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영춘권의 대가 엽문(왼쪽)과 그의 제자이자 영화배우였던 이소룡(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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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중국 남권 무술의 발원지 불산에는 여러 문파의 무도관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다. 그중에서도 날쌔고 간결한 영춘권의 고수 엽문은, 뛰어난 무술 실력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품도 지녀 만인의 존경을 받는 영웅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불산도 일본의 수중에 떨어진다.
그 후 일본의 식민지 수탈 정책으로 인해 불산은 점차 황폐되고 그의 가족 또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그는 제자를 받지 않겠다는 소신을 굽히고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또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일본군의 횡포에 많은 무인이 죽어 가자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일본군과의 대결에 분연히 일어선다.
아니나 다를까 <엽문>은 온전히 견자단의 영화다. 그는 그나마 괜찮아진 내러티브 속에서 자신의 최대치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먼저 그에게 으레 기대한 액션은 <도화선>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수준은 아닐지언정 과장되지 않고 절제돼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중반부에 일본군을 상대하는 10대 1 액션 신이 단연 압권인데, 왜 그가 으뜸인지 다시 한 번 증명한다(물론 그가 1이다). 그런데 액션보다 눈에 띄는 게 의외로 그 밖의 연기다. 그가 겸손한 무인이자 성 정치학적으로 올바른 가장인 엽문의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는 까닭이다. 덕분에 여성이 만든 무술인 만큼 비교적 부드러운 영춘권과 맥락이 통하고 곤궁한 처지는 피부에 와 닿는다. 대체로 유순하나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연기는, 강약의 조절이 능란할뿐더러 전작들과 교묘한 차이를 만든다. 어느덧 지천명을 바라보는 액션배우로서 그동안 누적된 마초 이미지를 덜어 내고 연기의 폭을 넓히는 쾌거다(그는 1963년생으로 공교롭게도 이연걸과 동갑이다).
그런데도 <엽문>은 견자단을 가리고 보면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장르의 관습에 철저히 기대는 바람에 언뜻 다른 영화들이 겹쳐 보인다. 초반에 이른바 '도장 깨기'가 등장하고 후반에 최후의 일전으로 장식하는, 전형적인 플롯이기 때문이다. 일견 <황비홍1>으로 시작해 <무인 곽원갑>으로 끝나는 셈이다.
심지어 조연들의 캐릭터는 <황비홍1>을 닮아 리순(임가동)과 주청천(임달화)에게 각각 양관(원표)과 임진동(임세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한다. 한술 더 떠서 망자의 매개물과 뒤늦은 후회(화해)라는 불필요한 클리셰에 이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 외에도 전반에 깔리는 애국주의가 외국인의 입장에선 다소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담뿍 얹은 비장미와 유사한 과거 덕택에 제법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 낼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