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실장이 국기하기식을 지휘하고 있다
MK픽처스
이 같은 차지철의 월권과 전횡에 김재규가 큰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단지 차지철에 대한 불만 때문에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했다고 보는 것은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며 박정희의 책임을 차지철에게 떠넘기기 위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건 문제의 핵심은 박정희였다.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캄보디아에서도 300만 정도 죽여도 까딱없었는데 우리가 100만, 200만 정도 죽여도 걱정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영화에서는 100만 명을 1만 명으로 오히려 축소했다). 이 같은 발언은 차지철의 광기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
하지만 캄보디아 발언은 차지철이 박정희를 부추기기 위해 나온 말이 아니다. 김재규는 부산을 다녀온 뒤 부산소요는 불순세력이나 신민당의 선동 때문이 아니라 민중의 봉기이며 5대 도시로 확산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박정희는 역정을 내며 "앞으로 서울에서 4·19와 같은 데모가 일어난다면", "이번에는 대통령인 내가 직접 쏘라고 발포명령을 내리겠다"고 말했다(한홍구, <유신>, 한겨레출판, 2014). 이에 차지철이 맞장구를 친 것이다. 차지철은 박정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 것뿐이었다.
박정희는 캄보디아 발언을 듣고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김재규에게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그렇게 물러서야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나?"라고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문영심,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시사IN북, 2014).
차지철은 박정희를 좌지우지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박정희가 말년에 차지철을 총애한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따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차지철은 박정희의 '충견'이었다. TV드라마 <제3공화국>에 차지철(이대근)이 교회에서 "주여! 청와대 안에서는 각하가 저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차지철의 됨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캄보디아 발언은 차지철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각하의 마음을 차지철이 읽은 것이었다. 그리고 김재규는 후안무치한 박정희의 태도 때문에 결정적으로 거사를 결심하게 된다. 그대로 놔두면 한국도 '킬링필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재규는 혁명가였을까, 돈키호테였을까김재규의 총구는 애초부터 '유신의 심장'(박정희)를 겨냥하고 있었다. 김재규가 차지철을 먼저 쏜 것은 단지 그 길목에 그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을 공격하려면 경비견부터 처리하는 게 순서다. 김재규는 혁명가였을까? 돈키호테였을까?
"혁명은 칵테일 파티가 아니요. 피가 튀는 쟁투란 말이요." "진짜 야수의 심정으로 쐈어. 민주주의를 위하여."<그때 그 사람들>에서 김 부장은 자신의 '거사'를 '혁명'이라고 말한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혁명'의 목적을 5가지로 밝혔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번째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 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김재규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혁명은 친미, 민주, 반공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5·16쿠데타의 혁명이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재규의 거사는 부마항쟁이 4·19와 같은 혁명으로 발전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즉,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재규의 '거사'는 혁명이라기보다는 쿠데타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가 원한 것은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권력자의 교체였기 때문이다. 만일 김재규의 혁명이 성공했더라도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재규가 혁명가였다면 그는 얼치기 혁명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사' 직후 김재규는 안가에 있었던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와 함께 남산으로 향한다. 김재규는 수행비서였던 박흥주 대령이 중정과 육본 중 어디로 가는 게 좋겠느냐고 묻자 정승화가 말을 가로채 육본으로 가자고 했고 김재규는 아무 생각 없이 동의했다고 한다. 김재규가 육본으로 향한 것은 결정적 패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