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빈(서울시청)이 인터뷰 후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이한빈(서울시청)이 인터뷰 후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 정인영


'메달밭', '효자종목'. 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을 지칭할 때 흔히 사용되는 명사다.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워낙 어렵기로 소문난 종목이라, 국가대표로 통과되기만 하면 올림픽 금메달은 따놓은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무조건 그렇다고 하기에는 판도가 너무 많이 변했다.

우리 지도자 및 선수들이 외국으로 진출하면서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실력이 평준화되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 남자대표팀은 더욱 그렇다. 기존의 강팀으로 분류됐던 한국, 캐나다, 미국, 중국에 러시아, 독일, 영국 등이 신흥강팀으로 떠올랐다. 이렇다 보니 매년 6차례씩 치르는 쇼트트랙 월드컵은 그야말로 얼음 위의 전쟁터다.

특히, 올 시즌 남자대표팀의 경우에는 '안현수 경계령'이 내려졌다. 남자대표팀은 4개 대회 연속 계주 금메달을 획득하며 여전히 세계최강의 면모를 보여주며 우위를 점령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메달을 따는 종목은 없다.

취약종목으로 손꼽혔던 500m를 제외하고도, 한국의 강세종목인 1500m와 1000m에서도 '여유 있는 금메달'은 없다. 일례로 지난 시즌 승승장구하던 노진규(한국체대)의 1500m 연승행진이 올 시즌 안현수에게 가로막혀 끝이 났으며, 지난 시즌 1000m 랭킹1위를 달리던 곽윤기(서울시청) 역시 5년 만에 개인전 복귀무대를 치른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안)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시즌 '남자대표팀 경기는 안심하고 봐도 된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오히려 지난 시즌 부진을 겪은 여자대표팀이 심석희(오륜중)를 중심으로 살아난 것에 비해, 올 시즌 남자대표팀은 우위 속에 긴장감이 맴돈다. 그 긴장감 속에 올 시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의 각오는 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여자대표팀이 새 얼굴 심석희를 중심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만큼 팬들이 이른바 '대표팀 새내기'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이한빈(서울시청)도 그 중 하나다. 부상과 연이은 좌절로 선수생활까지 마감하려고 했던 그는 지난 4월 대표선발전을 통해 부활의 날개를 퍼덕였다. 평균연령이 20대 초반인 쇼트트랙 대표팀에서 그는 쇼트트랙 인생 16년만인 25살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단거리 전문선수였던 그가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국제무대 500m 입상에도 팬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한빈에 대한 기대는 그의 높은 인기도 한몫을 했다. 큰 키와 준수한 외모에 팬 카페까지 보유하고 있는 그는 국내대회를 치를 때도 팬들의 선물공세가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지 이제 8개월 남짓, '신입생' 이한빈도 벌써 4개의 국제대회를 치렀다.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팀 해체의 충격으로 빙판 위를 떠나려 했다는 그가 어떻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지난 20일, 이한빈과의 오랜 시간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시련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또한 그의 한 번 더 화려한 비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봤다.

아쉬움으로 남은 월드컵, "더 이상 실수는 없다"

- 3, 4차 월드컵이 끝난 지 3주 정도 지났는데,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4차대회 끝나고 입국해서, 그 주는 가볍게 몸 푸는 식으로만 훈련하다가 이번 주부터 다시 체력운동 시작했어요. 쭉 대회 치르다보니 운동을 많이 해서 몸에 전체적으로 알이 배겨 있어요. 특별히 어디 한 군데가 아프다기 보다 원래 발목이 조금 안 좋은데 피로누적까지 더해져서 요새 더 아픈 것 같아요."

