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지명된 사실이 긴가민가하죠."

지난 1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홀에서 있었던 프로야구 2008년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2차 5순위로 부름을 받은 투수 심세준(25·경찰청)의 말이다. 물론 올해 지명된 62명의 선수 심정이 이와 크게 다를 리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 심세준의 지명은 매우 특별하다.

"너무 좋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무뚝뚝할 것 같았던 경상도 남자 심세준, 알고 보니 의외로 뛰어난 언변의 소유자였다.

무뚝뚝할 것 같았던 경상도 남자 심세준, 알고 보니 의외로 뛰어난 언변의 소유자였다. ⓒ 김효은


보통 고등학교 졸업예정 선수는 처음으로 프로구단의 지명을 노리게 된다. 만약 실패할 경우 대학교 진학이나 신고선수 입단의 길을 걷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진로를 모색한다.

대학교 졸업 무렵에는 다시 프로 지명을 또 노린다. 여기서 결론을 얻지 못하면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모두 246명의 대학교 졸업예정 선수가 2차 지명을 노렸지만 고작 24명(9.7%)만이 취업의 문을 뚫었다.

심세준은 이런 과정을 모두 겪었던 선수라 이번 지명에 대한 감회가 남다른 선수다.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졸업 후에도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고 천신만고 끝에 경찰청 야구단에 합격해 2년을 불확실한 미래와 싸워야 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을 지명해 준 구단이 있었으니 감격에 찰 수밖에. 지명일이 임박했을 때의 긴박감을 심세준은 이렇게 표현했다.

"지명일을 앞두고 밤에 잠을 못 잤어요.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명일인 16일은 새벽 5시가 돼서야 겨우 잠들었어요. 저로서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모두 지명을 받지 못했으니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죠.처음에는 설마 했지만 이렇게 지명받아서 너무 좋습니다. 경찰청까지 온 것이 결과적으로는 제게 잘 된 일이었죠. 하지만 동료들한테 미안한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저 말고도 프로 구단의 입단을 기다리는 선수들은 많았으니까요."

심세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벼랑 끝에 몰렸던 선수의 심리 상태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는 지명과 관련해 현재 경찰청야구단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용철 감독(50)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저에게는 정말 친아버지 같은 분이죠.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감독님께 많이 구박당하지만 제자에 대한 애정이 깃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죠."

"너 투수할래, 야수할래?"

심세준은 지명된 구단인 롯데에서 운영하는 롯데 마린스 리틀야구단 소속으로 초등학교 때 야구에 입문했다. 이후 야구에 흥미를 느껴 대동중과 경남고를 거쳐 야구 선수로 거듭났다. 심세준은 야구를 시작한 계기를 옅은 미소와 함께 회상했다.

"저도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야구를 워낙 좋아하셨어요. 야구인들과 친분도 있으셨고요. 부산은 야구 열기가 남다른 곳이잖아요. 야구를 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런 열성적인 아버지의 권유 때문입니다. 대신 어머니께서 많이 반대를 하셨어요. 어렸을 때 공부를 못했던 것이 아니라서 더욱 그러셨죠. 하지만 그때 야구를 택했고 지금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물론 아버지께는 감사드리고요."

 심세준이 인터뷰 도중 웃음을 짓고 있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심세준이 인터뷰 도중 웃음을 짓고 있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 김효은



심세준의 이력 중 또 눈길을 끄는 것은 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했다는 소문이다. 그 결과가 프로 지명까지 이어졌으니 궁금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기자의 질문에 심세준은 예상치 못한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투수로 갑자기 전향한 것은 아니었고 원래 고등학교 2학년까지 투수로 뛰었습니다. 3학년 때는 1번 타자 겸 내야수로 경기에 나갔어요. 아마 그때 투수로 출장하지 않아 그런 소문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서는 다시 본래의 포지션인 투수로 뛸 수 있었죠.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김창복 감독(55·전 동아대 감독)님이 저에게 질문을 건네시더라고요. '너 투수할래, 야수할래?' 그래서 대뜸 투수를 하겠다고 했죠. (웃음) 투수는 그만큼 매력이 있는 포지션이니까요. 이때 선택한 포지션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나의 사랑, 경찰청 야구단

프로구단이 심세준에게 지명권을 행사한 것은 그간 눈에 띄지 않았지만 경찰청야구단까지 꾸준한 발전을 이뤄온 그의 성실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프로구단 스카우트는 기량이 출중한 선수를 우선적으로 지명하지만 발전이 눈에 띄는 선수도 유심히 살펴본다.

어차피 프로야구는 아마야구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노력을 통한 발전과 적응은 필수적이다.경찰청 야구단에서 얻은 소득이 많았던 모양이다. 심세준은 경찰청 입단 이후 달라진 자신에 대해 말을 꺼냈다. 이른바 '경찰청 야구단 예찬론'이었다.

"너무 많이 좋아졌어요. 대학대회는 토너먼트 방식이지만 경찰청은 프로 2군과 리그전을 치러야 해서 체력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얻은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경기가 꾸준히 이어져 선발로 등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더라고요. 마운드에서는 완급조절과 수 싸움이 늘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어 심세준은 "제 평균구속은 시속 130km후반에서 140km초반인데 홍민구 투수코치님이 구속을 높이기보다 장점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조언해 주십니다"라면서 "힘으로 윽박지르는 투구보다 로케이션에 신경을 쓰고 운영의 묘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훈련하고 있어요"라고 훈련 방향까지 귀띔해줬다.

"내년 목표는 1군 진입"

 이제 프로에 처음 입문하는 심세준이지만 야구에 대해서는 베테랑 못지 않게 상당히 진지한 입장을 보였다.

이제 프로에 처음 입문하는 심세준이지만 야구에 대해서는 베테랑 못지 않게 상당히 진지한 입장을 보였다. ⓒ 김효은


인터뷰가 막바지를 향해 갈 무렵 기자가 존경하는 선수를 묻자 이내 답변이 나왔다.

"많은 선수가 귀감이 되지만 특히 장종훈 코치님(현 한화 이글스 코치)을 존경합니다. 선수 시절 '대기만성'이라는 단어를 몸소 알려주신 분이잖아요. 저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늦게 피는 꽃인 만큼 오래가고 싶어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심세준은 꾸준한 선수가 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위치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당장 내년에 코칭스태프 분들이 저에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단지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뛸 생각입니다. 굳이 목표를 말하라면 롯데라는 팀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1군 진입을 노릴 생각입니다. 중간계투나 패전처리 등 어떤 보직이라도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칫 야구인생이 끝날 수도 있었던 아찔한 고비를 넘긴 그가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관해 보였다. 그만큼 은연 중 얼굴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제 고향도 부산이고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에 지명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스카우트 선배님들께는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예요. 항상 최선을 다해 팬들에게 꾸준히 오랜 기간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어쩌면 2차 5순위로 팬들에게 '별거 아닌 선수'일지도 모르는 심세준. 팀에 알토란같은 선수가 되겠다는 그가 이제 '프로무대에서의 성공'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힘찬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필자 블로그
http://aprealist.tistory.com
심세준 프로지명 롯데 투수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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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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