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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이란 말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역시 진리였다. 에밀리아넨코 표도르가 지난달 31일 미국 시카고 씨어스센터에서 열린 스트라이크포스 대회에서 미국의 댄 헨더슨에게 1라운드 TKO패를 당해 은퇴의 기로에 섰다.
10년간 30번 넘도록 전승, 현존하는 인류 중 최강, 그래서 '60억 분의 1 사나이'로 불렸던 표도르도 세월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차라리 젊은 선수의 패기에 밀렸다면 덜 아쉬웠을까... 마흔 살의 또 다른 노장에게 패하는 모습은 더 안타까웠다.
표도르의 패배를 안타깝게 지켜본 이 중 하나는 탤런트 이매리였다. 이매리는 표도르가 처음 만난 한국 사람이었다. 이매리는 표도르의 첫 방한 때 인터뷰에 나섰고 이 인연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각별했다. 이매리는 98년 프랑스월드컵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하지만 격투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표도르의 순박한 인상과 인간미에 반해 격투기에의 매력에 푹 빠졌고, 표도르가 방한할 때마다 그가 좋아하는 홍삼 제품을 선물하곤 했다. 이매리는 촬영이 없는 틈을 타 표도르를 응원하러 러시아를 방문하기도 했지만, 표도르가 이미 전지훈련을 떠난 터라 매니저이자 M-1글로벌 대표인 바딤 회장의 자택에 초대받은 것으로 만족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표도르는 미안한 마음을 몇 번이나 전하면서 이매리가 출연하고 있던 '내조의 여왕' 드라마에 카메오 출연했다. 이후 표도르는 우여곡절 끝에 스트라이크포스 단체와 계약을 하고 데뷔전을 승리로 이끈 후 러시아 귀국 길에 앞서 한국에 들러서 이매리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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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뼈와 손가락이 부러진 상태여서 철저하게 비공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중에서도 이매리는 예외였다. 이매리는 신윤복 화백의 미인도를 그린 드레스를 입고선 전통미를 담은 넥타이와 함께 그가 출연했던 '내조의 여왕' DVD를 선물했고, 표도르는 자신의 사인을 담은 티셔츠로 답례했다.
잘 나가던 표도르가 첫 패배를 시작할 무렵 이매리 건강에도 이상 징후가 왔다. '신기생뎐' 촬영 시작 6개월 전부터 한국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허리와 무릎이 아픈 것이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 것이었다. 처음엔 안 쓰던 근육이라서 통증이 있겠지 싶었지만 정밀 검사를 해보니 부신피질호르몬저하증 이라는 희귀병이었다. 호르몬의 이상으로 근육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토록 통증에 시달렸던 것이다. 투병 중에도 드라마를 무사히 마쳤지만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이매리는 그 와중에도 표도르의 재기를 응원했다. 기자를 통해 표도르가 힘을 낼 수 있도록 그가 좋아하는 홍삼을 전달할 방법을 묻기도 했다. 사실은 본인의 병세를 걱정한 지인들이 선물한 홍삼이었다. 촬영도 끝났으니 미국으로 건너가 표도르를 직접 응원하고 싶었지만, 11년째 의식불명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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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리의 표도르 응원은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처럼 그녀의 유일한 낙이자 희망이었다. 표도르의 패배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건 그녀의 실망하는 모습이었다. 아니라 다를까 눈물을 쏟아내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말로 위로의 말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홍수환씨의 말을 전했다.
"링에서는 영원한 승리자가 없다. 본 게임은 링에서 내려온 다음부터 시작된다. 인생의 챔피언이야말로 진정한 챔피언이다."
두 사람이 어려운 상황을 훌훌 털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모습으로 재회할 날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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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