- 다른 선수들의 몸 상태도 궁금하다. 특히, 박승희 선수의 경우 부상으로 1, 2차 월드컵에 불참했는데, 현재는 어떤가?
"지금 모든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다운되어 있어요. 그래도 다행이 큰 부상을 당한 선수는 없는데, 각자 원래 조금씩 아프던 부위가 계속해서 대회 치르면서 더 안 좋아진 상태에요. 승희 같은 경우도 원래 허리가 좀 안 좋았는데 지금도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고 계속해서 물리치료 받고 있어요."

- 월드컵대회의 반환점을 돈 현재, 메달 소식이 없다.
"처음 출전이니까 아직 큰 무언가를 바란다기 보다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요즘에 대표팀 성적이 전체적으로 좋기 때문에 밖에서 동료들 메달 따는 것 보면 솔직히 배가 조금 아프기도 해요.(웃음) 저는 메달을 딴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많이 부럽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느끼는 것도 많아요. 아무래도 자극이 많이 되거든요. 종목이 끝나면 시상식이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열리기 때문에 보면서 '나도 저 안에 있어야 하는데' 싶은 생각이 들어요."

- 3차 대회 때는 500m와 1000m에서 7위를 기록하는 등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2, 4차 때는 10위권 밖으로 밀리는 등 월드컵 출전 후 성적이 들쑥날쑥하다. 혹시 이유가 있었나?
"변명을 하자면 1, 2차 때는 대회를 캐나다에서 하는 바람에 시차적응에 실패했어요. 1차 대회 첫 날 경기는 아예 잠 한 숨 못 자고 나갔고, 둘째 날도 잠이 너무 안 와서 수면유도제를 먹고 잤어요. 이렇다보니 경기를 하는 데 몸이 너무 무겁고 타면서도 제 몸 같지가 않더라고요. 컨디션 조절 실패랑 경험 부족까지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많이 저조했던 것 같아요. 3차 때부터는 아시아에서 하고, 그나마 슬슬 감을 잡으면서 성적이 괜찮았는데, 순간적인 판단 미스로 실격판정을 받아서 많이 아쉬웠어요."

- 안현수와의 치열한 메달 경쟁으로 남자대표팀의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현수형이 러시아로 가면서 러시아 팀 전체 레벨이 굉장히 많이 올라간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기보다는 저희도 좋은 쪽으로 자극을 더 많이 받고 있어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같이 훈련했던 사이기 때문에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다들 있는 것 같아요. 그로 인해서 오히려 한국 대표팀도 더 발전할 수 있으니까 현수형이 좋은 자극제가 되어 주고 있죠."

- 세계선수권을 제외하고 개인전으로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5, 6차 두 번 남았는데 앞으로의 각오는 어떤가?
"큰 목표를 세우다기 보다 지금은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타고 있어요. 하지만 5, 6차에서는 실수를 안 해서 꼭 메달 따고 싶어요. 한두 번도 아니고 월드컵 통해서 실패를 여러 번 했기 때문에 다음 대회에서는 '더 이상 실수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설 거예요. 5차대회까지 준비기간이 좀 남아 있으니까 그동안 단점을 보완하면 자신감 있게 레이스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순조로웠던 출발, 팀 해체가 모든 걸 뒤바꿨다.

- 맨 처음 쇼트트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제가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라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했었는데, 부모님께서 이 성격을 바꿔보시겠다고 시켜주셨어요. 그 때 부모님께서 수영도 시켜주셨는데, 운동을 2개 하다 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6학년 때 부모님께서 하나만 결정하라고 하셨는데 그 때 제가 쇼트트랙을 선택했어요. 워낙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스케이트를 탈 때 그 속도감이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고민 없이 바로 쇼트트랙으로 결정했는데, 덕분에 성격개선도 많이 되고 인기도 많았어요.(웃음)"

- 2008년 세계주니어선수권에 출전하여 종합 3위를 기록한 후 이렇다 할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중간에 어떤 문제가 있었나?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주니어 선수권에 참가했는데, 그때 한참 잘 나가던 때였어요. 제가 원래 단거리 선수인데 그때는 1500m 성적도 좋았고, 국제무대에서 입상도 하니까 자신감이 많이 늘었어요. 그러다가 한국 와서 전국체전에 출전하게 됐는데 경기 중에 넘어지면서 발목이 부러진 거예요. 그 이후에 발목 때문에 4년을 고생했어요. 대학 4년 내내 발목이 1년에 한 번씩 꺾이거나, 부러졌어요. 그때 성적이 없다보니 굉장히 침체기였어요."

