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기획 아이템을 내라고 성화다. 하지만 전 언론사에 있을 때 이미 기획기사 수백 개를 썼었다. 더 이상 이리저리 묶을 것도 없다. 더 이상 식상한 아이템으로 기획기사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국장님이 내놓으란다. 와, '죽것다'. 다시 머리를 쥐어 짜낸 결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내가 영화를 만들어보자. 내가 영화를 만들며 느낀 것을 써 보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낮에 회의가 다 끝나지 않아 그날 밤 마포 <오마이스타> 회식자리까지 와서 콘티 점검을 해주신 김기태 촬영 감독님.

낮에 회의가 다 끝나지 않아 그날 밤 마포 <오마이스타> 회식자리까지 와서 콘티 점검을 해주신 김기태 촬영 감독님. ⓒ 조경이


드디어 나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였던 제작진이 꾸려졌다. 극적으로 그리고 순식간에.

말도 안 되게 휴가를 일찍 다녀온 이후에, 나의 단편영화 만들기는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단편영화만들기 초창기부터 나에게 스태프를 꾸려주겠다던 한 제작사 대표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음을 전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일이 기적적으로 풀렸다. 단편영화에 이야기 엔터테인먼트의 신인배우 안대영을 카메오로 캐스팅하기 위해서 매니저인 장철한 실장님을 만났을 때 일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안대영이라는 신인의 카메오 출연으로 만났지만 이런저런 프로젝트의 고단한 이야기를 하기 마련. 그때, 장철한 실장님이 툭하고 '내가 프로듀서 해준다고 했었잖아'라고 단박에 말을 꺼냈던 것. 물론 이전에 장 실장님이 프로듀서를 해준다고 말을 살짝 꺼낸 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진짜로 진심이었는지는 몰랐다. 

돈도 안 되는 그야말로 주위에 스태프들을 오직 인맥으로만 끌어 당겨야 하는 단편영화만들기가 아닌가.

"정말 해주실 수 있어요?"라는 나의 질문에 장 실장님은 두말 않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더니, 바로 이 단편영화 만들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베테랑 제작진 3명을 캐스팅해주셨다.

"<김복남> 김기태 촬영감독님과 <최종병기 활> 김경석 조명감독님 확정"

 김경석 조명감독님과 김기태 촬영감독님.

김경석 조명감독님과 김기태 촬영감독님. ⓒ 조경이


대박이었다. 정말 '대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은혜로운 순간이었다. <아름답다><영화는 영화다><비몽><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헤드><미확인 동영상><내가 살인범이다> 최근에 빅뱅의 탑이 출연을 결정지은 영화 <동창생>의 촬영감독님인 김기태 촬영감독님이 선뜻 오케이를 해주셨다. 

정말 꿈만 같았다. 이 작은 단편영화 프로젝트에, 사실 상업영화의 프로인 감독님이 아닌 영화학도 학생들을 섭외해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를 해주시기로 했다. 

여기에 <최종병기 활>의 조명을 맡으셨던 김경석 조명 감독님(<동창생>에도 참여), 다수의 CF와 뮤직비디오 연출로 유명한 김보람 감독님이 슈퍼바이저 역할을 맡아 영화의 전체적인 연출의 흐름을 도와주시기로 했다. 여기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송진혁 녹음기사님과 국청아 스크립터께서 흔쾌히 참여를 결정해주셨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보통의 단편영화만들기는 삼삼오오 작은 예산으로 만드는 것인 줄은 알지만 이 제작진의 구성은 실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재능기부'로 선뜻 단편영화 프로젝트에 참여"

 슈퍼바이저 역할을 해주기로 한 김보람 감독님과 이 단편영화의 프로듀서 장철한 실장.

슈퍼바이저 역할을 해주기로 한 김보람 감독님과 이 단편영화의 프로듀서 장철한 실장. ⓒ 조경이


그 배경은 바로, 다름 아닌 '재능기부'였다. 이 단편영화만들기 프로젝트는 <오마이스타> 1주년에 맞춰 오는 8월 말에 상영회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1주년 상영회만 하고 우리끼리 먹고 마시며 끝내는 것은 그 의미가 작게 느껴졌다. 우리끼리 좋자고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바로 이 상영회에 참석한 연예산업 업계, 영화계 관계자들에게 영화 상영료를 받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만든 영상이 아닌가. 어느 정도의 입장료를 받고, 이 상영회에서 모인 금액 전액을 영상의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을 위해 '카메라'를 기증하는 것이다.  

<오마이스타>와 인연을 맺고 있는 안산의 '코시안의 집'이 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배움터. 이곳의 김영임 원장님이 아이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김영임 원장님은 "이곳 아이들도 한국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연예인이 제일 되고 싶은 1등 꿈"이라고 말씀하셨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르지만 한국에 거주하며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연예인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느 우리 아이들처럼. 

그렇다면 이 아이들이 연예인의 꿈과 더불어, 영상에 대한 꿈을 꾸고 영화감독도 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아이들끼리 으쌰으쌰 해서 영상물을 만들면서 다 같이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고, 그들만이 느끼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시각에 대해서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안산의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어렵게 크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라도 있는 것일까. 그런 작은 카메라라도 있으면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 아이들 중에서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도 연예인과 영화감독의 꿈을"

 19살 최연소 스태프 이예슬 양이 그려준 콘티를 보고 회의를 하고 있는 제작진

19살 최연소 스태프 이예슬 양이 그려준 콘티를 보고 회의를 하고 있는 제작진 ⓒ 조경이


그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나의 단편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오마이스타> 1주년 파티 상영회를 넘어서서 '재능기부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결심에 이르게 됐다. 어려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마음껏 쓸 수 있는 카메라를 사주기 위한 '재능기부' 단편영화 프로젝트로 정리됐다.

이 취지에 상업영화에서 내로라하는 감독님들이 참여를 하게 됐다. 김기태 촬영 감독님은 "단편영화를 하려는 분들이 많아서 가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도와주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취지가 너무 좋았어요. 제가 갖고 있는 현장의 노하우라면 노하우, 재능이라면 재능 그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김기태 촬영 감독님을 비롯해, 김경석 조명감독님, 김보람 감독님, 장철한 프로듀서까지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분들에게 새벽에 이메일을 써서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할 때, 마음이 많이 조렸다. 사실 너무나도 소심한 성향의 나이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몇 번의 좌절도 겪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빠서 혹은 다른 일로 인해서 결국 참여를 못할 것 같다는 거절을 하신다고 해도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까지 했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이 '재능기부'에 확고히 마음을 굳혀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좌충우돌 단편영화를 만드려고 하는 나처럼,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도 그리고 나중에는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그 꿈을 계속 키워나가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아마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장철한 실장님과 김경석 조명 감독님.

장철한 실장님과 김경석 조명 감독님. ⓒ 조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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