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덤덤했다. 아니 무덤덤해 보였다. 지난 13일 첫 언론시사 이후 21일 전국 개봉을 맞은 심정을 물었을 때, 그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말을 되뇌었다. 순제작비로만 280억이 들어간 대작 영화를 만천하에 공개한 수장의 속마음이란 그런 것일까. 분명히는 몰라도 그 역시 내심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강제규 감독과 대화 중 흥미로웠던 것은 올해 안에 일반 관객들 틈에 섞여 꼭 영화를 보겠다는 결심이었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죠. 다른 나라 관객들 반응도 같이 봐야하고요. 관객들의 솔직한 반응을 보기 위해선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게 좋죠. 상영관의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어요. 현장의 생생한 공기까지 말입니다. 조만간, 아니 올해 안엔 꼭 갈 생각입니다."

 영화 <마이웨이>의 강제규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예논빌딩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영화와 배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영화 <마이웨이>의 강제규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예논빌딩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영화와 배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이정민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교?..."태생적으로 다른 영화다"

<마이웨이>를 보면서 아무리 양보해도 딱 하나 절대 양보할 수 없던 게 바로 영화가 재현한 전쟁장면의 완성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노르망디, 노몬한 전투를 비롯한 각종 전투 장면들은 할리우드 부럽지 않은 질적인 비약이 있었다.

"그 지점, 그러니까 기술적인 지점은 굉장히 만족도가 높아요.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가장 크게 다가온 고민이 예산 문제와 여러 전쟁 상황을 화면에 어떻게 담아낼지 였어요. 포로수용소에서의 화면은 어떻게 할까, 특히 노르망디 전쟁 부분은 이미 관객들이 절대적 기대치를 갖고 있는데 어찌 할지 고민이 많았죠. 우리 기술과 예산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던 부분도 있었고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최종 영상을 본 후 그 부분에 대해선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봐요. 제한이 많았던 상황에서 나름 잘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강제규 감독이 말하는 관객의 기대치란 바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두고 한 말이다. 최근작 중 노르망디 전쟁을 가장 극적으로 만든 영화인만큼 같은 소재를 끌어온 <마이웨이> 역시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비교 대상은 또 있다. 바로 강제규 감독의 7년 전 전작 <태극기 휘날리며>다. 한국 전쟁 소재에 <마이웨이>에서의 장동건이 혈기왕성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강 감독이 피해갈 수 없는 비교 대상이다. 

"스스로 내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어요. 기술 시사나 기자 시사회를 하고 재미있다 느낀 건 감독 데뷔작인 <은행나무 침대> 한 편뿐입니다.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체가 대견하고 너무 뿌듯했어요. 그 이후 <쉬리>와 <태극기>, 그리고 <마이웨이>까지 재미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 거 같아요.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저건 왜 저렇게 그랬을까' 혹은 '아 이 부분은 지금 봐도 좋다' 이런 생각은 들어요."

자신의 작품에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와 <마이웨이>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는 지를 물었다.

"'태극기'가 굴곡의 근대사에서 가족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했다면 '마이웨이'는 다르죠. 가슴 아픈 가족 이야기는 아무래도 몰입이 쉬운 구조잖아요. '마이웨이'는 한국과 일본 의 두 청년 그것도 서로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긴 여정을 지내며 무엇을 느끼고 교감하는지를 그린 영화입니다. 이런 구조에선 엄청난 감동을 가져올 수 없죠. 태생적으로 감상 지점이 다른데 같은 감독이고 또 장동건도 나오니까 그렇게들 비교하는 거 같습니다. 전쟁이란 막연한 배경 빼곤 영화적으로 연관성은 없는데..."

ⓒ 이정민


 영화 <마이웨이>의 강제규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예논빌딩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영화와 배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영화 <마이웨이>의 강제규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예논빌딩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영화와 배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이정민


배우들과 많은 대화 나눈 감독..."좋아하던 와인, 촬영 없는 날만 마셨다"

지난 21일 개봉한 <마이웨이>는 내년 1월 14일 일본에도 개봉 예정이다. 중국에도 개봉하는데 그 시기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 강제규 감독은 "중국 측의 심의를 아직 못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략적인 개봉일은 2월 말이나 3월이 될 전망이라고. 각 "국가마다 정서가 다르기에 공개될 영화 역시 국내와는 다소 다르게 편집될 전망이다"라는 강제규 감독의 설명이 있었다.

장장 8개월의 촬영 기간과 후반 작업을 거쳐 영화는 완성했지만 감독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강 감독은 예산 문제를 꼽았다. 본래 영화를 위해 요구했던 예산은 300억,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20억 정도가 삭감됐다. 대규모의 장비와 인력이 함께했던 만큼 예산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가장 복병이 날씨였죠. 우리 영화는 특성상 거의 다 야외에서 찍었거든요. 촬영 전까지 최소한 지역별로 5년 동안의 날씨 편차 데이터를 갖고 시작했어요. 심지어는 5년 간 풍속 기록까지 말이죠. 그런데 작년이 워낙 기상이변이 심했어요. 눈도 많았죠. 만약 10 정도로 눈이 온다고 쳐요. 50이 와서 쌓여버리면 다섯 배 이상의 비용이 버려지는 셈이죠."

예상외의 폭설과 잦은 기상이변으로 촬영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 큰 사고 없이 예정된 일정 안에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건 천운이었다. 촬영 일정이 밀리거나 미뤄지면서도 그가 끈을 놓지 않았던 건 배우들과의 소통 덕분이었다. 지난 언론 시사회 때도 살짝 공개됐지만 강제규 감독은 배우들과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판빙빙과 오다기리 죠가 말했던 '좋은 와인이 항상 감독 방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살짝 와전된 것이었다. "배우들과는 와인을 먹은 적이 없고 좋아하던 와인 역시 촬영을 들어가서 부턴 먹지 않았다"던 강 감독은 "먹고 싶어도 일주일에 하루 촬영 없는 날 한 잔을 했다"고 살짝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어 강제규 감독은 방으로 배우들을 부르기보단 본인이 직접 배우들 방에 가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준식(장동건 분)과 타츠오(오다기리 죠 분) 두 사람의 인간관의 조율과정에 섬세함이 필요했어요. 영화가 전쟁의 시대에 한국과 일본 청년이 만나 어떤 관계로 진화하는가 하는 과정을 그렸잖아요?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기에 맞는 감정과 대사의 수위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엔딩에서 준식이가 군번줄을 끊어주려 할 때 타츠오 입장에선 '고맙다' 혹은 '미안하다' 등의 말을 할 법한 상황이었죠. 그 상황에서 대사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겠지만 그 대사가 영화적으로 어떻게 작용할지 배우들과 생각을 공유하려고 굉장히 많은 얘기를 했던 거죠."

 영화 <마이웨이>의 강제규 감독은 차분한 음성으로 영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장동건과 오다기리 죠 그리고 김인권은 강 감독이 스스로 애착을 갖고 섭외했던 배우. 세 캐릭터를 만들어 가기 위해 그는 배우들 방에 직접 찾아가곤 했다고.

영화 <마이웨이>의 강제규 감독은 차분한 음성으로 영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장동건과 오다기리 죠 그리고 김인권은 강 감독이 스스로 애착을 갖고 섭외했던 배우. 세 캐릭터를 만들어 가기 위해 그는 배우들 방에 직접 찾아가곤 했다고. ⓒ 이정민


강제규 장동건 오다리기 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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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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