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은 정도전(삼봉)의 뜻을 받들어, 조선에 재상 중심 체계를 확립시키려는 비밀 집단이다.

 

얼핏 밀본의 뜻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대의명분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구린 구석이 많다. 사대주의의 물이 잔뜩 배어 있기 때문이다. 성리학이 곧 '명나라'라 믿는 밀본 집단은 강대국의 것(한자)에 환호작약(歡呼雀躍)하는 반면 우리의 것(한글)은 업신여기고 평가절하한다.

 

이 드라마, 현실을 닮았다

 

SBS <뿌리깊은 나무> 17회의 한 장면 밀본에 소속된 어린 유생이 노비의 신분으로 과거에 급제한 이를 살해한 후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그려졌다.

▲ SBS <뿌리깊은 나무> 17회의 한 장면 밀본에 소속된 어린 유생이 노비의 신분으로 과거에 급제한 이를 살해한 후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그려졌다. ⓒ SBS

30일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밀본과 그들의 동조하는 유생들의 사대주의를 잘 읽을 수 있었다. 뼛속까지 친명인 그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가치관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는다. 섬뜩하고 무서운 일이다.

 

"중화를 거스르는 글자를 만들어 모두가 글자 쓰는 세상을 만들려 한다. 성리학과 관료체계를 뒤흔드는 짓이다. 해서 나는 과거 치른 노비를 처결했다. 도와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30일 <뿌리깊은 나무> 중)

 

이런 밀본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씁쓸한 우리네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극 중 한자만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밀본과, 현실 속 미국과의 FTA만이 경제 발전의 지름길이라는 '그들'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밀본이 뼛속까지 친명이라면, 현실의 그들은 뼛속까지 친미다.

 

FTA를 체결하고, 영어를 알아야 대접받는 세상. 그런 세상 속,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에게 멋들어진 영어 이니셜을 하나 붙여본다. 인터넷에선 이미 유명한 이니셜, 이름 하여 MB(Mil Bon)이다. 

 

어쩌면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은 극 중에만 실재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경제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미국과의 FTA를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나라. 독소 조항 폐기라는 마지막 외침조차 합의가 아닌 힘으로 눌러버리는 세상. 어쩌면 드라마는 현실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쉽게 분노하지 못한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 방관일 수도 있다. 어쩌면 공포가 사람들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그릇되었다 믿는 일을 외면하고 손을 놓게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세종처럼, 당신도 분노해야 한다

 

SBS <뿌리깊은 나무>의 한 장면 밀본의 수장 가리온(윤제문 분)

▲ SBS <뿌리깊은 나무>의 한 장면 밀본의 수장 가리온(윤제문 분) ⓒ SBS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은 공포스럽다, 어느 사극에서 이런 막강한 악인들이 존재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려움 그 자체다. 그들은 최고위층 관료부터 말단 관료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있다.

 

극 속, 그들은 목적을 위해선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궁궐을 넘나들며 학자들을 죽이고, 궁궐 연못에 죽은 학자의 시체를 놓는 엽기스런 행각도 벌인다. 어디 그뿐인가. 영악하기까지 하다. 사대부의 권위는 버리지 못했으면서, 오로지 권력을 위해 서민 깊숙이 파고드는 '꼼수'를 부린다.

 

'빈촌'에, 빈촌 당사(?)를 세운 가리온은 '백정'으로, 또 다른 핵심 측근들은 빈촌의 구성원이 가장해 살아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이보다 더한 친서민 행보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이들의 서민 행세에는 진정성이 없다. 그들의 행위가 '서민 코스프레'에 불과한 이유다.

 

세종은 처음 이 밀본이라는 집단에 두려움을 느꼈다. 이들이 가진 '대의명분' 때문이었다. 왕을 견제하는 재상, 성리학의 나라. 왕으로서 얼마나 살 떨리게 무서운 말인가. 하지만 밀본이 가졌던 고고한 기상은 권력욕 때문에 희석됐다. 말로만 명분을 떠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극 중 세종의 '겨우, 폭력이라니' 라는 한마디 말에선 차가운 분노가 느껴진다.

 

모두가 글을 읽는 세상, 그래서 모두가 좀 더 나은 사회로 나가기 위한 한글 창제에 대항해 밀본 집단이 보여준 행동은 세종의 말대로 '겨우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을 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편인 유생을 자진의 길로 이끄는 밀본에게 더이상 기댈 미래는 없어 보인다.

 

폭력의 밀본에게서 세종은 식지 않는 분노로 '한글 창제'를 이뤄냈다. 이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이것은 그저 '허구'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살아 숨쉬는 한글의 역사가 사실이라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 30일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는 폭력의 사회에 맞선 분노의 힘을 느낄 수 있어 특별했다. 드라마를 보고 가슴 뛰는 당신, 당신에겐 부당한 현실에 맞설 분노가 남았는가?

2011.12.01 12:38 ⓒ 2011 OhmyNews
뿌리깊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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