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시의 수호신 배트맨 그에게 닥친 존재론적 위기, 배트맨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고담시의 수호신 배트맨 그에게 닥친 존재론적 위기, 배트맨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워너브라더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원하며 바삐 활동하는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 쏟아지는 시민과 언론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부상이며, 강해져만 가는 적들을 상대로 고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스파이더맨대로 슈퍼맨은 슈퍼맨대로 자신의 초능력에 대한 회의와 신분을 감추며 연인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움 역시 그들의 고민거리입니다.

통상, 영화 속 슈퍼히어로의 고민은 감독들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전개하면서 극의 긴장을 높이고, 강하기만 한 슈퍼히어로의 인간적인 면을 돋보이게 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웅들의 고민은 관객들로 하여금 선악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슈퍼히어로가 고민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악당을 무찌르게 된다는 결말을 통해서 더 강렬한 쾌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좀 경우가 다릅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고담시의 평화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이 '선'이라면 고담시의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조커(히스 레저)는 '악'입니다. 

대부분의 슈퍼히어로 영화들과 비슷한 구조였다면 결국은 고민과 절대위기를 거쳐 배트맨이 조커를 통쾌하게 물리치는 구조라야 맞겠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트맨이 조커를 물리치는 과정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영화 속 조커는 고담시를 혼돈에 빠트리는데 대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조커는 배트맨처럼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슈퍼카도 없습니다.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총과 칼 그리고 다이너마이트만으로 조커는 고담시를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립니다.

감독이 배트맨과 조커의 양자 대결구도로만 몰고 갈 의도였다면, 애초에 이정도의 무력만으로 배트맨을 이기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했겠죠.

배트맨에 맞서는 조커의 파워를 강화하는 대신에 감독은 관객들과 한판 논리게임에라도 나선 듯 조커의 카오스적 논리와 내면을 강화해서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려 관객이 영화를 마칠 때까지 권선징악적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명성만 보고 입장해 강렬한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원하는 관객을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괴롭힌다는 느낌이 더 정확할 지도 모릅니다.

'배트맨 때문에' 더 혼란에 빠지는 고담시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신형 배트맨 아머앞에선 브루스 웨인 그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신형 배트맨 아머앞에선 브루스 웨인 그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 워너브라더스


정의를 지키는 배트맨이지만 나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 '브루스 웨인'은 조커가 아니더라도 이미 존재론적인 모순에 빠져있었습니다. 고담시를 구하느라 불철주야 바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연인 레이첼(매기 질렌홀)과의 거리는 멀어져만 갑니다.

배트맨이 존재할수록 공권력의 부실을 질타하는 소리는 강해지고 조커와 같은 악당들의 내성도 강해져만 갑니다. 배트맨이 있음으로 인해 사회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범죄는 더욱 더 포악해지고 시민들은 오히려 배트맨을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배트맨이 빠진 존재론적인 모순의 예를 들면, 조커는 배트맨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시민을 차례대로 죽이겠다고 공언하고 이를 실제로 실행합니다. 배트맨이 이를 막지 못할 경우 배트맨이 존재함으로 인해 시민이 피해를 입는 존재의 역설이 발생하게 됩니다.

조커는 이점을 노립니다. 조커는 자신을 잡으려는 배트맨 그리고 고담시의 대표 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가 겉으로는 '선'의 대변자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 인간본성을 들여다보면 모두 다 같다는 논리입니다.

범죄를 통해 돈을 모으려고 하지 않고 통증을 거의 못 느끼며 삶에 대한 집착도 강해 보이지 않는 조커에게 배트맨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재미난 게임 상대이자 조롱거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배트맨 속에 내재된 인간적인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우월감등들 끄집어내 존재의 무력감에 빠져들도록 만들어가는 조커의 치킨게임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배트맨'보다 매력적인 '조커'... 히스 레저의 강렬한 내면연기

레이첼을 위협하는 조커 배트맨의 약점인 레이첼을 위협하는 조커

▲ 레이첼을 위협하는 조커 배트맨의 약점인 레이첼을 위협하는 조커 ⓒ 워너브라더스


<다크 나이트>가 전 세계 개봉이후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면에서 골고루 호평을 받는 또 다른 이유에는 배트맨과의 치킨게임을 완성해낸 배우 히스 레저의 열연이 있었습니다.

히스 레저라고 하면 통상 <브로크백 마운틴>(2005)의 부드러운 주연 '에니스 델마'를 생각하는 관객들에게 악의 화신 조커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배역입니다.

영화 속 조커의 역할이 지나칠 정도로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올해 초 세상을 떠나 더 이상 그의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겠지만, 고담시를 상대로 혼란의 카오스를 만들어내는 히스 레저의 목소리, 스타일 그리고 내면연기가 열연이란 표현으로도 모자랄 섬뜩함과 괴이함 그자체인 까닭도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그의 사인 중에 하나가 '조커'역에 대한 지나친 몰입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영화속 '조커'를 지켜보면 단순한 억측이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배트맨'과 '조커'로 대변되는 선과 악이 대립하는 단순한 구도가 영화가 전개되면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절정과 파국으로 달려가지 않고 끊임없이 악이 양산되는 구도로 변해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하게 승리하지 못하는 혼돈의 판을 짜가는 1970년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치밀함 역시 <다크 나이트>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전직 보험수사관 레너드(가이 피어스)가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추적해 가던 과정을 그린 <메멘토>(2000)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보여준 파격적인 전개와 결말은 <다크 나이트에서 기법적으로 더욱 촘촘해지고 만개한 느낌입니다.

<다크 나이트>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배트맨 시리즈 중 최상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만, 배트맨 시리즈 중에서 지나치게 만화 같다는 평가를 받았던 죠엘 슈마허 감독의<배트맨과 로빈>(1997)류와 같은 재미 위주, 시각적 통쾌함 위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즐기려는 관객이라면 역설적으로 <다크 나이트>는 상영시간 내내 꽤나 지루하고 구조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크 나이트 배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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