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상은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잘 죽은 것일까

▲ 호상은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잘 죽은 것일까 ⓒ 미디어 다음


좋을 호(好), 죽을 상(喪). 우리는 특별한 병 없이 오래 산 노인의 죽음을 가리켜 '호상'이라 부른다. 보통 상가 집에 가서 상주를 위로할 때 쓰는 말이며, 별 뜻 없이 무미건조하게 읊조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이 세상에 호상이라는 것이 있을까? 상주에게는 가능한 말일 것이나, 이를 죽은 망자에게 갖다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세상에 죽고 싶어 죽은 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가끔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택한 이가 있기도 하지만, 아주 극소수를 제외한 자살은 모두 비극을 전제하고 있기에 이 역시 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까지 노인들의 죽음을 호상이라 일컬었을까? 여기 그 답을 가르쳐주는 작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강풀의 만화요, 최근에 영화로 만들어진 <그대를 사랑합니다>이다.

익숙지 않아 감동적인 노년의 사랑...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포스터 강풀의 만화가 드디어 성공한 케이스

▲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포스터 강풀의 만화가 드디어 성공한 케이스 ⓒ 세인트 폴 시네마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남녀 노인 두 쌍의 러브스토리다. 아내를 먼저 보낸 후 그 트라우마로 우유배달을 시작한 만석(이순재 분)과 새벽부터 폐지를 주워 근근이 먹고 사는 송씨(윤소정 분), 그리고 작은 주차장에서 일하는 군봉(송재호 분)과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아내(김수미 분)의 사랑 이야기가 작품 안에 담겨 있다.

줄거리를 대충 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의문은 과연 그 이야기만으로 2시간짜리 영화 분량이 나올까 하는 것이었다. 비록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노인인 이상 러브스토리를 만드는 데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이었다. 오히려 작품 속에 그려진 노년의 사랑은 지금까지 내가 접해왔던 사랑과 전혀 다른 형태로, 익숙하지 않은 만큼 감동적이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일으킨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러브스토리의 끝은 대부분 비슷하다. 그것은 20대 미혼 남녀의 사랑이 대부분 결혼 혹은 이별을 전제로 진행되며, 중년 남녀의 사랑은 백년해로 혹은 파국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년에 하는 사랑의 전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우리가 노년의 사랑에 그토록 어색해 하는 것은 그 나이에 죽음을 전제로 사랑을 그려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작품들이 죽음까지 각오하는 사랑을 그려내지만, 그 죽음은 순리에서 벗어난 것으로써 비극의 장치일 뿐, 노년에 순순히 받아들이는 죽음과는 전혀 다르다.

사랑의 전제 노년 사랑의 조건은 죽음이다

▲ 사랑의 전제 노년 사랑의 조건은 죽음이다 ⓒ 세인트 폴 시네마


절제된 사랑 당신이 아닌 그대

▲ 절제된 사랑 당신이 아닌 그대 ⓒ 세인트 폴 시네마


따라서 노년의 사랑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사랑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의 사랑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반영이자 치유의 방법이다. 김만석 할아버지는 송이뿐 할머니를 '당신' 대신 '그대'라고 부를 만큼 사랑하며, 장군봉 할아버지는 죽음을 함께 할 정도로 그의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다. 과연 어느 독자가 혹은 관람객이 장군봉 할아버지의 동반 자살을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 부부의 죽음은 그 두 노인이 지금까지 짊어지고 왔던 세월의 흔적이며 유일한 탈출구이다.

작품에서 송이뿐 할머니는 김만석 할아버지를 사랑하지만 그와 헤어져 고향에 가고자 한다.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먼저 죽자니 가슴 아프고, 또한 사랑하는 이가 먼저 죽는 걸 보자니 이 역시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노년의 사랑이란 그만큼 더 애틋하고 간절하며 정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당신의 이야기일 수 있는, '죽음'을 전제한 사랑

꽤 오래 전에 개봉되었음에도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는 작가가 노년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에 감동하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노인과 관련된 작품들이 우리 조부모님 혹은 부모님의 이야기였다면,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바로 나의 이야기로 치환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장군봉 할아버지가 죽기 전 자식들을 불러 모은 신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난 자식 입장이었다.)

우리도 늙는다 모두의 이야기

▲ 우리도 늙는다 모두의 이야기 ⓒ 세인트 폴 시네마


이는 강풀 만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인데, 그의 만화는 항상 보는 사람으로부터 강한 감정이입을 이끌어낸다. 아련하게 가지고 있던 각자의 추억을 되살려 현재형으로 만들며,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있던 사소한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현실성을 부여,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화에서 그려낸 1997년 IMF 때를 상기해보자. 그 당시에도 우리 사회에는 만화 같이 소외된 노인들이 많이 계셨을 테고 그들은 더 춥게 겨울을 나셨을 것이다. 단지 우리들이 망각하고 있었을 뿐. 강풀은 이와 같은 사실을 담담히, 그리고 설득력 있게 우리들에게 알려줌으로서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오빠 달려 추억을 달린다

▲ 오빠 달려 추억을 달린다 ⓒ 세인트 폴 시네마


덕분에 우리는 작품에서 '호상'이란 단어에 격하게 흥분하는 김만석 할아버지의 입장을 십분 헤아릴 수 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닥친 죽음은 비극일 뿐, 절대 호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쉽게 호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망자의 입장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뱉는 언사이다. 그것은 아직 늙지 않은 이들의 생각이며, 어리석음의 발로일 뿐이다. 과연 우리가 늙어서도 호상이라는 단어를 그리 쉽게 읊조릴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온 뒤 난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까지 모두 읽었다.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은 나오기 어렵다는 명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만화는 영화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고 비논리적이며 그만큼 더 감동적이다. 당신이 영화를 보고 감동했다면 꼭 만화도 일독해 보시기를. 

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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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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