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른바 저출산 시대 범죄인이다. 아이를 낳고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 해내갈 자신이 없어서 자발적으로 출산을 포기했다고 말하면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반응은 "역사에 죄를 짓는…"하는 거창한 화두부터 시작해서 "이기적이시군요"까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며, 어쨌든 나를 '야단친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졌으므로 모든 여자들은 모든 남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당당히 설파하는 무식한 남자들처럼, 저출산이 문제가 되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자 더욱 의기양양해진 모습으로, 나보다 나이 어른 남자나 나이 많은 남자나 가릴 것 없이 나를 야단친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나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교수라도, 혹은 엄청난 확신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남자라도 (사회심리학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 자신의 관여도가 높을 때에는 주장의 강도가 강할수록 설득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 있다) 내게 출산의 필요성, 아니 출산의 행복함을 설득하지 못했다.

 영화 <길은 가면, 뒤에 있다>에 등장하는 장애 여성들
그러나 이 영화 <길은 가면, 뒤에 있다>는 출산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장애를 가진 여성들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런닝 타임 54분 내내 오로지 인터뷰만으로 일관하는데도 관객을 웃고 울게 만든다.

"병원을 나오는데 간호사가 그러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애를 한 번 안아보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아부지가 그러시더군요. 얘는 팔에 장애가 있어서 애를 안지 못한다고…. 그렇게 저는 막 낳은 애를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곧장, 대신 키워주시기로 한 고모댁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팔뿐 아니라 구강 근육에도 문제가 있는 그녀는 이 말을 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이나 말을 잇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몇 번이나 삼켜 넘기면서 간신히 말을 맺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그 시간의 행간 동안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왜 내가 아이를 낳았을까, 장애인이면서 왜 애를 낳았을까 하는 한 여인의 고백 역시 그 처절함의 정도에서는 다를 바 없었고 또 다른 여인이 자신의 장애를 고스란히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게 갖는 죄책감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더 이상 뭐라고 생각해야 할 바도 알지 못했다.

 감독 이수경 씨(상)와 (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하).
그러나 그들은 다시 희망을 이야기한다. 제목인 <길은 가면, 뒤에 있다>는 것처럼 그들이 힘겹게 가고 난 뒤에는 길이 생겼고 한 의사의 말처럼 그들의 자녀 세대 때에는 설사 그 자녀들이 똑같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좀더 나아진 의학 기술 때문에 아이들이 덜 힘들 수도 있을 게고, 이런 영화들이 더 많이 나와 사회적 인식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또 아이들의 뛰어난 세상 적응력과 자연이 안겨준 본능적 치유력으로 그들이 오히려 힘들어하는 어머니들을 위로한다고.

"아이가, 제가 듣지 못한다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알더라구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면 저를 톡톡 치고 손짓 발짓으로 말을 해요. 또 둘째애가 생기니까 제 배에다 대고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들려줬어요."

이 영화 때문에 애를 낳기로 결심했다고 아직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일을, 단지 사회적 중압감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왜 여자만 애를 낳느라 고생해야 해? 하는 유아적 방식의 질문 제기로만 바라보았던 내게 장애 여성들의 힘겨운 출산과 육아기는 분명 무언가를 가르쳐 주었다.

역사적 책임을 운운하던 남자들의 알량한 논리보다 훨씬 더 탄탄했던 이들의 정서적 설득이 저출산 시대 나와 같은 범죄자들에게는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제7회 서울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경선 3부문에 나온 이수경 감독의 이 영화는 4월 13일 오후 6시 아트레온 1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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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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