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오랫동안의 침묵 끝에 월드컵 무대에 등장했다. 그들은 1938년, 1950년, 1954년 세 번의 대회에 참가를 거절했는데, 자신의 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다. 그러나 이런 반항은 결국 자신만의 손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이후 대회에는 열심히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지역예선에서 3승 1패를 기록하며 무난히 본선에 합류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아르헨티나는 브라질보다 더 강한 전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었다. 특별히 월드컵이 열리기 전 해에 열린 남미선수권대회(코파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을 따돌리고 우승할 정도로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회 우승으로 자국의 유능한 선수들이 유럽으로 스카우트 되자 대표팀 소집에 큰 차질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뛰어난 스트라이커로 코파 아메리카 대회 득점왕에 오른 마스키오(Maschio)를 비롯해 치보레, 안헤리요가 조국을 버리고 이탈리아 대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는 목표를 우승으로 정하고 머나먼 유럽 원정길에 올랐다.

그런 아르헨티나는 본선 조별리그에서 1승 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에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6으로 패한 것은 충격이었다. 고국으로 향하는 그들을 맞이한 것은 그들의 실망스러운 성적에 분노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썩은 야채더미세례였다.

#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는 아마추어 무대에서 소련과 정상을 다투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 특히 1948년부터 세 번 연속으로 올림픽에서 준우승에 머무르며 다크호스로 분류되는 동유럽의 강자였다.

지역예선에서 루마니아와 그리스를 따돌리고 본선에 합류한 유고슬라비아는 프랑스, 파라과이, 스코틀랜드와 2조에 속했다. 이 조별리그에서 유고슬라비아는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프랑스에 3-2로 승리하였고, 파라과이와 3-3 무승부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1-1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프랑스가 나머지 두 경기에 모두 승리하는 바람에 승점에서 밀려 조 2위로 8강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의 준준결승 상대는 디팬딩 챔피언 서독이었다. 양 팀은 4년 전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준준결승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서독이 2-0으로 승리하고 준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에 유고슬라비아로서는 설욕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6월 19일에 열린 이들의 대결에서 또 다시 유고슬라비아는 서독의 벽을 넘지 못하고 0-1로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 헝가리

1954년 최강의 실력을 갖고도 월드컵을 차지하지 못한 헝가리가 4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 재도전에 나섰지만, 실력은 예전만 못했다. 팀의 핵심인 푸스카스와 콕시스가 빠진 헝가리는 그 중량감에서 4년 전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남아있는 선수들을 규합하고, 새로운 스트라이커 Lajos Tichy를 보강하며 4년 전에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스웨덴으로 향했다.

지역예선에서 불가리아와 노르웨이를 잠재우고 본선 진출에 성공한 헝가리가 스웨덴과 함께 조별리그를 통과할 것이라 예상하는 가운데 시작된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에서 헝가리는 예상 외로 웨일즈와 1-1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두 번째 경기인 개최국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1-2로 패한 헝가리는 마지막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4-0으로 승리하며 마지막 희망을 불태웠지만 웨일즈와 동률을 이루며 플레이오프를 치른 끝에 1-2로 패해 끝내 결승 토너먼트 진출이 좌절되었다.

헝가리로서는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을 갖고도 1954년 우승에 실패했고, 충분히 조별리그를 통과할 실력을 갖고도 1958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 소련

소련은 1958년 스웨덴 올림픽을 맞이하여 우승이 유력한 나라들 중에 하나로 꼽혔다. 그 이유는 2년 전에 열린 올림픽에서 우승하였고,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이 골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예선에서 의외로 폴란드에 고전한 소련은 플레이오프를 거쳐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고, 본선에서는 브라질, 잉글랜드, 오스트리아와 한조가 되었다.

첫 번째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앞서다가 막판에 두 골을 연거푸 허용하면서 2-2 무승부를 이룬 소련은 두 번째 경기에서 오스트리아를 2-0으로 잠재우며 브라질과 1승 1무를 기록하였다. 소련과 브라질의 경기는 접전이 예상되었지만 브라질의 숨은 병기 가린차와 펠레의 등장으로 0-2로 패하고 1승 1무 1패를 기록하였다.

소련은 3무승부의 잉글랜드와 동률을 이루었는데, 당시 피파 규정상 플레이오프를 치러 8강 결승 토너먼트 진출자를 가려야 했다. 6월 17일에 소련은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기고 8강 토너먼트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이틀 후에 충분한 휴식 없이 스웨덴과 경기를 치르며 체력적으로 부담을 갖게 되었다. 결국 소련은 스웨덴에게 2-0으로 무릎을 꿇고 첫 월드컵 성적으로 8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은 소련으로서는 조금 아쉬운 일이다. 만약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잉글랜드에게 이겼더라면 플레이오프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결승 토너먼트를 맞이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의 수문장 레프 야신은 여섯 경기에 여섯 골을 실점해 기대에 못 미쳤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다음에도 올립니다.

2007-06-01 14:3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미디어다음에도 올립니다.
아르헨티나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소련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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