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닉슨'에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앤서니 홉킨스 분)은 백악관에 걸린 존 F. 케네디의 초상화를 보며 이렇게 탄식한다.
"They look at you and see what they want to be. They look at me and see what they are. (사람들은 당신을 볼 때 자신들의 미래를 본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에는 자신들의 현재를 본다.)"
상황은 다르지만, '흥행 마술사' 스티븐 스필버그도 2년전 타계한 스탠리 큐브릭에 대해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모양이다. 그가 3년만에 만든 새 영화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는 큐브릭의 체취가 진하게 묻어나온다.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던 큐브릭은 1951년 처음 메가폰을 잡은 이후 주가가 상승하는 데 비례해서 작품을 만드는 제작기간을 더 더욱 늘린 것으로 유명하다. 잭 니콜슨이 나오는 기괴한 공포물 '샤이닝'에서 베트남전을 풍자한 '풀 메탈 자켓'까지 가는 데는 무려 7년이 걸렸다.
아직도 평가가 분분한 '아이즈 와이드 셧'을 제외하고 그가 일생 동안 장르를 넘나들며 만든 16편의 영화들은 모두 해당 장르에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로 평가된다.
큐브릭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우상이라면, 스필버그는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우상이다. 오늘날 영화를 문화산업의 대명사로 키운 장본인은 이른바 '블록버스터' 선호 분위기를 조장한 스필버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모두가 좋아할 영화를 만드는 방법을 안다"고 말하는 스필버그의 남은 목표는 그 자신을 히치콕이나 큐브릭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전쟁'이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 '컬러 퍼플'이나 '태양의 제국', '아미스타드' 등을 만든 것은 이같은 '거장 콤플렉스'와 떼어놓을 수 없다. 주제로 스타일을 압도해버리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미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쉰들러 리스트'로 흥행과 비평의 양대 산맥에 우뚝 서기도 했다.
큐브릭의 미완성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A.I.' 역시 이같은 행보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앞서의 '돈 안 되는 작품들'이 특수효과의 냄새를 지워 다른 흥행작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면, 'A.I'에서는 특수효과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진다.
파트I은 온실효과로 빙하가 녹고 도시들이 물에 잠긴 미래의 지구를 보여준다. 미래의 지구에서는 자원이 고갈돼서 가구당 출산이 1명으로 제한된 상황이다. 헨리와 모니카 스윈튼 부부는 불치병에 걸려 냉동상태로 잠든 아들을 대신해 '감정이 있는 로봇' 데이빗(헤일리 조엘 오스먼트)을 입양하게 된다. 처음 로봇을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모니카도 데이빗으로 하여금 그녀를 사랑하도록 프로그램하여 데이빗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아들 마틴(제이크 토머스)이 퇴원하면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인간(스윈튼 부부)에게 오로지 사랑을 주도록 프로그램된 로봇(데이빗)이지만, 문제는 인간이 로봇의 감정에 져야할 책임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 결국 모니카는 또 다른 수퍼토이(supertoy) '테디 베어'와 함께 데이빗을 숲에 버린다.
파트II에서 숲에 버려진 데이빗은 '엄마'로부터 들은 피노키오 얘기를 떠올리며 진짜 어린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숲을 헤매던 데이빗은 '로봇 지골로(남창)' 조(주드 로)를 만나 해답을 찾기 위해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된다.
라스베가스를 연상케 하는 '루즈 시티'의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며 여성들에게 성적 향응을 제공하는 조는 어느 날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도망다닌다. 데이빗은 로봇 폐기처리장에서 조와 함께 붙들려 '처형'될 위기에 몰리다 데이빗을 동정하는 관중들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둘은 물에 잠긴 뉴욕까지 찾아가지만, 당대에 해답을 찾지 못한다.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난 후 빙하기에 재생된 데이빗은 과학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사랑을 찾게 된다.
데이빗을 열연한 오스먼트의 연기가 전반을 관통하는 영화는 파트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한 스필버그의 배려가 깔려있다. 미래의 후손들이 로봇을 입양하며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담은 파트I은 분명 큐브릭의 솜씨이다.
