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감독들. 왼쪽부터 김대승 변영주 민규동 감독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감독들. 왼쪽부터 김대승 변영주 민규동 감독오마이뉴스

"독립영화전용관이 다시 개관하기는 했지만 독립영화가 많이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정상화 됐는데, 앞으로도 잘 되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2012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한 변영주 감독은 지난 5일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진보신당 당원인 변 감독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 4일에는 <만추>의 김태용 감독,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 <후궁 : 제왕의 첩>의 김대승 감독 등 국내 주요 영화감독 40인이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을 '보수도 진보도 아닌 영화주의자들'라고 밝힌 감독들은 "잘못된 대통령이 국가와 사회를 망치는 거악임을 배웠고 잘못된 대통령이 더 잘못된 대선후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도 익혔다"면서 "배우고 익힌 것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문재인 후보를 선택하고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12일에는 문화예술계 인사 1만 명이 참여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이 있었는데, 영화계에서는 감독 제작자 현장 스태프 등 2200여 국내 영화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감독들은 지지선언, 배우들은 투표 독려

 배우 류현경 씨의 부재자투표 인증샷
배우 류현경 씨의 부재자투표 인증샷류현경 미니홈피

대선이 목전에 다가온 가운데 한국영화계의 문재인 지지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예전 선거에서는 보기 힘들 만큼 한국 영화 전체가 결집하는 분위기다. 독립영화인들은 주로 진보정당을 지지해 왔으나 이번 대선만큼은 이견이 없어 보인다. 야권단일후보를 지지하겠다는 것이 영화인들의 일반적 생각이었지만 문재인 지지와 안철수 지지로 갈려 있었다.

차승재 영화제작가협회장과 정지영 감독, 이준익 감독, 배우 문성근 명계남씨 등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면, 평소 진보정당을 지지하던 감독들과 독립영화진영은 안철수 전 예비후보에 대한 호감이 강했다.

이 때문에 안 전 예비후보의 사퇴 이후 아쉬움을 나타내는 영화인들이 많았으나, 안 전 예비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선거운동을 적극 돕기 시작하면서 영화계의 분위기도 차츰 정돈되는 양상이다.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데는 대부분 영화인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배우들은 지지의사를 밝히기보다는 투표참여를 독려하고 있으나, 각자 형식만 다를 뿐 영화계의 분위기는 감독들이나 배우들, 현장 스태프 모두 차이가 없다는 것이 영화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배우 박중훈씨는 SNS를 통해 "투표를 기권하면 보기 싫은 사람이 되는 수가 있다"며 투표 참여 글을 남겼고, 배우 류현경씨는 영화촬영현장에서 부재자 투표 인증샷을 올리며 한 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우 엄정화씨도 트위터에 "서울서 투표할 거에요! 투표. 투표! 투표. 투표!" 글을 올리며, 투표 독려에 동참했다.

감독조합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지지가 쏟아지고 있어 대세에 편승하는 모양새는 정치적으로 비칠 수 있기에 관망하는 감독들도 있다"면서 "대신 일전에 문재인 지지 영상을 편집해 공개했던 정윤철 감독을 중심으로 가까운 배우들을 모아 투표독려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영화계 인사들의 움직임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주로 보수원로 영화인들이 박근혜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고는 있으나, 최근 영화계 내부의 비리 문제 등과 얽힌 탓인지 대놓고 지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근혜' 이어지면 한국영화 미래 암울"  

 2010년 5월 이명박 정권의 영화계 탄압에 반발해 영진위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영화인들
2010년 5월 이명박 정권의 영화계 탄압에 반발해 영진위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영화인들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계의 문재인 결집은 문재인 후보나 민주통합당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이명박 정권의 영화계 탄압이 초래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대다수 영화인들의 견해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이명박 정권의 연장선이기에 한국영화의 미래가 암울해 진다는 것이다. '이명박근혜'에 대한 불안감이 한국영화를 문재인 후보 쪽으로 몰리게 하고 있는 셈이다.

'좌파청산'은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 영화 정책 기조였다. 이 과정에서 각종 부정과 불공정 심사, 표적 감사 등이 자행됐고, 영화계와의 감정적 대립만 심화됐다.

대표적으로 독립영화 지원은 대부분 축소하거나 없앴다. 공들여 만들어 놓은 독립영화전용관 또한 부정 심사를 통해 엉뚱한 쪽에 넘기며 망가뜨렸다. 

