 맨 앞에 나서서 싸우던 송변이 떠올랐다. 내가 송변이었다면 자기 자신이 위험할 뿐 아니라 가족마저도 의문의 협박 전화를 받는 상황에서 변호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상황에서 그는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결국 다른 변호사들과 시민들의 두려움마저 용기로 바꾸었고, 우리는 그래서 100여 명의 변호인단의 이름이 차례로 호명될 때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변호인> 예고편 스틸컷

영화 <변호인> 예고편 스틸컷 ⓒ 위더스필름


그러나, 그들의 결말은 비극이었다

한 가지 더 이순신과 송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결말이 비극적이라는 예상을 하며 이야기를 봤다는 사실이다. 명량해전의 승리를 마냥 기뻐하며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가 결국 노량해전에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며, 죽는 그 순간까지도 병사들의 '용기'가 다시 '두려움'으로 바뀌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이순신의 의지가 너무나 비정했으리라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위기의 순간에서 지도자에게 빈번하게 버림을 받아왔던 한반도 대륙에 살고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 그 부끄럽고 억울한 역사 속에서도 오롯이 서 있는 이순신을 보고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영화 <명량> 포스터

영화 <명량> 포스터 ⓒ (주)빅스톤픽쳐스, CJ 엔터테인먼트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거 알기나 할까?"

그들은 영웅이라기보다는 투사에 가까웠다. 자신의 초인적인 능력으로 적을 물리치는 할리우드의 영웅들은 우리에게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조금 더 우리에게 가까운, 우리와 함께했던 영웅 이순신. 전선에서 노를 젓던 사람들이 하던 대사 속의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 우리 모두였던 것이다.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거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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