- 그때 슬럼프가 왔었나?
"그래도 저는 절대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원래 운동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준비 하면서도 '언젠가는 되겠지' 생각하면서 재미있게 운동했어요. 평소에도 원래 성격이 긍정적인 편이거든요. 오히려 팀이 해체됐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 팀 해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달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성남시청에 입단하려고 성남에서 계속 운동하고 있었어요. 제가 성남시청에서 운동하면서 실력도 많이 늘고 자신감도 부쩍 올라 왔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팀이 해체가 된 거예요. 이미 팀이 해체되기 직전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정신적 충격을 많이 받은 상태였어요. 기량도 많이 올라왔고 타임레이스에서 1등을 해서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여기에 팀 해체까지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겹치다 보니까 3주간은 집 밖에도 나가지 않았어요."

- 운동을 그만 둘 생각도 있었나?
"그럼요. 하루는 아버지께서 그런 저를 보시고 '운동을 그만두고 군대에 다녀와라'라고 하셨어요. 저 역시 그때 현실을 받아들이고 군대 갈 준비를 했죠. 그러던 중 서울시청 감독님께서 제 사정을 들으시고는 '같이 운동해보자'고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사실 처음 입단 제의를 받고서도 많이 망설였어요. 이미 운동을 그만 둘 생각이었고, 내가 새로운 곳에서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많았거든요. 한 달을 고민한 끝에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6월부터 서울시청에 입단해서 운동하게 됐어요."

가슴 벅찬 태극마크,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이한빈(서울시청)이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이한빈은 내내 경직된 표정을 짓다가 여자친구이자 현 쇼트트랙 국가대표인 박승희가 말을 걸자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한빈(서울시청)이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이한빈은 내내 경직된 표정을 짓다가 여자친구이자 현 쇼트트랙 국가대표인 박승희가 말을 걸자 환하게 미소 지었다. ⓒ 정인영


-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위를 차지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당시의 기분은 어땠나?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거든요. 저는 그냥 국내대회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결승만 올라가자는 생각으로 뛰었어요. 대회가 끝나고 나서 종합순위가 발표 되는데, 제가 4위인 거예요. 순간 지나온 날들이 생각나면서 코끝이 찡했어요. 그러고 나서 반대편 관중석에 부모님을 봤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정말 많이 우시더라고요."

- 주변 반응은 어땠나?
"제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해주셨어요. (김)도겸이 어머니 같은 경우는 정말 부모님처럼 울면서 축하해주시고, 도겸이도 끝나자마자 달려와서 저한테 안겼어요. 도겸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제가 친동생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놀았거든요. 많이 울컥했어요. "

- 현역 선수로 적지 않은 나이인데, 늦은 나이에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특별한 비결이라기보다 이번에 뱀을 고아 약을 해먹었는데 그거 때문인가?(웃음) 실패를 많이 겪다 보니까 스스로 더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힘든 일을 겪은 후에 '난 잘 될 거야'라는 이미지트레이닝을 많이 해왔거든요. 오히려 실업팀에 입단하고 나서는 대학교 때 했던 것 보다 운동량이 훨씬 줄었어요. 거의 1/3만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떨어지지 않았던 건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해 온 운동량에 긍정적인 생각이 더해지면서 기량이 오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2008년도 주니어세계선수권 당시 국제무대 출전 경험과 지금의 출전 경험을 비교해보면 어떻게 다른가?
"주니어 무대랑 시니어 무대는 레벨이 많이 달라요. 주니어선수권 출전 당시에는 자신감도 있었고 마음이 가벼웠는데, 시니어무대는 생각했던 것 훨씬 이상으로 어려워요. 또, 시니어무대에 처음 출전하다 보니 선수에 대한 정보 파악이 덜 돼서 경기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아직 완벽하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 나갔을 때는 정말 머리가 하얘지고 어벙벙했어요. 1차 대회 때는 감독님께서 오죽하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말을 못 걸겠다"라고 말씀하셨을 정도에요.(웃음)"

