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9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2002년 월드컵 4강전에서 미하일 발락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헌납했던 한국 대표팀은 2년 만에 독일 대표팀을 다시 안방으로 불러 들였다. 그러나 정작 그날을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린 이는 2002년 한국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던 한 사내였다.

이동국(30), 1998년 18살의 나이에 월드컵 대표선수로 뽑히며,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을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는, 2002년 월드컵행 열차를 놓치고 논산행 입영열차를 타고 만다. 절치부심한 그는 2002년의 불씨가 다소 수그러든 2년 뒤, 짧은 머리로 그라운드에 섰다. 12월 19일은 그가 공식적인 부활을 선언하는 날이었다.

후반 26분, 박규선이 오른쪽 코너에서 올린 크로스가 독일 수비수를 맞고 아크 정면 왼쪽으로 흐르자, 골대로 쇄도했던 이동국은 방향을 돌려 볼을 향해 가다, 트래핑도 하지 않은 채 거의 180도를 회전하며 오른발 터닝슛을 날렸다. 볼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골키퍼 올리버 칸이 지키고 있던 골대 오른쪽 사각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해 대한축구협회에서 조사한 '대한민국 축구팬을 열광시킨 가장 멋진 골'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축구팬들은 61.1%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동국의 터닝슛을 그 해 최고의 골로 뽑았다.

허정무 감독, K리그 득점 선두 이동국에 '일침'

 현재 K리그 득점 선두에 오른 전북 현대 이동국.

현재 K리그 득점 선두에 오른 전북 현대 이동국. ⓒ 전북 현대

당시만 해도 이동국은 전성기를 향해 치닫는 듯 보였다. 히딩크가 지적했던 수비가담 부분도 좋아졌고, 무엇보다 많이 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본프레레, 아드보카트호에서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골 감각을 보여주며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평가 받던 그는,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 K리그 경기에서 뜻밖의 부상을 당하며,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만다.

다시 좌절의 시기를 겪은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미들즈브러에 입단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지만, 재계약에 실패하며 성남으로 유턴한다. 복귀 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이동국은 올해 이적한 전북에서 두 번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물오른 득점감각을 선보이며, 현재 K리그 득점 선두에 올랐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이동국, 어쩌면 현재의 쾌조의 컨디션은 최고의 자리에서 축구인생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다. '사자왕' 이동국은 축구 최고의 잔치 월드컵에서 포효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체선수로 출전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었다. 그가 한국 공격수 중 최고 클래스로 남으려면 월드컵에 출전해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의 대표팀 재승선에 물음표를 달았다.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의 활약에 대해 "반가운 일이다"고는 말했지만 "날카롭지 못한 움직임", "서 있는 것" 등의 이유를 들며 이동국이 "기존의 선수들보다 잘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선수를 더 자극하기 위한 발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실제로 7회 연속 월드컵 출전을 위한 예선전에서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 이동국에 대한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 대표팀의 풍부한 선수층 구축을 위해서는 이동국은 분명히 고려해 봐야 할 옵션임에는 틀림없다.

주워 먹기의 달인 vs 위치 선정에 능한 선수

사실 하나의 공격 옵션으로서 이동국을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선수보다 정의하기 쉬운 타입의 선수다. 간단히 말해, 이동국은 정통 타깃맨이다. 허 감독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비판은 이동국이 다소 느리고, 날카롭지 못하다는 것에 집중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런 비판은 그가 보통의 정통 타깃맨이 가진 특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몸이 크고, 체격이 좋은 이동국 같은 선수들은 대부분 그런 부분 때문에 비판을 받지만, 어찌 보면 사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동국형의 선수들이 주로 해야 할 역할이 공간창출과, 마무리 능력, 몸싸움, 고공에서의 이점, 주로 이런 것들이지, 테크닉이나 스피드가 그들의 강점은 아니다. 물론, 타깃맨이지만 기술이 좋은 베르바토프(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이브라히모비치(인터밀란) 정도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전북의 최강희 감독 말대로 그런 모든 조건을 갖춘 선수를 국내에서 찾는 것도 현재로서는 무리가 있다. 이미 서른이 된 그에게 그 정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경험 많은 허정무 감독이 이 부분을 전혀 모르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십 수 년 간 몸에 녹아있는 버릇과 게임 방식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를 자극해 정신무장을 시키기 위한 전략이거나, 아니면 아예 그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이동국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많이 뛰면서 투지를 보여주는 것과 다양한 경험, 그리고 마무리 능력, 이 정도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그가 2002년 월드컵의 황선홍이 했던 역할을 맡는 것이다. 박주영과 이근호는 체격조건이나, 플레이 스타일로 봐도 이동국 같은 타깃맨은 아니다.

