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 영화 포스터

▲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 영화 포스터 ⓒ KAFA Films,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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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는 2009년부터 제작연구 과정을 통해 장편 영화와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다. 2011년 3기 작품이었던 <짐승의 끝>을 만든 조성희 감독은 이후 상업 영화 <늑대 소년>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 있으며, 같은 3기 작품이었던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에서 주목받았던 배우 이제훈은 지금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발돋움했다.

4기 작품인 <밀월도 가는 길> 역시 높은 관심을 받았다. 명실상부하게 가능성 있는 감독과 재능 있는 배우에게 기회를 주는 등용문으로 자리 잡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이 올해 자신 있게 내놓은 작품은 이사무엘 감독의 <설인>과 김승현 감독의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다. 한국 영화의 미래를 미리 점쳐볼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김승현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 영화 스틸

▲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 영화 스틸 ⓒ KAFA Films, CJ 엔터테인먼트


김승현 감독은 제작 백서에 해당하는 <영화의 꿈을 향해 쏴라>에서 "원인과 결과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과들이 나열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의 바람은 실현이 된 것일까?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는 평범한 복수극과는 거리를 멀다. 명확한 서사를 중요시하는 관객에겐 불편할 수도 있으나, 순간적인 감정에 매료되는 관객에겐 강렬하게 다가올 듯 하다. 양 극단에 평가를 받는 영화를 만든 김승현 감독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무척 궁금했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공식 초청작이었다.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다수보다는 소수의 지지를 받을 영화라고 예상했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어느 교수님은 이게 무슨 내용이냐 반문했고, 다른 교수님은 호평했다. 이런 대립 덕분에 오히려 내 의지대로 밀고 갈 수 있기도 했다. 멘토로서 지도해주신 오승욱 감독님의 도움이 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전에 김나현 프로듀서는 내가 예상했던 수치보다 많은 분이 좋아하지 않겠느냐면서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러나 여지없이 기대는 무너졌다. GV에서도 주인공인 석호(최원영 분)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아마도 동기에 공감하기 어려워서 그랬던 모양이다. 심지어 이렇게 나쁜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룬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하지만 지지해주는 소수는 아주 만족했다.

-처음 발상은 어떻게 시작했나?

내부 사정 탓에 프로젝트가 급하게 진행되었다. 오승욱 감독님이 네가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써오라고 말씀하셔서 2~3주 만에 트리트먼트를 만들었다. 원래 느와르 풍의 영화를 좋아하기에 남자들의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멋들어진 복수는 이제 좀 식상하지 않나? 자존심을 상처받은 남자 내지는 저열한 사내들의 소갈머리를 한번 찍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에서 이런 영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언제 또 기회가 오겠나 하는 마음에 하고 싶은 걸 해보자고 결심했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는 인과에 충실하기보단 감정의 폭발에 집중하고 있다.

애초에 목표로 했던 러닝타임은 90분 정도였는데 처음 편집본은 2시간이 넘었다. 편집하면서 시퀀스를 아예 삭제한 것도 있고, 신을 줄이기도 했다.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알게 된 후, 석호가 경쟁업체 직원과 시비를 붙는 장면이 있었는데 전체를 들어냈다. 이게 들어가면 인물에 대한 설명이 된다고 꼭 넣길 원했던 교수님도 계셨다. 그러나 뜻했던 연기와 이질감이 느껴져 최종적으로 삭제했다.

이런 식으로 스토리텔링에서 생략을 의도적으로 많이 구사했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는 변변치 못한 남자들의 속성을 보여주기 위해 심리에 집중했다. 지나서 돌아보면 다소 과했었나 하는 의문도 든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를 만들기 위해 참고 했던 영화들은?

시나리오를 개발해가면서 보았던 영화가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의리의 무덤>이다. <의리의 무덤> 초반부에 나레이션으로 풍선이 터질 때까지 계속해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식으로 인물을 설명하더라. 그걸 보면서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저것과 유사한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근래의 영화로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드라이브>를 참고했다.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어떤 지점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팍 터지면서 전진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김승현 감독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의 감독

▲ 김승현 감독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의 감독 ⓒ 이학후


-석호 역을 맡은 최원영씨와 희영 역을 맡은 김이정씨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

최원영씨는 2006년에 내가 아카데미 정규과정 졸업영화를 준비할 때에 오디션을 본 인연이 있다. 당시에 작업은 같이 못 했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를 준비하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문득 최원영씨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소속사를 수소문해서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관심이 있다고 해서 캐스팅하게 되었다.

