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만, 톤즈> 포스터
KBS
아직도 졸리의 죽음을 믿지 못하던 밴드부원들이 장례식 비디오를 본 후 그를 보내주기로 결심하고 부른 노래가 그가 평소에 가르쳐줬던 <사랑해>란 곡이다.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서툰 한국어로 불러 낸 그들의 노래는 어찌 그리 노랫말도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지. 그것은 다 말할 수 없는 그들 내면의 절규, 그것이다.
원래 딩카족은 눈물을 수치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울었다. 눈물 줄기가 강같이 흘렀다. 어떤 이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 하지만 그게 더 보는 이를 슬프게 한다. 나도 덩달아 울었다. 영화 제목이 <울지마, 톤즈>다. 그러나 영화 속 톤즈 사람들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안 운 사람이 있을까.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은 2005년 종전을 합의할 때까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 천지, 그 자체였다. 딩카족은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이다. 눈물이란 그들의 사전에는 없다. 그런데 그들은 눈물로 톤즈의 아버지 이태석을 천국까지 배웅했다.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자판에 글자를 박으면서도 아직 영화 속 흥분이 그대로다. 이태석 신부, 그는 사제이며 의사고, 의사이며 악단장이고, 악단장이며 건축가이고, 건축가이며 교사였다. <울지마, 톤즈>는 수단에 파송되어 아픈 이들과 삶을 나누다 48세의 나이로 산화한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 사랑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미 지난 4월 11일 <KBS>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영화는 몇몇 TV에서 방영되지 못한 부분들을 첨가하여 극장용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이태석 신부는 2010년 1월 14일, 휴가차 한국에 왔다 암으로 진단, 투병하다 결국 그토록 돌아가고자 했던 톤즈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애마르게 세상을 지웠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땅, 족속들 간의 내전으로 굶주림과 질병이 만장처럼 드리운 땅, 수단의 남쪽 톤즈, 그곳에 대한의 아들 이태석이 있었다. 톤즈는 이태석이요, 이태석은 톤즈였다. 말라리아가 창궐한 땅, 한센환자들이 질펀하게 드러누운 땅, 보통의 삶을 포기하고 대한의 아들 이태석이 그들 가운데 뛰어들었다. 그리곤 이내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누구는 노래했다. 그냥 난 그게 노래인 줄만 알았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난 그게 노래만이 아니란 걸 깨단했다. 짓무른 손과 발을 부비고 보듬으며 그는 신이 되어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뛰었다.
"외로울 틈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항상 제 곁에 있으니까요." 그가 털털 웃음을 보이며 들려 준 말이다.
그들 중 누구는 말했다.
"성경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바로 이태석 신부입니다." 그는 그렇게 한국의 가족들이나, 수단장학회 관계자들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나,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이나, 특히 남수단 툰즈의 딩카족에게 하나님이 되어 지금도 살아 있다.
사랑을 무기로 신이 된 사나이, 이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