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중국을 꺾고 아시안컵 2연패 달성에 성공했다.

7일 베이징 노동자 경기장에서 벌어진 2004 아시안컵 결승전, 일본은 중국과 전반전을 1:1로 마친 뒤 행운의 핸들링성 골과 로스타임에 터진 쐐기골로 3:1로 승리하며 아시아 축구 최고봉에 올랐다.

반면 홈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아시안컵 첫 우승을 바라보았던 중국은 세기와 노련미에서 부족함을 드러내며 아쉽게 우승컵을 내 주고 말았다.

6만여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중국과 일본은 전반 초반부터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주고 받았다. 홈 팬들의 열띤 성원을 받으며 경기에 임하던 중국은 전반 8분 리진위의 위협적인 헤딩슛이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가며 아쉽게 선제골 찬스를 놓쳤다.

일본은 전반 22분, 나카무라 순스케가 왼쪽 미드필드 지역에서 차 올린 프리킥을 반대편에 있던 스즈키가 헤딩으로 문전 중앙으로 연결했고 달려들던 후쿠니시가 헤딩골을 만들어 내며 경기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드는 그리 오래가지 앉았다. 중국은 후반 30분 얀 송이 왼쪽 측면 돌파 후 수비수 2명을 제치며 아크 부근의 리밍에게 볼을 건네주었고 리밍은 정확하게 왼발을 갖다대며 일본 골네트를 흔들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던 후반 20분, 약간은 엉뚱하게 골이 터졌다. 오른쪽 코너킥 찬스에서 차 올린 나카무라의 낮고 빠른 볼이 수비수의 머리를 스친 뒤 뒤에서 달려오던 나카다 코지의 팔에 맞고 들어간 것. 하지만 주심과 부심이 그 상황을 보지 못한 듯 골을 인정했고 중국 선수들도 골키퍼가 잠시 항의한 것 말고는 순순히 판정을 받아들였다.

한골을 뒤지기 시작한 중국은 후반 23분 순지하이를 교체투입하며 동점을 노렸다. 하지만 일본의 잘 짜여진 수비망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하였고 후반 27분과 32분 얻은 결정적인 찬스가 가와구치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며 동점골을 얻는데 실패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중국은 다급한 나머지 무리한 개인돌파와 고의적인 반칙을 되풀이하며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후반 46분 나카무라의 공간패스를 이어받은 타마다에게 한 골을 더 내주며 사실상 패배를 확정지었다.

한편 중국 국민들의 강한 반일감정으로 인한 불상사를 우려했었던 것과는 달리 결승전이 진행되는 동안 경기장 안팎에서 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일본의 핸드링성 골이 나오고 중국의 패배가 확정된 다음에도 중국 관중들과 선수들은 차분히 패배를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명암 엇갈린 양 팀 키플레이어

일본은 이번 아시안 컵을 맞아 올림픽 대표선수들(오노 신지 외)과 해외파 선수들(나카타, 이나모토)의 불참으로 인해 전력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일본팀의 중심에 서서 우승까지 팀을 이끈 선수가 바로 나카무라 순스케였다.

2002월드컵에서 트루시에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하며 아쉬움을 겪기도 했었지만 이번 아시안컵을 통하여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예선 1차전 오만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이끈 나카무라는 태국과의 경기(4:1)에서도 한 골을 터트렸고 요르단과의 8강전에서 프리킥으로 스즈키의 동점골을 어시스트 하며 팀의 4강행을 이끌었다. 안정된 경기운영과 넓은 시야를 겸비한 나카무라 순스케는 정확한 킥능력을 바탕으로 팀내 대부분의 세트플레이를 담당했다.

중국이 결승까지 진출하는 동안 팀의 공격을 이끌며 중심이 되어 준 선수는 1860뮌헨 소속의 야오 지아이였다. 중국팀의 공격형 미드필드에 포진한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 리밍과 함게 6경기를 모두 출전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예선 말레이시아 전에서 2골을 터트리며 활약한 그는 이란과의 4강전에서 선제골을 성공시킨 뒤 후반전에는 과격한 액션으로 이란 사타르 자레를 퇴장시키며 팀이 승리하는데 1등(?)공신이 되었다.

결승전, 이 두 플레이어의 활약은 대조적이었다. 나카무라는 자신의 프리킥과 코너킥을 통해 두 개의 골을 만들어 냈고, 경기 종료직전에 다시 한번 멋진 쓰루패스로 3번 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반면 중국의 공격을 이끌어야 했던 샤오 지아이는 경기 내내 화면에도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활약이 미미했다. 특히 후반전 한 골이 뒤진 후부터는 공격의 맥을 전혀 잡아주지 못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키플레이어의 활약에서부터 양 팀의 승부는 어느정도 갈리기 시작했고 우승컵은 나카무라의 일본이 차지했다.

중국 관중들 패배 불구 차분... '불상사' 기우였나

(베이징=연합뉴스) 박기성 특파원 = 경기장의 열기는 높았지만 우려했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7일 저녁 중국팀과 일본팀 간의 아시안컵 축구 결승 경기가 열린 중국 베이징(北京)시 한복판의 궁런(工人)체육관 주변은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응원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오성홍기(五星紅旗)의 물결 속에 막대풍선과 나팔 등 응원도구를 손에 든 추미(球迷)들이 몰려들었고 경기장 일대 도로마다 차량통행이 통제됐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과 함께 6만여명의 관중들로 꽉 메워진 경기장 스탠드에서는 "자여우(加油)"를 외치는 관중들의 함성이 메아리쳤으나 열광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경기결과는 1대3으로 중국팀의 완패였다.

후반 인저리 타임에서 쐐기골을 허용하자 중국 관중들은 풀이 죽었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관중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경기장은 텅 빌 때까지 돌발적인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일부 중국 열성팬들의 추태를 놓고 양국 언론이 맞서고 정치인들까지 나서는 등 '축구전쟁'의 전운마저 감돌았지만 결국 기우였던 것으로 결론난 셈이다.

어찌 된 일일까. 베이징 시민들의 자존심이 만들어 낸 질서였을까.

일본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경의를 표하고 스탠드 한쪽에 자리잡은 1천500여명의 일본 응원단에게 쓰레기봉투를 던지지 않은 것이 그들의 자존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장 안팎의 질서유지를 위해 2만명의 군경이 시내 곳곳에 배치됐고 경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관중들은 속히 귀가하라"는 안내방송이 울려퍼지면서 당국의 통제가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다가섰다.

이날 각 언론은 일제히 '원밍(文明.질서와 같은 공중도덕)'을 외쳤고 새로 설치된 경기장내 전광판에도 같은 글귀가 수도 없이 반복해서 새겨졌다.

베이징 시민들의 뇌리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톈안먼(天安門) 사태에서 보았던 엄청난 공권력이 이들을 내리누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의 표정에서는 분명 개혁.개방 이후 달라진 여유를 읽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축구를 스포츠로 즐기는 순수한 마음이 서서히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보았다면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날 경기장에서 보인 그들의 태도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온 질서의식이라면 아전인수식 역사왜곡으로 인한 이웃 나라와의 마찰도 머지 않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2004-08-08 01:3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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