- 그렇다면 국내대회와 국제대회를 비교해 본다면?
"아무래도 국제대회가 더 어렵죠.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건 없지만 국가대표가 된 이후에 세계대회의 벽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거든요.(웃음) 예를 들어 비교하자면 500m의 경우에는 국내대회 결승전이 세계무대 예비예선 정도로 느껴져요. 그만큼 외국 선수들 스타트도 워낙 빠르고 기량이 좋아서요. 사실 제가 국가대표가 아닐 때에는 월드컵 대회를 동영상으로 찾아보면서 손쉽게 결승에 가서, 손쉽게 메달을 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국가대표가 돼서 월드컵에 출전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부쩍 올라온 것도 있겠지만, 역시 쉽게 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국내대회 나가게 되면 국내대회가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해요. 왜냐하면 지금은 국가대표 타이틀이 있기 때문에 지면 안 된다 하는 부담감이 있거든요. 둘 다 어려우면 안 되는데 큰일이네요.(웃음)"

스케이트 인생 16년, 난 아직도 빙판 위가 좋다

- 이한빈 선수가 생각하는 쇼트트랙의 매력은 무엇인가?
"스피드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쇼트트랙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바퀴수를 돌 때마다 속도가 올라가는데 스릴만점이에요. 물론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짜릿해요. 저처럼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스릴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쇼트트랙을 추천하고 싶어요."

- 쇼트트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2007 주니어선발전 1500m 결승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제 코치님이 지금 국가대표 감독님인 최광복 감독님이었는데, 감독님께서 저보고 체력이 좋으니까 처음부터 치고 나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첫 바퀴부터 마지막 바퀴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는데, 아슬아슬하게 1위로 골인했어요. 그동안은 제가 단거리 전문 선수였기 때문에 1500m 1등할 줄은 몰랐고, 그렇게 작전 짠 것이 먹힐 줄도 몰라서 굉장히 기뻤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니까 후반부로 갈수록 스피드도 떨어지고 뛰고 나서도 한 2시간은 어지럽더라고요. 그래서 다신 안 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작전이었어요.(웃음)"

- 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밴쿠버 올림픽 이후에 전체적으로 쇼트트랙 팬이 많이 늘었는데, 그 중에서 저를 심각하게 좋아해주는 팬들이 몇 명 있어요.(웃음) 한 번은 고2 학생이 내년에는 수험생이 돼서 경기를 보러 올 수 없다고 제 앞에서 우는데, 그때 제가 선수인 게 굉장히 자랑스럽더라고요. 이렇게 나를 보러오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선수로서 정말 보람찼어요. 전에는 먹을 거 위주로 선물도 많이 받곤 했는데, 여자 친구(현 쇼트트랙 국가대표 박승희)가 생기니까 다 없어졌어요.(웃음)"

- 은퇴의 시기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
"상황만 된다면 저는 평창까지 뛰고 싶어요. 저는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체력관리만 잘 하면 충분히 해 볼만 할 것 같아요. 스피드의 이규혁선수를 봐도 나이가 많은데도 자기관리를 잘 해서 지금도 국가대표로 뛰고 계시잖아요? 그런 거 보면 불가능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도 저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실력이 계속 올라오고 있어서 평창에서 어떻게 될지 몰라요.(웃음)"

- 올림픽 출전 가능성은 얼마나 있다고 보나?
"50대50이에요. 올림픽뿐만 아니라 모든 경기 들어갈 때 마다 언제나 가능성은 50대50이라고 생각해요. 쇼트트랙은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장담하고, 확신할 수 없거든요. 당장 눈앞의 목표는 내년 4월에 있을 선발전이고, 더 멀리 나가서는 소치올림픽이 목표에요. 물론 더 할 수 있다면 평창까지 하고 싶은데, 승희는 소치까지만 하고 그만두고 싶어 하기 때문에 선발전 준비 잘 해서 승희랑 같이 꼭 소치에 가고 싶어요."

