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패배'란 말은 패자를 위로하기 위해 생겨난 말일뿐 패배한 것이 결코 아름다울 수는 없다. 승리한 팀이 마지막에 모든 것을 얻는 것이 승부의 법칙이다. '저들은 아름다운 패배를 당했으니 또 하나의 승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것은 단지 위로할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 때 쓰는 말일뿐.

 

한국시리즈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된 두산

 

 치열했던 한국시리즈가 SK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치열했던 한국시리즈가 SK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 SK 와이번스

29일 인천문학구장에서 벌어진 2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두산 베어스가 SK 와이번스에게 2-5로 무릎을 꿇으며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내줬다. 한국시리즈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2연승 후 4연패. 다 잡았던 우승컵을 허무하게 내줘야 했던 두산의 선수들은 끝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너무도 아쉬운 패배였다. 1차전과 2차전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만해도 한국시리즈 우승은 두산의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두산이 보여준 전력이 그만큼 무서웠으며 한국시리즈에서 2연승을 한 뒤 우승을 못한 경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산의 상승세는 3차전 잠실에 흩뿌려지던 가을비와 함께 꺾여 버렸다. 그리고 아무도 믿지 못했던 그런 연패를 당했다. 한국시리즈 역사상 가장 잔인한 준우승 팀 두산. 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된다.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던 그렇게 열정을 다해 뛰어준 선수들이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처럼 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논리를 거부한 두산의 열정

 

시즌이 시작했을 때 두산에게는 박명환도 없었고 손시헌, 이혜천도 없었다. 그렇다고 훌륭한 기량을 가진 선수를 외부에서 거금을 주고 영입을 한 것도 아니다. 기껏 데려온 선수는 섬에서 자랐다는 것 빼고는 특별 할 것도 없었던 신고 선수 출신의 이대수 정도였다.

 

주전의 반이 신고 선수거나 실패하고 이적해온 이적생, 두산은 그런 팀이었다. 누구하나 두산을 우승후보라 예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산은 시즌을 시작했고 당연하게도 시즌 초반 꼴찌에서 허덕였다. 이상할 것도 없는 두산의 몰락이었다.

 

자본주의 스포츠인 프로야구에서  수십억원을 투자한 다른 팀들을 제치고 두산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는다. 그것이 프로 야구다.

 

그런데 두산은 어느 날 탈꼴찌에 성공하는 가 싶더니 또 어느 날은 5위, 어느 날은 3위 그리고 기어코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두산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 4강은 언강생심 최하위를 벗어날 수나 있을까 싶었던 두산은 기어코 마지막 날 SK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두산에게는 논리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다. 법칙을 거부하는 그런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열정이었다. 그것이 아니면 도저히 두산의 올 시즌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랬다. 두산은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목숨을 걸고 야구를 하는 선수들이 있는 팀, 가진 것을 한 경기에 모두 쏟아 붓는 팀. 두산은 그런 팀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선수들에게 두산은 마지막 기회였고 처음으로 빛을 보게 해준 고마운 팀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뛰어줬을지도 모른다. 오늘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두산 베어스, 고개를 들고 활짝 웃어라

 

 열정을 다해 뛰어준 두산의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열정을 다해 뛰어준 두산의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와 벌인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은 더욱 무서워졌다. 사람들은 한화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미친 듯이 달리는 두산의 야구를 '발야구'라고 불렀다. '발야구를 잡아야 한다', SK에게 지상과제가 떨어졌다.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두산을 잡는 법은 바로 그들의 발을 묶어 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SK는 두산의 발을 잡아냈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부분 SK가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의 발을 묶은 것을 우승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다. 두산은 발야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기에 빨리 달린 것뿐이었다. 그들의 무기는 '발야구'가 아니라 더 이상 패배자로 남고 싶지 않다는 '무서운 집념'이었다. 그것이 두산을 여기까지 끌고 올라온 힘이었다.

 

두산은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SK를 넘지 못하고 패배를 했다. 마지막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두산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것 자체만으로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기적이었다.

 

서두에 위로할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그저 '그들은 아름다운 패배를 했으니 또 하나의 승리자다'라는 말을 한다고 적었지만 필자의 생각이 틀린 것 같다. 아름다운 패배는 분명 존재했다. 두산은 아름다운 패자이며 2007년 프로야구 또 하나의 위대한 승리자였다. 정열을 받쳐 열정을 다해 열심히 뛰어준 두산 베어스 고개를 들고 활짝 웃어라. 당신들은 그럴 자격이 있는, 박수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멋진 팀이다.

2007.10.29 22:00 ⓒ 2007 OhmyNews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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