김이정씨는 아는 작가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 김이정씨의 목소리 톤이 아주 좋더라. 바로 사무실에 가서 여러 영화의 대본을 주고 오디션을 진행했고, 만족스러워서 희영 역을 제안했다.

-진호의 집과 희영이 운영하는 엔젤바가 굉장히 상반된 느낌을 주던데?

진호의 집은 공간 자체가 색이 매우 없는 곳을 찾았다. 여러 군데를 알아보다가 동생의 집에서 촬영하게 되었다. 동생이 원래 특별하게 물건들을 집에 안 두고 산다. 촬영하면서 그나마 있던 물건들도 빼내고, 페인트를 새로 칠해 느낌을 강조했다.

반면에 희영은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길 원했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홀로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현실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장소를 물색했다. 엔젤바에 맞는 장소를 찾은 후엔 비현실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색을 풍부하게 가져갔다. 조명감독과 촬영감독도 이런 의도에 공감하며 존재하지 않는 듯한 색을 주려고 노력했다. 후반작업시 색 보정을 하면서도 이런 면에 치중했다.

-핸드헬드 촬영을 싫어하나?

졸업작품을 포함한, 그전에 내가 감독했던 영화들도 모두 핸드헬드를 자제했다. 묵직하게 가는 카메라를 선호한다. 트래킹으로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좋다. 조금 지독스럽다 느낄 정도로 길게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지겨워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항상 가진다. 카메라와 인물이 어떻게 움직이면서 만나고 떨어지는가에 따라 지겨움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촬영감독이 몇 가지 이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살인이 이루어지는 장면에서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

초반에 나오는 살인 장면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희영이 와서 보니 상황이 벌어졌다는 식으로 애초부터 구상했다. 마지막 살인 장면은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나온 장면처럼 정면에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특수효과에 대해 기술적으로 문의를 해보니 주어진 예산의 범위 내에선 도저히 불가능하더라. 어쩔 수 없이 여건에 맞추었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 영화 스틸

▲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 영화 스틸 ⓒ KAFA Films, CJ 엔터테인먼트


-승마장과 같은 영화 속 장소들은 어떻게 정했나?

실제로 내가 친하게 지내는 연극을 하는 형이 운영하는 승마장이다. 사극에서 말 타는 장면이 나오면 연습하는 곳으로도 사용된다. 승마장이 특이한 느낌을 주었는지 교수님들도 승마장에 왜 갔느냐고 묻더라. 영화의 전개상에서 본다면 느닷없이 승마장으로 갔다고 느낄 분도 있을 것이다. 실은 석호가 태규 일당을 미행해서 승마장까지 따라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에서 삭제했다. 이 장면이 들어갔다면 당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엔젤바 주위는 서울 방이동에서 촬영했다. 석호 집에서부터 엔젤바까지 가는데 모텔촌을 거쳤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방이동을 가보니 조건이 딱 맞더라. 다만 유흥가는 촬영이 어려워서 가능한 건물 앞에서 찍는 것은 자제하고, 건물 뒤나 내부에서 찍었다.

-제작비 5천5백만 원을 지원받아 최종적으로 집행한 금액은 5천9백만 원이다.

처음엔 5천5백만 원이 어느 정도의 예산인지 실감을 못했다. 이전까지 천만 원 이상을 들여서 영화를 찍어 본 경험도 없고, 게다가 장편 영화는 처음이었다. 주위에서 보고 듣고 한 바가 있긴 했지만 내가 직접 부딪히는 거랑은 확연히 달랐다. 프리프로덕션을 들어가 섭외를 하고, 헌팅을 진행하면서 프로듀서와 예산에 대해서 논의를 해보니 실감이 났다. 영화를 다 완성하고 나니 앞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제작연구과정의 예산이 조금 더 증액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라. 어찌 되었든 간에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는 내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다음 영화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현재 영화사와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와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의 시나리오다. 장르로 설명하자면 휴먼 멜로코미디? 한 번도 안 해본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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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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