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23·올댓스포츠)가 여왕의 자리에 다시 올랐다. 4년만에 세계선수권 정상을 탈환한 김연아는 그야말로 넘볼 수 없는 '벽' 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번 김연아의 세계선수권 우승은 2014 소치올림픽 앞두고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세계선수권, 그리고 현역복귀를 선언하면서 김연아는 몇 가지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번 대회에서 모두 지켜냈다. 그녀가 했던 아름다운 약속은 무엇이었을까.

 김연아가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소치올림픽 티켓 3장을 따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얼음꽃' 음원 수익기부식 현장 사진

김연아가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소치올림픽 티켓 3장을 따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얼음꽃' 음원 수익기부식 현장 사진 ⓒ 박영진


[약속①] "소치올림픽 티켓 따올게요"

김연아는 지난해 7월 현역복귀를 선언하면서부터, 줄곧 후배들에게 소치올림픽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해왔다. 지난 10일 세계선수권 출국을 앞둔 기자회견에서도 김연아는 "소치올림픽 티켓을 두 장 이상 획득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이번 대회를 통해 후배들을 위해 책임을 수행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김연아는 그 약속을 지켰다. 결국 세계선수권에서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위와는 무려 20점이 넘는 그야말로 '끝판왕'의 면모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김연아의 우승으로 한국 피겨는 올림픽 티켓 배정에 따라, 3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배정 받게 됐다.

소치올림픽에 세 명이나 출전하게 된 한국 피겨는 무엇보다 2018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4년 앞서 미리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됐다. 이 순간 가장 기뻐할 김연아와 한국 피겨의 유망주들은 평창이란 꿈을 향해 함께 뛰고 있는 것이다.

 김연아가 세계선수권에서 레미제라블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사진은 지난 1월 종합선수권에서의 모습

김연아가 세계선수권에서 레미제라블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사진은 지난 1월 종합선수권에서의 모습 ⓒ 박영진


[약속②] 한 올도 흔들리지 않겠단 자신의 약속

김연아는 이번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롱에지' 판정을 받았다. 이미 정석점프로 소문나 있는 김연아에게 롱에지 판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뛰었던 트리플플립 점프의 에지는 인에지가 아닌 아웃에지로 뛰었다는 판정이었다. 그러나 정면 화면에선 김연아는 분명 인에지로 확실하게 도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김연아에게 내려진 납득하기 힘든 판정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매 대회 때마다 이러한 난관에 봉착했던 김연아지만 결국 자신은 단 한 차례의 흔들림도 허용하지 않았다.

자서전에서 그녀는 "아무리 무언가가 나를 흔들려고 해도, 나는 머리카락 한 올 흔들리지 않겠다"라고 의연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김연아는 결국 자신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냈다. 프리스케이팅에서도 대담하게 트리플플립 점프를 뛴 김연아는 이 점프에서 무려 1.9점의 가산점을 얻었다. 1.9점의 가산점은 2.1점 만점의 GOE에서 모든 심판들로부터 최고점을 받았단 뜻이다. 또한 자신의 주특기인 트리플러츠-트리플토룹 점프 역시 1.9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점수를 얻었다.

자신과의 철저한 약속과 믿음을 깨뜨리지 않은 김연아의 당찬 모습은 진정한 여왕의 모습 그대로였다.

 김연아가 세계선수권 정상탈환에 성공했다. 사진은 지난 1월 종합선수권에서의 모습

김연아가 세계선수권 정상탈환에 성공했다. 사진은 지난 1월 종합선수권에서의 모습 ⓒ 박영진


[약속③] 모든 대회에서 '1위' 경험이 있는 유일한 선수

김연아는 이미 피겨계에 알려진 대로, 데뷔 이래 단 한번도 3위 밖으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따로 있다. 김연아는 지금까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중 반드시 한 번은 1위에 올랐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즉 최종 순위에서 1위를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경기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중 한 번은 1등에 오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올 포디움의 기록에 비해 덜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사실은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이번 대회에서도 김연아는 이런 기록을 깨지 않았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1위에 올랐으며, 최종 순위도 1위를 기록하며 단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김연아는 모 예능프로그램 출연 당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가 그동안 쌓아왔던 경력들이 무너지지 않게,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 <2010년 MBC 무릎팍도사> 출연 당시

자신과의 지독하고 외로운 싸움에서 항상 이겨온 김연아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2년 만의 다시 세계선수권에 섰다. 그리고 깨끗한 자신의 실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가 역전을 당했을 땐 근소한 차이로 졌지만, 이기는 경우엔 엄청난 차이로 깨끗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도 김연아는 이 말이 사실임을 보여줬다. 2위와 무려 20점의 점수가 난 적은 그동안의 피겨 역사에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로지 김연아만이 그래왔다. 지난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도 김연아는 2위와 16점의 점수 차이로 이겼고,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도 23점 차이로 정상에 섰다. 이것이 바로 김연아가 넘볼 수 없는 벽인 이유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 '여왕의 마법'을 보여준 김연아는 그야말로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진정한 여왕이었다. 자신이 품은 약속과 후배들을 위해 뛰겠단 그 모든 것을 지킨 김연아는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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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피겨스케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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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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