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의 강렬함' 단편영화의 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짧게는 5분, 길게는 50분 정도에 불과한 짧은 시간 동안때로는 인상적인 화면으로, 때로는 긴장감있는 기승전결의 전개로, 또 때로는 남들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로 강한 인상을 관객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바로 단편영화다.

최근 두 편의 인상적인 단편영화를 봤다. 조현철 감독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척추측만>과 심봉건 감독이 만든 <껍데기>가 그것이다. <껍데기>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스타상 스탭부문(촬영감독)을 수상했고 <척추측만>은 심사위원 특별언급과 함께 관객 평가단이 선정한 '깜짝상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했고 어떤 인상을 줬을까? 이 두 편을 소개한다.

병을 앓는 소년 소녀의 사랑 <척추측만>

'어찌 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저녁의 고가도로. 그 곳에서 피부병이 온 몸에 퍼진 한 소년이 노래를 부른다. 아니, 고함을 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소년은 왜 임재범의 <고해>를 처절하게 부르는 것일까?

 조현철 감독의 <척추측만>

조현철 감독의 <척추측만> ⓒ 서울독립영화제

소년의 이름은 국영. 그는 '조현'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사랑하고 있다. 국영은 아토피 피부염과 기관지 확장증을 앓고 있고 조현은 비염 때문에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이인 그들에게는 이 병이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그런 어느날, 국영은 조현과 조현의 친구 만옥의 수학 과외를 맡는다. 만옥은 국영의 냄새에 불쾌감을 표하고 조현에게 국영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비밀이 밝혀지면서 조현은 국영의 곁을 떠난다.

점점 심해지는 기침과 피부병, 여기에 허리가 휘는 척추측만까지. 온몸이 아토피로 곪아가는 순간에도 조현을 찾아 뛰어다니던 국영은 결국 날 저무는 고가도로에서 <고해>를 소리쳐 부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다시 만난다. 조현은 얼굴이 심하게 곪아 있었다. 조현도 국영과 똑같이 심한 아토피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척추측만>은 병과 상처를 앓고 결국 곪아가는 육체를 지닌 두 소년 소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영화 속 '척추측만'은 육체의 질병이기도 하지만 좌절 속에서 결국 휘어지고 마는 마음의 병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상처받았지만 다시 예전의 순수함을 찾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잘 드러낸 영화다. 주인공 국영으로 출연까지 한 조현철 감독의 재능이 돋보이는, 그래서 다음 작품을, 다음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의리'의 비참한 말로 <껍데기>

실직을 당한 후 호구지책으로 택시를 모는 덕보. 어느 날 밤 덕보는 택시를 몰다 사람을 치게 된다. 헌데 다친 사람은 바로 덕보의 친구인 종배. 그는 덕보에게 돈을 빌려준 뒤 계속 종배에게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다. 경찰과 친구들은 덕보가 종배를 살해하려했다고 의심하지만 정작 덕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심봉건 감독의 껍데기

심봉건 감독의 껍데기 ⓒ 서울독립영화제

심봉건 감독의 <껍데기>는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덕보의 사고와 덕보와 종배, 그리고 전직 펀드매니저였던 친구의 과거와 사고 상황을 조사하는 경찰서에서의 이야기고 후반부는 사건이 일어난 뒤 친구가 개업한 유원지 식당에서 벌어지는 난동이다.

친한 친구였던 그들은 돈을 사이에 놓고 틀어지기 시작한다. 덕보는 친구의 말만 믿고 퇴직금을 펀드에 투자하지만 손해만 보고 덕보에게 돈을 빌려준 종배 또한 돈을 갚아야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덕보를 다그친다. 펀드매니저 친구는 이미 펀드매니저 직을 떠났고 아내에게 위자료 요구를 받고 있다.

<껍데기>는 덕보와 종배,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과 아내들을 통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리'라는 것이 결국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유원지 식당에서 벌이는 난동에서 덕보가 저지른 사고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이성을 상실하는 행동을 하는 순간 우리의 가슴은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는 잔혹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울부짖는 이는 결국 아무 것도 모르고 남편만 보고 살았던 그들의 아내들이었다. '의리'를 무시한 싸움에 애꿎은 여인들은 당하고 살아야했다. 긴 난동이 끝난 뒤 덕보는 진실을 알게 된 분노를 수박을 먹는 것으로 풀고 덕보의 아내는 슬프게 노래를 부른다.

심수봉의 <장밋빛 우리 사랑>이 흘러나오면서 흔들리는 카메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의 혼란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단편영화의 미덕을 잘 살릴 이 두 편은 공을 들인만큼 영화인들과 관객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올해도 분명 많은 단편영화들이 선을 보일 것이고 새로운 영화인들이 단편영화를 통해 신고식을 치를 것이다. 단편영화가 보여주는 짧은 순간의 강렬함을 올해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물론 새로운 영화 감독들의 신선한 작품들 또한 기대한다.

서울독립영화제 척추측만 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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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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