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군단' 퀸즈파크 레인저스(QPR)에게 더 이상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없었다. 감독교체로 인한 깜짝 충격효과는 결국 한 달을 넘지 못했다. 꿈에 그리던 첫 승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퀸즈파크가 뼈아픈 2연패를 당하며 강등의 먹구름이 점차 현실로 드리우고 있다.

크리스마스에서 신년 초까지 이어지는 '박싱데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흔히 죽음의 일정을 상징한다. 이 기간 동안 팀마다 3~4일 간격으로 최대 4경기 이상을 소화해야한다. 시즌 중반에 접어들며 각 팀마다 부상선수들의 발생과 체력저하로 변수가 많은 시점이라 이 기간에 순위 판도가 요동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특히 선수층이 얇은 중하위권팀에게는 가장 희비가 엇갈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레딩과 함께 강등 0순위로 꼽히는 퀸즈파크에게 이번 박싱데이는 중요했다. 풀럼과의 17라운드 경기에서 꿈에 그리던 첫 승을 따내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 듯했던 퀸즈파크는 뉴캐슬과의 18라운드 경기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했다. 강팀들과의 일전을 줄줄이 앞두고있는 퀸즈파크에게는 그나마 전력이 다소 떨어지는 19라운드 웨스트브롬위치와의 홈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였다.

하지만 퀸즈파크는 다시 시즌 초반의 한심하던 모습으로 되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이날 패배의 결정적인 빌미가 되었던 것은 바로 선제골을 내준 골키퍼 로버트 그린의 실책에서 비롯됐다. 퀸즈파크 부임 직후 이적생들 대신 기존 멤버와 영국 출신 백인 선수들을 더 중용하던 래드냅 감독은 이날도 부상에서 회복한 주전 골키퍼 훌리우 세자르 대신 후보 골키퍼 그린을 선발 라인업에 세웠다.

그린은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다가도 종종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팀을 위기에 몰아넣는 경우가 많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미국전에서 보여준 자책골급 실수가 대표적이었고, 시즌 초반 스완지전에서도 실책성 플레이가 이어지자 전임 마크 휴즈 감독은 그린을 벤치로 돌리고 세자르를 줄곧 중용해왔다.

역사는 또 다시 되풀이되었다. 팀이 0-1로 뒤지던 후반 시작 5분 만에 이날의 결승골이 바로 그린의 손끝(?)에서 터졌다. 코너킥 상황에서 그린은 공을 골대 위로 쳐서 바깥으로 넘기려고 했으나 그만 자기편 골문 안으로 공을 집어넣고 말았다. 골대 바깥으로 향하던 공이 그린의 손을 맞고 안쪽으로 굴절되었기에 당연히 그린의 자책골로 기록됐다. 농구 경기에서 비하인드 백패스를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득점상황전에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 경합과정이 있었고 퀸즈파크 선수들은 골키퍼 차징파울을 주장했으나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이 시점이 결국 경기의 흐름을 결정짓는 한 방이 되고 말았다.

이후의 경기는 퀸즈파크식 '희망고문'의 재방송이었다. 래드냅 감독은 주니어 호일렛과 삼바 디아키테를 투입하며 반격에 나섰고, 후반 23분 지브릴 시세가 만회골을 터뜨리며 추격의 시동을 거는 듯했으나 더 이상의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다. 특히 후반 막판 잠그기로 전환한 WBA를 상대로 수 차례나 세트피스 찬스를 얻고도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이로서 퀸즈파크는 레드냅 부임 이후 초반 4경기 연속 무패(1승3무)의 상승세를 이어오지못하고 2연패의 늪에 빠졌다. 뉴캐슬전은 경기내용과 점유율 면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고, WBA전은 기회를 잡고도 제풀에 자멸하는 전형적인 퀸즈파크식 경기를 되풀이했다. 휴즈 감독 경질이후 반짝 상승세로 돌아서는듯했던 퀸즈파크였지만 결국 감독교체의 '약발'이 떨어지면서 팀이 근본적으로 바뀐게 없다는 것만 입증한 셈이다.

부임 직후 몸값을 못하는 이적생들의 경기력을 줄곧 비판해왔던 래드냅 감독은 이날 패배로 더욱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래드냅 감독이 전폭적인 신임을 보였던 아델 타랍이나 로버트 그린, 제이미 마키 등은 최근 경기에서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불안한 수비 조직력과 극악에 가까운 세트피스 능력 부재는 래드냅 감독 부임 이후에도 전혀 개선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팀이 한창 강등전쟁으로 힘든 시기에 선수단간 융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도리어 갈등과 분열만 조장했다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이날 패배는 사실상 퀸즈파크에 2부강등의 '사형선고'가 눈앞으로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데자뷰였다. 퀸즈파크는 이날 패배로 19위 레딩과 같은 1승 7무 11패(승점 10점)을 기록했으나 골득실에서 1골 뒤져 다시 최하위로 추락했다. 1부 생존 마지노선인 17위 사우스햄튼(승점 16점)과의 격차는 6점차.

WBA전으로 퀸즈파크는 정확히 프리미어리그 38경기의 절반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올해 프리미어리그 강등권은 승점 35~40점 내외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19경기서 승점 10점을 따내는 데 그친 퀸즈파크가 반등을 노리려면 남은 경기에서 최소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거나 무조건 10승을 노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실적으로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래 이러한 반전을 일궈낸 경우는 없었다.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퀸즈파크의 다음 상대는 31일 리버풀, 내년 1월 3일에는 첼시로 이어진다. 하나같이 프리미어리그 전통의 강호로 꼽히는 팀들이다. 무릎부상으로 개점휴업 중인 박지성은 1월 초까지 출전이 불투명하고, 조제 보싱와는 래드냅 감독과의 불화로 1월 이적시장에서 팀을 떠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잇다. 더구나 팀이 가장 승점관리가 시급한 1월 중순에는 에이스 아델 타랍이 네이션스컵 차출로 팀을 비울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좀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 퀸즈파크의 암울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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