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깔=꿀색 의 한 장면
피부색깔=꿀색의 한 장면미루픽처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가운데 하나이던 우리나라가 놀라울 만한 압축 성장을 이루는 데 있어서 드러난 여러 가지 폐해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입양아 수출 세계 1위라는 불명예다. 애니메이션 <피부색깔=꿀색>은 벨기에로 입양된 한국인 입양아 융 에낭의 정체성을 다루는 작품이다. 풍요로운 지금의 대한민국의 이면,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누군가가 먹다 버린 음식을 주워 먹어야 하던 최빈국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감독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 있어 솔직함이 돋보인다. 감독이 입양되고 난 다음에 벨기에 양부모와의 아름답고 간직할 만한 추억거리만 회상하는 게 아니라, 검은머리 벨기에 사람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춘기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피부색깔=꿀색> 의 한 장면
<피부색깔=꿀색>의 한 장면미루픽처스

그런데 사람의 심리라는 게 참으로 이상하다. 최빈국 한국보다 풍요로운 국가인 벨기에에 입양되었다면 가난한 모국을 잊을 법도 한데 '검은 머리' 벨기에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융 에낭은 심한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언어와 가치관은 벨기에인이지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서양인이 아닌 동양인이라는 정신과 육체의 괴리감 때문에 심각할 만큼의 성장통을 경험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거나, 쌀밥에 매운 타바스코 소스를 뿌려가며 먹는 융 에낭의 행동은 벨기에 양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애정 결핍이 아니라 자신의 참다운 정체성을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방향성의 결핍에서 비롯한 탓이다. 동양인 출신 벨기에 입양아를 만나면 반가워 하는 게 아니라 되레 멀리 떨어져 다니거나, 한국인 입양아 출신 동생에게 호의를 보이기보다는 적대시하는 융 에낭의 어린시절 모습은 그들을 통해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정체성을 환기하게 만들어주는 '거울 효과'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정체성 찾기 넘어 따뜻한 가족주의도 담겨 있어

피부색깔=꿀색 의 한 장면
피부색깔=꿀색의 한 장면미루픽처스

이렇게 <피부색깔=꿀색>은 융 에낭의 고통스러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찾기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가족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융 에낭이 거짓말 한 대가로 채찍을 휘두르는 벨기에인 양부모의 모습에서 그는 상처를 입는다.

그럼에도 융 에낭이 몰랐던 것은, 그토록 치열하게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른 벨기에인 가족에게는 고통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가 거짓말이나 말썽을 피웠다는 '원인 제공'은 생각하지 않은 채, 채찍으로 맞았다는 결과에만 천착함으로 융 에낭은 부모에게 원망을 저금하지만 그의 양부모는 마음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융 에낭의 척력, 밀어내기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다.

슈퍼마켓에서 여동생을 못 본 체 하는 융 에낭의 냉정함에 벨기에인 여동생은 울음을 터트리고, 고음으로 음악을 듣는 융 에낭의 습관 때문에 벨기에인 형제는 소음 공해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그의 벨기에인 가족은 이런 융 에낭이 자신들을 밀어내려 하는 모습에 순응하기 보다는, 얼마간의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그를 품고자 노력한다.

피부색깔=꿀색 의 한 장면
피부색깔=꿀색의 한 장면미루픽처스

<피부색깔=꿀색>은 융 에낭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찾기에만 천착하는 게 아니라, 고슴도치처럼 벨기에인 가족에게 상처를 내어도 융 에낭이 가족에게 내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품어야 할 가족의 일원이라는 점을 환기시켜 줌으로 가족주의의 따스함을 보여준다. 가정의 달인 오월을 맞이하여 내가 속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피부색깔=꿀색>이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와 자그레브, 아니마문디 같은 세계 3대 시상식 및 세계 79개국 시상식에 초청되어 22개 부문에 걸쳐 수상할 수 있었던 힘은, 입양인의 아픔 및 극복기라는 개인적인 성장담에만 머무르지 않아서다. 융 에낭이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기까지에는 그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묵묵히 그를 뒤에서 품어줄 수 있는 가족의 든든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걸 덤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가능한 수상 결과다.

피부색깔=꿀색 융 에낭 입양 애니메이션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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