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인우와 태희가 산 정상에 오른 장면.

▲ 번지점프를 하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인우와 태희가 산 정상에 오른 장면. ⓒ 뮤지컬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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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평소라면 관객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던 뮤지컬 한 편이 공연장을 옮기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전 공연장에서 보아왔던 뮤지컬의 저력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감기약을 먹은 듯 흐늘흐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러 해에 걸쳐 수백 편의 뮤지컬을 관람하고 분석하는 필자에게 피로현상이 나타나서일까.

공연이 시작되고 10분이 지나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공연장이 커졌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집중의 묘를 발휘할 수 있었던 공연장이 갑자기 큰 공간을 만나니 시선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뮤지컬의 응집력을 흐트러뜨리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작년에 이어 재연 중인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렇게 공연장이 커지면서 에너지가 흐트러진 뮤지컬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이야기의 아기자기함에 비해 지나치게 커보이던 초연의 공연장이 아닌, 마치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은 것과 같은 공연장을 찾음으로 안정감을 추구할 수 있었다.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먼 발치에서 읽어야만 하던 초연의 공연장에 비해 이번에는 먼 거리에서도 무리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관객 상상에 맡겼던 초연과는 달리, 디테일한 연출에 눈길

 인우가 태희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

인우가 태희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 ⓒ 뮤지컬해븐


<번지점프를 하다>는 시각적인 디자인이 대사를 일부 대체하는 뮤지컬이다. 처음 관객에게 보이는 무대에는 일자형의 직선이 눈에 띈다. 마치 백묵을 수평으로 휙 그은 듯한 직선은 인우가 뮤지컬 가운데서 그토록 강조하는 '인연'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이 수평선은 뮤지컬에서 인연을 강조하는 장면을 담은 무대 요소요소에서 숨은 그림찾기처럼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긴장을 고조하는 장면에서는 백묵 스타일의 선이 사선으로 만들어진다. 캐릭터를 향한 비난과 긴장이 대사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선이라는 시각적인 디자인으로도 표현된 것이다.

뮤지컬의 원작이 되는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만들어졌다. 지금에야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고백하는 게 흔한 세상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좋아하는 남자에게 여성이 다가서는 게 쉽지는 않았다. 평소 좋아하던 남자인 인우의 우산 속으로 쏙 들어가는 태희의 제스처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여성이 어떻게 어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귀여운 당돌함의 표본이었다.

 태희를 연기하는 배우 김지현

태희를 연기하는 배우 김지현 ⓒ 뮤지컬해븐


첫사랑이 아름다우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 때문이다. 인우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품절남이 되어서도 태희를 향한 안타까운 사랑을 잊지 못하는 건, 되돌릴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 때문이리라.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작곡상을 수상한 윌 애런슨의 아련한 넘버인 '왈츠'는 뮤지컬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울려 퍼짐으로 첫사랑에 대한 아름다움을 관객의 기억에서 소환하고 있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번지점프를 하다>는 첫사랑의 아련함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아련함이 현재까지 어떻게 영향력을 미치고 인우의 현실을 어떻게 '교란'하는가를 치열하리만큼 보여준다. 첫사랑이 추억으로만 자리하는 게 아니라, 인우를 둘러싼 주위 환경과 결혼 생활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교란 말이다.

초연은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을 멜로에 중점을 두고 묘사했었다. 그런데 이번 재연은 초연과는 다른 연출이 눈에 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인우에 방점이 맞춰진 초연과는 차별되게,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의 시점도 부각된다는 점이다. 사랑의 아련함을 보여주면서도 체벌과 같은 교실 속 폭력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초연작이 장면과 장면의 간격을 관객의 상상력에 맡긴 것과 비교해도 이번 재연은 다른 점이 보인다. 관객의 상상에 맡겼던 부분을 무대 연출로 형상화한 디테일한 연출이 돋보인다. 그런데 디테일한 연출이 멜로를 스릴러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인우를 향한 비방의 목소리를 연출한 장면이 초연에 비해 학원 스릴러로 변모한 느낌이었다.

 인우를 연기하는 배우 성두섭

인우를 연기하는 배우 성두섭 ⓒ 뮤지컬해븐


그래서 서정적인 톤으로 일관하던 초연에 비해 이번 재연은 서정성과 스릴러가 공존하는 작품이 된다. 비빔밥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뮤지컬의 1막과 2막의 공기가 확연히 달라진 다양성에 환호할 테지만, 일관된 서정성을 바라는 관객이라면 초연의 연출을 더욱 선호할 법도 하다.

서양화처럼 관객에게 모든 걸 보여주길 바라는 디테일한 연출을 선호하느냐, 아니면 동양화 속 여백의 아름다움 마냥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초연 당시의 연출을 선호하느냐 역시 관객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어찌하랴. 윌 애런슨과 박천휴의 아련한 뮤지컬 넘버는 필자의 분석력을 감성으로 포박하고야 마니 말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음악을 모두 제치고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작곡상을 받은 뮤지컬의 넘버는 가을 코스모스처럼 남자의 감성을 한껏 고양하고 있었다. 남자의 심장마저 쫄깃하게 만드는 <번지점프를 하다> 넘버의 저력은 라이선스 넘버 못지않게 창작뮤지컬의 넘버도 탁월하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번지점프를 하다 뮤지컬 성두섭 김지현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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