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조광래 대표팀감독 경질을 8일 공식발표했다. 이날 축구회관에서 열린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에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 황 위원장은 "본선까지 가기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전날 조광래 감독을 만나 사임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해 7월 부임 이후 남긴 성적은 12승 6무 3패. 기록상으로는 결코 나쁘지 않은 성적임에도 극단적인 선택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조광래호는 이미 축구협회의 경질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표류하는 대표팀 운영과 부진한 경기력에 대한 불만 여론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화축구 논란조광래 감독은 처음 지휘봉을 잡자마자 대표팀에 기존 스타일과는 다른 스페인식의 빠른 템포와 패싱게임 위주의 축구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조광래 감독 부임과 동시에 대표팀의 전술적 스타일이 큰 폭으로 바뀌었고 선수 구성도 대거 물갈이됐다. 전문가들은 남아공월드컵 16강으로 조직력이 완성 단계를 향하여 가고 있던 팀에 갑작스럽게 무리한 변화를 주는데 우려를 표시했다.
선수들도 혼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청용(볼턴)은 조광래 감독의 지도철학에 대하여 농담 삼아 "사실대로 이루어진다면 만화같은 축구"라는 표현을 썼다. 조광래 축구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만화축구'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탄생하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곧 이상은 좋지만, 정작 현실과는 괴리된 축구에 대한 잠재적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조광래호는 결국 만화축구의 완성을 끝내 보여주지 못했다.
아시안컵 우승 실패한국축구대표팀은 2010년 1월 '왕의 귀환'을 표방하며 51년만의 아시안컵 정상 도전에 나섰다. 조광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처음으로 나선 국제대회였다. 대표팀은 호주, 이란 등 아시아 강팀들을 상대로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4강에 오르는데 성공했지만 준결승에서 일본의 벽에 막혀 승부차기 끝에 분패했다. 이 과정에서 조광래호는 겉보기에 화려한 패싱게임에 비하여 골결정력 부족과 후반 체력저하로 전술적 효율성 면에서 도마에 올랐다.
조광래 감독의 '경험 부족'에 대한 논란도 두드러졌다. 사실상 8강행을 확정지은 상황에서 선수들의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던 인도전에 무리하게 주전들을 투입한 것이나, 호주전에서 벌어진 유병수의 재교체 해프닝과 항명 파문은 조광래 감독의 리더십과 선수 관리능력에 큰 상처를 남겼다. 허정무호 시절 팀의 주축이었던 박지성-이청용은 아시안컵에서 단 한 개의 공격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하며 선수활용 능력에 의문 부호를 자아냈고, 승부차기에서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로 키커를 구성한 용병술도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K리그 감독으로는 베테랑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초짜'에 불과했던 조광래 감독의 미숙함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영표·박지성 은퇴 선언조광래 감독은 아시안컵 이후 커다란 전력누수에 봉착하게 된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9년간 국가대표팀의 중추로 활약해왔던 주장 박지성과 베테랑 이영표가 아시안컵을 끝으로 나란히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것. 한일월드컵 직후 황선홍과 홍명보의 동반 은퇴로 히딩크 감독에 이어 지휘봉을 잡은 지도자들이 한동안 고심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더욱 불운했던 것은 황선홍-홍명보와 달리 박지성은 아직 선수로서 한창 뛸 수 있는 나이에 부득이하게 은퇴를 선언했다는 점.
조광래 감독은 마지막까지 이들의 대표팀 은퇴를 만류했지만 결심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후 조광래호는 지난 1년간 김영권, 홍철, 김보경, 지동원 등 다양한 선수들을 테스트하거나 전술변화를 통하여 이들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하여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끝까지 기대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한일전 징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