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빚이 2억이 넘었다. 구조조정으로 실직되고 재취업도 힘들자, 결국 한강다리에서 뛰어 내렸다. 그런데, 한강 밤섬으로 떠내려가 '병신같이' 자살도 실패했다. 거기서 다시 자살을 시도하다 죽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상의 무인도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정재영·정려원이 주연한 이해준 감독의 <김씨표류기>라는 영화의 내용이다. 서울이란 대도시 안에서 무인도 생활이란 독특한 소재에 완성도 높은 영화였지만, 흥행의 부진을 각종 영화제 초청으로 달래야 했던 아쉬운 영화였다.

한강 밤섬, 무인도에서 짜장면 만들며 찾는 희망

김씨는 물에 뜬 물고기나 죽은 새들을 구어 먹으며 원시적인 무인도 생활에 제법 적응한다. 더 이상 빚에도 취직에도 쫓길 필요 없이, 더 바랄게 없는 '완벽한 심심함'을 즐긴다.

한편, 한강변 아파트에는 또 다른 김씨가 있다. 머리 오른쪽엔 흉터가 있고 학교 다닐땐 왕따였다. 그 영향인지 3년째 방에서만 지내는 여자 김씨다. 세상과 만나는 건 미니홈피를 통해서다. 거기선 돌로레스라는 세련된 이름을 가지고 샤넬 제품으로 치장하는 패션 리더다. 많은 방문자들이 부러워하는 홈피의 세련된 사진들은 물론 어디선가 퍼와 합성한 것이다.

그녀의 취미는 달 사진 찍기다. 달에는 아무도 없기에 오히려 외롭지 않다고 여겨 그녀가 좋아하는 곳이다. 달을 찍던 그녀의 망원렌즈에 밤섬에서 표류 중인 김씨가 들어온다.

더부룩한 수염에 팬티바람인 남자 김씨를 보고 여자 김씨는 외계인을 대하는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녀는 "님은 수줍음이 많으며 더러운 걸 좋아하고 모험을 즐기는 확실한 변태"라고 정의하면서, 마치 외계 생명체와 교신하듯 와인병에 'Hello'라고 쓴 종이를 넣어 강으로 던진다. 이를 발견한 남자 김씨는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음을 느끼며, 모래밭에 'Hello'를 써서 화답한다. 그렇게 둘의 기이한 소통이 시작된다.

김씨는 강물에 떠내려온 짜파게티 봉투를 발견하곤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궁리하던 끝에 새똥에 식물 씨앗이 있을 것이라는 '천재'적인 생각을 하고, 새똥을 긁어모아 밭에 심는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여자 김씨는 수표를 내서 밤섬으로 짜장면을 배달시켜준다.

하지만, 남자 김씨는 짜장면을 돌려보낸다. 여자 김씨는 배달원으로부터 "자기한테 짜장면은 희망이다"라는 거절의 말을 듣는다. 희망이란 그녀에겐 '백년만에 들어보는 단어'였다.

김씨는 희망에 몰두한다. 운 좋게도 옥수수 하나가 피어나고, 이를 수확해 찧고 빻아 면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짜파게티 스프를 넣어 감동의 짜장면을 먹는다.

무인도보다 더 살기 힘든 경쟁 사회

사회에선 절망했던 그가 도리어 무인도에서는 희망을 먹는다. 이 역설은 우리사회가 무인도보다 더 거친 생존의 장임을 보여준다. 무인도에서는 그냥 살면 되지만, 이 사회에선 얼마나 능력있는 사람인지 증명하고 경쟁해야 한다. '승자독식', '1:99'가 말해 주듯 유능하기보단 무능하기 쉬운 사회이다. 

그래서 영화 속 대사처럼 "남들 다하는데 넌 안되냐"란 말을 남들도 똑같이 듣고 자라는 사회이다. "희망을 갖자. 대출을 받자"라는 영화 속 대출회사의 광고처럼, 사회는 늘 희망을 말하지만 실은 절망을 안겨주는데 익숙한 서바이벌 오디션의 경쟁 사회이다.

"Who Are You?"라는 답하기 너무 힘든 질문

남자 김씨가 눈물을 흘리며 짜장면을 먹는 모습에 여자 김씨도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 희망은 "Who Are You?"라는 질문으로 깨진다. 자기에게 짜장면을 보낸 따뜻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 남자 김씨는 모래밭에 ''Who Are You?"를 써 놓았다.

이를 보고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마침 미니홈피의 사진이 가짜임이 들통 나고 비난의 댓글이 쏟아진다. 그녀는 잘난 누구이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그녀에게 사회란 잘난 누구이지 못하면 따돌림 당하는 곳이었다. 그런 사회가 두려워 스스로 방안에 갇혀 살아왔는데, 'Who Are You'는 감당하기 너무 힘든 질문이었다.

명상이란 바로 'Who Are You'에 답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능력 있고 멋진 'Somebody'가 되어야 한다는 주변의 압력을 받고, 또 스스로 이에 상응하는 내적 강박을 갖는다.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열등감에 시달리고, 심하면 사회가 두려워 스스로 고립되고 자살까지 생각한다.

외부에서 어떻게 평가하든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에게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못난 나라고 동의하는 나는 누구일까.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것이 공식적인 진리인데 잘나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다고 판정을 내리는 내 안의 당신은 누구인지, 그 누구를 살피는 것이 명상이다.

나라고 여기는 그 모든 자아상이 허상이고 그저 존재로서 '무아'라는 불교식 명상은 너무 높기에 우선은 미루어 두자. 지금 필요한 명상은 잘난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내 안의 '당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묻고, 지금 이대로의 나를 왜 긍정할 수 없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김씨처럼 표류가 필요한지 모른다. 외부사회로 부터의 압력을 차단하고 완벽한 심심함을 즐기며 내적인 욕구에 충실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그럴 때 나는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나에게 필요한 정도의 유능함은 있다는 사실에, 짜장면처럼 소소한 것에서도 큰 기쁨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할지 모른다.

명상은 내가 누구인지를 살피는 것

하지만 세상은 이만큼의 행복도 허락하지 않는다. 밤섬을 청소하러 온 사람들에 의해 남자 김씨는 다시 세상으로 내쳐진다. 남자 김씨가 섬에서 내쫓기는 모습을 보던 여자 김씨는 3년 만에 맨 얼굴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온다. 마음을 열고 나누었던 그가 사라지려 하니까.

그가 잘난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관심을 갖고 마음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보다 더 외로워 보였기에 돕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벗어나 타인을 품을 때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된다. 이것이 없어도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낮은 자들의 연대다.

그녀가 있는 힘껏 달려보지만, 그는 버스를 타고 사라져간다. 그녀는 안타까운 눈물만 흘린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난다. 세상을 멈추게 하는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울리고 버스도 멈춘다. 그녀는 힘껏 뛰어가 버스에 올라타 그에게 말한다. "My name is 김OO"이라고.

우리가 누군가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자책할 때, 우리는 나를 만날 수 없고 내안의 하트도 느낄 수 없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할 때, 자책에서 벗어나 하트를 낼 때, 나를 그리고 나를 존중해주는 타인을 만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삶에도 멈춤을 알리는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필요하다. 사회의 수레바퀴를 멈추고 고요함 속에서 나를 돌아 볼 성찰의 시간을 위해서 말이다.

첨부파일 whoareyou.jpg
김씨표류기 정재영 정려원 명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