국내서 개최되는 여러 국제영화제들도 목표물이 됐고, 공적인 심사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은 영화계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영화정책이 사실상 영화 죽이기 정책으로 인식되면서 한국영화와 정권과의 대결구도는 수년간 계속됐다. 최근 들어 영화계의 반발이 부담되는 듯 간섭의 강도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언제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영화계의 걱정이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사실 정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번 정부가 촛불 집회 이후에 보여준 건 상상을 초월했다"며 "후보자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탄압하지 않을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가장 피해를 입은 대상 중 하나였는데, 공동주최자인 영진위가 2년 동안 예산지원을 끊었다가 올해 들어 모든 지원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후보의 영화 정책 또한 부실함이 드러나면서 영화인들의 불신을 얻는 데 한몫하고 있다. 박 후보가 제시한 공약 중 영화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독립예술영화전용관 확대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이명박 정권이 잘 운영되던 독립영화전용관을 공모란 이름으로 부정 심사를 통해 빼앗고 사실상 강탈하는 모습을 보였던 탓에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예전처럼 자격 안 된 단체를 내세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박근혜 영화 공약은 없는 것으로 봐야"...표현자유 위축 우려

 영화 <돈 크라이 마미> 관람을 위해 상영관을 찾은 박근혜 후보
영화 <돈 크라이 마미> 관람을 위해 상영관을 찾은 박근혜 후보박근혜캠프

특히 영화계 현안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기업 독과점 개선과 스태프 처우 등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영화계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강성률 광운대 교수는  "박근혜 후보의 영화 쪽 공약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가장 심각한 스크린 독과점과 배급사의 상영관 독과점이 빠졌고, 영진위. 영등위 개혁 방안도 없다"고 비판했다. "다양성영화 사업은 있다지만 운영을 편파적으로 할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영진위 사무국장을 지낸 김혜준 부천문화재단 대표는 "박 후보의 공약에는 표현의 자유, 문화산업 분야 경제 민주화, 현장 주도의 민주적 거버넌스 같은 핵심이 빠졌다. 철학과 가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밥만 먹곤 못 사는데, 그렇게 얘길 해도 안 듣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 후보는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11월 영화 <돈 크라이 마미>를 관람하며 영화감독 등과 만났으나 영화의 소재인 성폭력 문제만 언급했을 뿐 영화계 사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영화 쪽 현안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영화 관람 및 영화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영화계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집권할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이 지금보다 더 열악해 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를 풍자한 <자가당착>의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사실상 상영이 어려워졌는데,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박 후보가 집권할 경우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박 후보가 언론의 정상적인 사진 보도에 대해 "악랄하다"고 말하면서 불쾌감을 나타낸 이후 이런 우려는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민감한 소재에 대한 영등위의 정치적 심의가 더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등위의 등급심의는 최근 계속 논란을 빗고 있는데,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도 국내 상영이 가로막히는 등 표현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조광수 감독 "문재인 지지는 정권교체 위한 전술적 선택일 뿐"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김조광수 감독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김조광수 감독성하훈
한국영화 미래에 대한 우려가 문재인 후보 지지로 표출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민주통합당과 후보 개인에 대한 열성적인 지지로 보이지는 않는다. 참여정부 시절 한미FTA 추진과 스크린쿼터 축소 등에 대한 서운함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한 학생은 영화감독 40명 지지선언에 대해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한미FTA를 추진한 신자유주의 세력에 지지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이들이 영화감독이 아니거나, 영화주의자들이 죄다 얼어 죽은 게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지지 40인 감독 선언에 참여한 <동갑내기 과외하기> 김경형 감독은 "그 같은 의견에 동의한다"면서 "다만 정권교체가 우리에게 좀 더 나은 전선과 공간을 줄 거라고 믿는 것 뿐이고, 영화주의자란 표현은 이념적 분류를 허용치 않겠다는 의도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해명했다.

김조광수 감독은 "나는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이지 민주당 지지자는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야권단일후보 문재인을 지지한 건 정권교체를 위한 전술적 선택이며. 박근혜 정권 탄생을 막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동성애·동성혼 허용 법률 안을 막겠다"는 입장을 밝힌 민주당 김진표 의원을 겨냥해 "동성결혼 지지를 선언한 오바마, 미국 민주당보다도 못한 한국 민주당을 지지할 마음 눈꼽만큼도 없다"면서 정권교체 후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개혁과 성소수자정치세력화를 위해 투쟁할 계획이고, 김진표를 비롯한 호모포비아 정치인들은 투쟁의 대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성하훈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한국영화 문재인지지 18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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