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에서 한국을 본다면 임권택 영화와 이창동 영화로 압축되는 지형도가 그려지고 있다. 이 둘 중에 어느 쪽이 한국 영화의 방향성인가

일단 「오아시스」가 제59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베네치아 59'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또한「오아시스」는 국제영화평론가협회가 수여하는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FIPRESCI Award), 젊은 영화인 심사위원단이 수여하는 미래의 영화상(Cinema Verine Prize), 전그리스도교회상(Ecumenical Prize)도 수상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많은 보도에서 같이 포함되는 내용은 임권택 감독의 수상 이야기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최우수여우 연기상을 수상한 이후 15년만에 여배우가 수상했다거나 베니스, 칸, 베를린 등 3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기는 지난 5월의 임권택 감독 이후 두번째라거나 하는 말들이다. 이제 둘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필자는 하니리포터 2002년 5월 27일자에서 임권택 영화가 과연 우리가 가야할 영화인가 라는 요지의 글을 적은 적이 있다. 당시 보도 미디어는 칸영화제의 수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고 이를 세계가 우리 영화를 인정이나 한 것이고 임권택 영화가 우리가 영화의 앞길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 이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 글이었다. 이 글이 나가고 난 이후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막상 유럽에서 실제로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분들은 오히려 필자의 견해에 동의하는 편지를 보내오곤 했다.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논의의 연장이다. 임권택의 영화세계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 한계를 지적하고 다양하고 현실적인 요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임권택의 영화보다는 이창동의 영화 세계가 오히려 우리 영화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단지 이창동이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그리고 오아시스라는 세개의 영화로 이른바 세계적인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다.

임권택 감독이 동양적인 색채를 서양인의 구미를 자극하는 형식에 집착하여 과거에 매몰 되어 있는 것은 동시대, 우리 삶의 모순과 다양한 고민들을 놓치게 된다. 이는 현시대의 세계인들의 삶과 고민들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 이른바 임권택 감독의 한계이다.

임권택 감독의 최근 작품들은 이러한 면에서 도피성의 특성을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상을 받기 위한 현실의 도피로 비추어졌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에서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국내 관객들은 벌써부터 외면했다. 그것은 국내 흥행 참패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흥행 성공이 훌륭한 영화라는 도식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눈은 정확한 면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창동의 예를 들어보자. 그의 영화,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그리고 오아시스는 항상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작품성도 매우 훌륭했다. 그래서 갈수록 그의 영화를 대중은 신뢰하고 있다. 그의 영화가 이렇게 흥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모순에서 도피하지 않고 치열한 문제 의식과 그것을 고민하게 그리고 공유하게 하는 형상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대중들은 간파하고 있다.

이창동의 영화 오아시스는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종두와 육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공주사이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 둘은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적응이라는 단어에서는 거리가 먼 이른바 아웃사이더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무거운 지층이다.

이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우리 시대 우리 시대의 삶, 그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이며 모순이자 그를 극복하고자 하는 갈망이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우리나라 우리 사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 모두가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현실과 정서와 사고에 일치하는 것이다.

동양적인 색채를 가지고 박물 장수처럼 진기한 듯이 뭔가 그러듯한 정신적인 무엇인가가 있는 듯이 만드는 영화를 가지고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식의 접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상을 하나 받는 것이 우리 영화가 갈 길만은 아니다.

우리 시대의 우리 삶, 사람살이 그리고 그에 따르는 모순과 갈망에 천착하는 것은 특수한 우리의 모습 이지만 그것은 우리만의 특수성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과거나 허구적인 동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반영태인 지금에 있기도 하다. 그것은 세계의 보편적인 고민이자 모순이며 이에 대한 공유와 극복 의지다. 이 때문에 이번 이창동 영화는 수상폭이 매우 넓은 것이다. 이창동의 수상은 특수성을 통해 보편성을 추구해온 것에 대한 세계 영화인들의 공유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영화가 가야할 길은 이러한 특수성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특수성을 통해 특수성만을 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과거를 통해 현재를 재현, 투영하는 것은 분면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적인 길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까지는 현재를 투영하기보다는 과거에 함몰되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모순, 고민 그리고 그것이 세계와 대중과 어떻게 지금 연결되는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는 것이 한국 영화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창동 영화와 수상에 찬사를 보낸다.

그럼에도 이창동 영화가 그러한 방향성에 함몰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임권택 영화가 보여 준 길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권택 영화도 처음에는 그렇게 출발하지 않았는가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에 송고한 글입니다.

2002-09-09 14:2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하니리포터에 송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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