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신세계>에서 강과장 역의 배우 최민식이 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영화<신세계>에서 강과장 역의 배우 최민식이 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영화 <신세계>에서 강 과장(최민식)이 던진 한 마디는 이자성(이정재)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청유형이었지만 사실상 걸리면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렇게 이 남자들은 명분을 뒤집어쓴 채로 날 것의 야성으로 돌아갔다.

영화 <신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배우의 합이 완성된 것도 최민식의 그림이 일부 반영됐던 셈인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캐스팅 선상에 있었던 황정민은 차지하더라고, 다른 영화를 염두에 두던 이정재를 설득한 게 바로 최민식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최민식은 영화 속 대사처럼 이정재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너! 나하고 영화 하나 같이 하자."

세 배우의 합, 최민식에게도 배움의 과정이었다

이렇게 해서 액션 느와르 판이 제대로 벌어졌다. 좀처럼 한 자리에서 뭉칠 수 없는 황정민, 이정재, 최민식의 조합이 완성됐다. 박성웅, 송지효를 비롯한 배우들의 합도 큰 시너지로 어우러졌다. 최민식은 "이 모든 게 서로에 대한 자극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뭐, 저보고 힘을 쭉 뺐고 후배들 뒤에 물러났다고들 하는데 제 배역 자체가 그런 거죠. 일단 정재, 정민이 그리고 박훈정 감독님과 함께 한 이번 모습을 긍정적으로 봐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영화 일 뿐만 아니라 팀을 이루는 일이 결국 누구와 선후배로 일하느냐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이 나타나잖아요. 이번 영화는 제가 예상했던 대로 됐어요. 분명 서로에게 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고맙게도 이 친구들이 다 열려있어요. 흔히 '대장병'에 걸린 친구들이 있잖아요. 혼자 챙기려 하고 배려 안 하는 이들도 많은데 이 친구들은 아니었죠.

정재도 학교 후배이긴 하지만 학교생활을 같이 한 건 아니었고, 시상식 뒤풀이 때나 보던 친구였어요. 황정민도 꼭 작업하고 싶은 친구였고요. 서로 제안을 활발히 주고받았어요. 선배 입장에선 그런 후배들이 고맙죠. 허심탄회하게 직접 얘기하는 게 원랜 맞거든요. 그게 근데 귀한 세상이니까요."

각자의 개성이 강한 만큼 이정재와 황정민과의 호흡을 두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을 법했지만 최민식은 전혀 걱정이 없었다. 배우로서 주관이 서 있으면서 배려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후배 배우들이 합을 맞추며 쓸데없는 부분에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 부분은 최민식 역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였다.

"<신세계>는 분명 관객들의 호불호가 나뉠 작품 아닌가요? 그 결과를 떠나서 작업과정을 놓고 봐서 이득이다 이거죠!"


"연기? 이제 좀 뭘 알았다...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

선배라는 이름의 위용은 전면에 나설 때도 나타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에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현장에서 최민식은 자연스러운 소통과 호흡을 중시한다. 겉으로도 풍기는 그만의 카리스마는 결국 일방통행이 아닌 자연스러움에서 더 빛을 발하곤 한다.

연륜을 통해 쌓아온 연기 내공은 어느덧 30년이 넘어간다. 한국 나이로 52세. 할리우드 명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여든을 넘겼고, 최근 김지운 감독과 방한한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환갑을 한참 넘겼지만 변함없는 액션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 아직 찌그러질 생각이 전혀 없는데? (웃음) 연기를 공부할 때 외국의 다양한 배우와 좋은 제작 시스템을 보면서 많이 부러워했어요. 항상 비교하기도 했죠. 우리도 점점 배우층도 두터워지고 변하는 것 같긴 해요. 안성기 선배도 있고, 그 밑에 우리가 바통을 받아가야 하죠.

근데 속칭 '짬밥'으로 버티면 안 되고 결과물을 내놔야죠. 외람되지만 과거 향수에 젖어 선배들이 '우리 땐 이랬어, 세상 좋아졌네' 하시는데 안 될 말인 거 같아요. 임권택 감독님이 대단한 게 늘 현장에 계시고 싶어 하잖아요. 작품 흥행을 떠나 그저 현장을 고민하고 스크린을 통해 세상을 고민하는 게 제겐 자극이에요.

이제 조금 뭘 알 것 같으니,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요. 전에는 쓸데없는 고민이 많았죠. 스스로 못살게 구는 스타일이었어요. 잘 안되면 못 견뎌 했는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기는 거 같군요.(웃음)"


"배우 인생에 후회는 없다"...최민식의 최대 강점은?

최민식처럼 드라마와 연극, 그리고 영화계에서 골고루 업적을 쌓으며 인정받는 배우는 드물다. 최근 연극배우 출신 연기자들이 영화로 자리를 옮기며 재능을 뽐내지만 세 영역을 아우르기는 쉽지 않다.

1982년 극단 생활을 시작한 최민식은 <야망의 세월>(1987)을 통해 스타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드라마 <서울의 달>(1994)은 시청자에게 배우 최민식을 깊게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다 1997년 이후 최민식은 영화 외길을 걷고 있다. 여기엔 계기가 있었다.

"처음엔 연극을 했었죠. 그리고 이혼(1993년)도 하고 보통 연극을 하면 대본 연습을 7시간은 해요. 토론도 하고. 근데 방송을 하면서는 연습이란 게 없잖아요. 대본 연기를 9년 하다 보니 내가 못 견디더라고요. 분석이고 뭐고, 구조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내가 그때 가정이 있었으면 못 그만뒀을 거예요. 혼자가 됐으니 목구멍에 풀칠을 못하겠느냐며 본질을 생각한 거지요. '연극은 뭐 때문에 시작했지?' '어떤 배우가 되려고 했지?' 한 번의 이혼을 겪고 개인사도 돌아보고 모든 걸 리마인드하던 시기에 마침 (한)석규가 <넘버3>를 하자고 했고요. 그래서 과감하게 접은 거죠."

그는 배우를 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럼 다시 태어난다면? "배우는 '징하게' 해봤으니 다른 걸 해봐야지"란다. 분명하게 하고 싶은 건 없지만 음악 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최민식과 음악,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기타일까 혹은 드럼을 연주하고 싶었을까. 다행히 우린 어두운 무대 위 최민식이 아닌 넓은 스크린 속의 최민식을 현재 실컷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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