빙상의 미래를 말하다... "선수층 얇아지고 있다"

- 선수생활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후배가 많을 것 같다. 후배들에게 '선배 이한빈'은 어떤 사람인가?
"제가 첫 인상이 차갑고 말수가 없다보니까 여자후배들은 저를 무섭게 생각해서 다가오질 못해요. 그래서인지 친한 여자후배는 거의 없어요. 반대로 남자 후배는 저를 따라주는 사람이 많은데, 대부분이 한체대 후배들이에요. 이한빈 라인이다라고 해서 자기네들끼리 '빈라인'이라고 부르는데, 김도겸, 서이라, 주형준, 엄천호 얘네가 주축이에요.(웃음) 실제로는 제가 마음이 약해서 혼을 잘 못 내기 때문에 후배들이 잘 따라주고 친하게 지내요."

- 반대로, '후배 이한빈'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선수'가 있다면?
"현수형이 가장 롤모델에 가까워요. 가까이 보면서 느낀 거지만 현수형은 그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노력파에요. 타고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될 만큼 지금의 노력이 현수형을 만들었어요. 예전부터 롤모델로 현수형을 꼽았었는데, 오랜 시간 부상으로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실력으로 이만큼 왔다는 게 요즘에 와서 더 대단하다고 느껴요. 저도 선수생활을 오래 하고 싶은데 쇼트트랙 선수 중에 저 나이에 저 정도의 기량을 갖춘 선수가 흔치 않거든요."

-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량을 갖춘 후배 선수들이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 쇼트트랙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이 보기에는 쇼트트랙이 기량 좋은 어린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세대교체가 잘 이루고 지고 있다고 하지만 선수인 제가 보기에는 선수층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쇼트트랙이 인기는 많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비인기종목이잖아요? 올림픽 때만 반짝 인기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관심과 지원이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지금 국가대표 자리에 있는 저희들이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요."

- 쇼트트랙이 밴쿠버 올림픽 이후로 인기가 부쩍 늘지 않았나?
"네 확실히 많이 늘어나긴 했어요. 경기 보러 오는 관중들도 생겼고요. 한 번은 올림픽 직후에 목동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관중이 1000명 정도가 온 거예요. 평소에는 학부모님들 외에는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많은 관중들 때문에 통제가 안 될 정도였는데 하지만 선수들은 굉장히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팬 분들이 경기장 오셔서 응원도 해주고, 소리도 지르고, 박수도 쳐주면 아무래도 선수들은 경기할 때 힘도 나고 뛰는 재미도 생기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많은 시간이 지나서인지 살짝 사그라진 것 같아요."

- 빙상 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올림픽 때 잠깐 인기 얻는 반짝 스포츠가 아니라 평소에도 쇼트트랙이 사랑 받을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왜 '악플도 관심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경기 보시고 맘에 안 드는 건 욕 해도 좋으니까 그런 관심이라도 주셨으면 좋겠어요."

- 실제로 악플을 받아 본 적이 있나?
"저 욕먹은 적 많아요.(웃음) 자세 지적하는 팬들도 있고, 매너가 좋지 않다더라 하는 팬들도 있어요. 물론 볼 당시에는 살짝 기분이 나쁜데, 제가 고칠 점들이니까 보고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저는 저한테 충고해주는 걸 좋아해서, 악플도 관심이다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요. 앞으로 고쳐나가면 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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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이스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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