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낙동강이 내려다보인다. 서서히 움직이는 카메라. 분명 항공기에서 내려다본 카메라다. 누가 봐도 쉽게 드러나는 항공 촬영이다. 이어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고,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 끊어진 비극의 다리인 남지철교에 대한 이야기다. 화면엔 다리 곳곳 박힌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 다음 장면에선 휠체어를 탄 노인이 등장한다. 그 노인의 이름은 이철교. 철교가 세워진 해 태어났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아버지는 다리를 만들다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다리가 폭파되던 날 다리 위에 있다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끊어진 두 다리는 당시 폭격의 흔적이다. 영화 초반부 내용은 이렇다. 그런데 이 영화, 26분짜리 독립영화다. 세상에 항공 촬영을 한 독립영화라니. 게다가 한국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남지철교와 그때의 피해자인 이철교씨를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 정통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이러한 궁금증은 영화 후반부에 접어들면 서서히 혼돈에 빠진다. 영화 편집실에 모인 프로듀서, 감독, 주연배우 앞에 갑자기 조감독이 뛰어든다. "저기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리 폭파 때문에 수장된 다리는 남지철교가 아니라 한강철교랍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한다. 프로듀서는 다방 여종업원과 노닥거리고, 감독은 "남지철교 폭파 당시 사람이 죽지 않은 증거를 대라"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조감독은 긴가민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감을 잃어간다.
 최근 몇 해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던 인디포럼은 올해 '그렇다면, 심기일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 인디포럼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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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옛 허리우드극장)에서 열린 '인디포럼2007'의 상영작 <외계인>이다. 그동안 수많은 독립영화를 발굴하며, 산파 역할을 톡톡히 했던 '인디포럼'은 곳곳에 독립영화제가 생기고, 정체성 혼란을 겪으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최근 몇 년간 계속 규모가 줄어들었고, 급기야 지난해는 신작 공모조차 하지 않으며 사실상 인디포럼이 사라졌다. 올해 인디포럼 슬로건을 '그렇다면, 심기일전'이라고 한 이유다. 13일 저녁 8시 30분 '섹션1'에 포함된 여섯 편의 영화를 봤다. <외계인>은 박재현 감독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정통 다큐와 같은 전반부,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리는 후반부,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영화답게(?) 마무리하는 엔딩으로 나눠진다. 자막이 올라갈 때 등장하는 스태프의 수는 극장용 상업영화와 맞먹는다.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버무린 이 영화에서 어디까지 사실인지 밝혀내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런 일이다. <친구> <친절한 금자씨>..."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이걸기 감독의 <자전거 도둑>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단편의 선택-비평가 주간' 상영작 20편에 포함된 작품이다. 월셋방에 살면서 영화 데뷔를 준비 중인 두 청년이 하룻밤 동안 벌이는 에피소드다. 두 청년의 옆집에 살고 있는 노인은 종이상자를 주워서 하루하루 산다. 상자를 싣는, 낡은 자전거는 노인의 유일한 생계수단. 그런데 어느날 새벽 술에 잔뜩 취한 두 청년이 노인의 자전거를 타고 놀다 술집에 깜빡 두고 집에 온다. 노인의 기상 시간은 새벽 다섯 시. 노인의 처지를 뻔히 아는 청년은 술집으로 달려가는데, 그 술집은 술값을 내지 않고 도망쳐 나온 곳이다. 자, 어떻게 자전거를 무사히 갖고서 노인이 새벽일을 나오기 전에 갖다줄 것인가. 감독은 꾸질꾸질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들여다본다. 종이상자를 주워서 하루하루 사는 노인, 이 노인은 가게 앞에 있는 빈 병을 몰래 가져가다 주인에게 혼나기도 한다. 옆집에 사는 두 청년의 삶도 노인만큼 꾸질꾸질하다. 노인이 힘들게 구한 스티로폼을 가져와선 침대로 사용한다. 사람들의 비루한 삶 속에 관객들을 끌어들인 뒤, 도둑질과 무전취식 뒤 줄행랑 등 속도감 있는 장면을 배치해 긴장감을 만들었다. 후반부의 긴장감에 비해 초반부는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다.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다방 마담으로 나온 고수희씨(왼쪽에서 세번째). 이처럼 낯익은 인물을 독립영화에서 만나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 영화사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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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불을 뿜는 공룡을 연기해야 하는 여배우를 그린 <상징적 그녀>(김은호 감독), 지지리도 궁상을 떠는 선배와 동영상을 촬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후배의 일상을 그린 <룸메이트(Room-mate)>(이문호 감독), 깜짝 반전이 재미있는 <조감독>(이경식 감독), 지루함(?)과 실험성을 버무린 <카사블랑카>(김종국 감독) 등 각 영화는 개성이 넘쳤다. 살짝 덧붙이자면 개성만큼 재미있지 않은 영화도 섞여 있었다. TV와 영화를 통해 익숙한 인물들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찾아내는 것도 독립영화를 보는 재미다. 간혹 익숙한 인물들이 나오면 관객들은 "어디서 본 듯한데"하면서 아는 체했다. <상징적 그녀>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온 고수희씨가 나왔다. <상징적 그녀>에서 수희로 나온 그는 <그놈 목소리>에선 차수희로 나왔다. 최근 개봉한 <천년학>에선 용택 처 역할을 맡았다. <자전거 도둑>에서 나온 노인역은 진영운씨.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역을 맡았던 동수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다. <외계인>에 등장한 휠체어를 탄 노인역을 맡았던 이는 이승기씨. 1990년대 영화 마니아라면 '많이 들었는데'라고 말할 만한 인물이다. 바로 1995년에 나온 <스크린 야화>의 저자다. 현재 창원전문대 '영화와 영화 읽기' 주제의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2800여쌍의 결혼 주례를 맡아 마산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평생 꿈이 영화배우였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꿈을 이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본 여섯 편의 전체 상영 시간은 106분. 한 편당 채 20분이 안 되는 영화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열심히 박수를 친다. 개봉관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칭찬에 후하고, 반응이 즉각적인 게 바로 이런 영화제의 특징일 터. 여섯 편의 영화가 모두 끝나고 실내에 불이 켜지자, 실내에 앉아 있는 사람은 대략 40-50명. 생각보단 적었지만, 이 숫자가 '성공'일지 아닐지 나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아무튼 인디포럼 조직위측은 이번 영화제 기간동안 인디포럼 작가회의를 만들기 위해 회원 모집을 시작했다. 목표는 70명 가입. 심기일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참 인디포럼은 16일 끝난다. @BO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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