'토털 사커'를 강하게 추구하는 허 감독의 입장에서라면 이동국은 계륵 같은 옵션일 수도 있다. 느리게 보일 수도 날카롭지 못하게 보일 수도 있다. 공격수를 평가하는 기준이 스피드와 수비 가담 능력이라면 그는 분명 좋지 않은 옵션이다.

그런 타깃맨 없이 빠른 축구를 구사하겠다는 것이 허 감독의 계획이라면, 아무리 K리그에서 골을 많이 넣더라도 이동국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다시 발탁되지 못할 수 있다. 이동국이 열심히 뛰려고 해도, 수비가담을 많이 해도, 이동국은 나쁘게 말하면 '주워 먹는', 좋게 말하면 '위치 선정이 좋은' 전형적인 골잡이형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대신 TV 광고 출연했던 이동국, 남아공에서 한 풀까?

영국 무대에서 데뷔골을 터뜨린 이동국 선수. 영국 무대에서 데뷔골을 터뜨린 이동국 선수.

국가대표 시절의 이동국.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는 박주영이나 이근호 같은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지만, 골을 넣는 능력에 있어서만은 출중한 기량과 체격조건, 그리고 골잡이로서 다양한 경험을 갖추고 있다. 타깃맨으로서만 보면 남이 만들어 준 골을 넣는 것도 능력이다. 좋은 어시스트는 공격수가 알맞은 공간 침투를 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워 먹는다' 하더라도 골을 넣는 다는 것은 승리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사실 2002년 히딩크의 토털 사커에도 이런 유형의 선수가 필요했다. 그가 바로 황선홍이었다. 당시 황선홍은 골잡이로서의 면모도 보여 줬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비를 이끌고 다니며 공간을 창출했다. 역설적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스트라이커인 황선홍에 최용수까지 있었기 때문에 이동국은 2002년 대표팀에서 탈락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는 현재 한국 대표팀에 타깃형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성훈·양동현이 있지만 아직 골 감각이나 무게감에서 약하다. 좀 더 다양한 공격 옵션을 사용하려면, 이동국의 가세는 분명 대표팀의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동국은 축구 생활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묵혀왔던 소원을 풀 수도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재발탁은 허정무 감독의 전략에 전적으로 달려있고, 그 때까지 이동국은 좋은 컨디션과 골로서 묵묵히 자신을 어필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5일 <스포츠서울>에 보도된 것처럼 "조커로 투입될 바에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낫다"라고 말하는 것은 본인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고 허정무 감독의 신뢰를 잃는 불필요한 자세다.

팬들은 한국축구와 함께 젊음을 보낸 그를 기억한다. 2004년 독일전의 터닝슛 이외에도, 한일전의 터닝왼발 슛 등 그가 중요한 순간에서 보여줬던 많은 골들을 팬들은 기억한다. 그리고 한국축구 부동의 스트라이커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희망하는 팬들도 많을 것이다.

2006년 독일에서 무릎 수술을 받고, TV 광고에 출연해 대한민국을 응원했었던, 비운의 스트라이커 이동국. 남아프리카공화국행 열차 탑승은 전적으로 감독의 결정권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성숙한 자세로 묵묵히 기다릴 필요가 있다. 현재의 논란에 감정적으로 휘둘려 맞대응을 한다면, 마지막 순간 공정한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의 축구인생을 묵묵히 비춰주었던 팬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 것이다.

이동국 타겟맨 스트라이커 남아공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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