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선경기와 월드컵 예선의 중압감은 분명 다르다. 친선경기에서 실수를 하면 '미리 발견한 단점' 정도로 넘길 수 있겠지만 월드컵 예선의 경우 한 경기의 결과에 따라 진출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선수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달 30일 칠레와의 친선경기로 국가대표에 첫 선을 보였던 박원재(포항스틸러스), 곽태휘(전남 드래곤즈), 조용형(제주UTD)은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에서 부담을 직접 체험했다.

 

조용형의 인상적인 실수   

 

이들 중 중앙 수비수 곽태휘는 90분을 소화했다. 전반 43분에는 선제골을 넣으며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급부상했다. 준수한 외모에 실력까지 겸비하면서 허정무 감독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박지성(맨체스터UTD)과 닮은 외모로 화제가 됐던 박원재 역시 후반 40분 조용형을 대신해 들어가 과감한 돌파로 공격 찬스를 만들고 박지성의 패스를 받아 골 포스트를 맞추는 슈팅을 선보이는 등 8분 동안 월드컵 예선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종료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박원재는 "다음 경기에서는 꼭 골을 넣고싶다"며 욕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보다 주목을 덜 받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빗셀고베)의 짝으로 출전한 조용형의 경기력도 인상적이었다. 칠레와의 경기에서는 스리백 수비라인의 스위퍼로 출전해 후반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해 '멀티플레이' 능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투르크와의 경기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85분을 소화하며 여러 차례 패스 미스와 볼 다루기 실수로 상대에 공격 찬스를 내주는 등 칠레와의 친선경기에서 보였던 경기력과는 조금 달랐다. 관중석에서도 그의 실수에 따라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한 축구 지도자는 조용형의 잇따른 실수를 두고 "월드컵 진출 여부를 가리는 경기라 긴장한 것 같다"면서도 "일단 볼이 오면 전방으로 처리하는 습관이 밴 중앙 수비수라 미드필더에서 최종 수비수 습관을 노출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주로 소화하던 포지션과 맞지 않아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축구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은 사례는 여러 차례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2006년 9월 아시안컵 B조 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후반 종료를 앞두고 하세미안에게 볼을 빼앗겨 동점골을 헌납해 비판을 받았던 수비형 미드필더 김상식(성남 일화)이 대표적이다.

 

당시 경기에서 김상식은 중앙 수비수로 출전해 수비를 잘 해냈지만 결국 마지막에 큰 실수를 했다. 최종 수비수처럼 옆줄 밖으로 안전하게 볼을 거둬내면 됐지만 전방의 동료에게 연결하는 습관이 밴 미드필더처럼 무리하게 처리하려다 생긴 결과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조용형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것은 허정무 감독이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 재임시절 키워 온 곽태휘-강민수(전북 현대) 중앙 수비라인이 좋은 호흡을 보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이들 말고도 이번 허정무호 1기에는 곽희주(수원 삼성), 조성환, 황재원(이상 포항스틸러스) 등 실력이 비슷한 선수들이 많아 누가 출전할지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위치만 전방으로 전진한 중앙에서의 활약은 허정무호에서 그가 활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그의 다양한 포지션 소화 능력 때문이다. 허정무 감독은 경기종료 뒤 인터뷰에서 조용형의 플레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초반에 약간 긴장하면서 실수도 했지만 점차 나아졌다. 의미 있는 실수도 있었고 안 보이는 좋은 점도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멀티 능력은 끝까지 살아남는 요인

 

그의 포지션 짝이었던 김남일도 "국가대표 경기를 처음 뛰면 긴장하게 마련이다. 실수하면서 좋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 경기를 더 치르면서 알아가게 될 것이다"며 힘을 불어넣었다.

 

조용형은 2005년 부천SK(현 제주)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다. 곧바로 주전으로 투입되며 경기 조율 능력을 선보여 '제2의 홍명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당시 요하네스 조 본프레레 국가대표팀 감독이 그를 명단에 올릴 만큼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그는 지난해 1월 경남FC를 거쳐 성남 일화로 이적했다. 지속적으로 '잠재적 국가 대표감'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성남에서는 국가대표급으로 불리는 중앙수비수 김영철-조병국으로 인해 교체요원으로 활약하며 측면 수비수로 나왔다. 자연스럽게 대표팀과는 인연이 멀어져 갔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이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선수의 등용을 천명, 재평가를 시작하면서 그는 선발됐다. 그리고 이제 A매치 출전 경력을 2경기로 늘렸다.

 

스리백 수비라인에서는 스위퍼로, 포백 수비라인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중앙이 가장 편하다는 그의 재능이 이제부터 빛을 발할지 지켜볼 일이다. 역대 대표팀에서 '멀티' 능력이 있는 선수들은 늘 끝까지 살아남았다. 

2008.02.07 08:27 ⓒ 2008 OhmyNews
조용형 제2의 홍명보 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 수비형 미드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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