파트II는 미래에 대한 비관을 짙게 깔고 있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비교할 만하다. 심지어 로봇이 처형당하는 광경을 즐기는 스타디움은 리들리 스콧의 최근작 '글래디에이터'에서 선보인 고대 로마시대 경기장을 연상케 한다.
파트III에서 스필버그는 자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PG-13'이라는 등급을 생각하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특수효과를 조금 더 집어넣고, '마음을 고쳐먹은' 스윈튼 부부가 타락의 도시에서 데이빗을 다시 찾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화는 '로봇판 스튜어트 리틀'로 귀결됐을 것이다.
스필버그는 '로봇을 동정하는 인간' 위주의 억지 해결보다는 영화 초반에 던져지는 “천지창조의 순간에 신도 아담이 그를 섬기고 사랑하도록 창조하지 않았는가"라는 하비 박사(윌리엄 허트)의 냉소에 더 귀기울인다. 스필버그가 쉬운 길을 택했다면, 큐브릭의 추종자들로부터 "장사꾼 스필버그가 영화를 망쳐놨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글썽일 듯할 데이빗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영화는 조금 더 복잡하게 흘러간다. 나중에 관람할 사람을 위해 디테일을 얘기할 수 없지만, 전작 '미지와의 조우', 'E.T'에 나왔던, '음울한 인류에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주는 외계인들'이 다시 등장한다. 이해가 안 가는 관객들을 위해 친절한 나레이션이 후반부에 곁들여지지만, 영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긴 상영시간(2시간25분)을 느긋하게 따라가는 '넓은 마음'도 필요할 것 같다. 비슷한 주제를 다뤘지만, 다소 밋밋한 평가를 받았던 '바이 센테니얼 맨'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싶다.
어쨌든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비교적 겸손한, '또 다른 스필버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쥬라기 공원3'는 후배 감독에게 맡기고 제작자로 뒷전에 앉는 대신 새로운 색깔의 SF물의 연출에 매달린 그의 노력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너무 빠르게 성공한 그에 대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흥행'과 '비평' 모두를 붙들려는 노력은 큐브릭의 완벽주의에 비견될 만하다.
'A.I.(Artificial Intelligence)'는 301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6월 마지막 주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섰다. 전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3년전 306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비슷한 스타트를 보인 셈이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PG-13이라는 등급에도 불구하고, 'A.I'의 관람객 80% 이상이 25세이상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가 영화를 본 1일(일요일) 오후에도 50대 이상의 노년층 커플들이 극장 안을 가득 메우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라이언...'은 관객들의 입소문속에 2억 달러 고지를 넘어선 바 있는데, 1억 달러의 예산이 들어간 'A.I.'가 본전을 뽑기 위해서는 역시 개봉 2주째의 반응이 관건이 될 전망. 'A.I'는 한국에서는 8월 11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지난 주 1위로 데뷔, 흥행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분노의 질주(Fast and the Furious)'는 50%나 흥행이 감소한 2천만 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LA의 폭주족들을 담은 이 영화는 7780만 달러의 총수입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적어도 제작비(3800만 달러)의 세 배가 넘는 수입을 올릴 것으로 보여 제작비 대비 최고 흥행 수입을 올린 영화로 등극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동 영화에 악역으로 출연한 한국계 2세 릭 윤은 출연작의 흥행 성공이 알려지자 유니버설과 워너 브라더스, 소니로부터 각각 출연제의를 받고 협상에 들어간 상태. 연기력과 지명도, 배역의 비중 등을 떠나 한 작품의 흥행수입이 할리우드 배우들의 커리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주 최대 낙폭인 51%를 기록하며 980만 달러(4위)를 벌어들인 '툼레이더'는 총수입 1억 달러를 넘어섰다. (1억120만 달러) 감독 데뷔작 '보이즈 앤 후드'의 10년만의 속편으로 알려진 존 싱글턴 감독의 '베이비 보이'는 흑인 커뮤니티의 열광적인 지지속에 860만 달러로 5위를 차지했다.
가장 적은 낙폭(32%)을 기록한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슈렉'(7위)은 2억2750만 달러로, 디즈니의 알라딘(2억1700만 달러)을 제치고 애니메이션 사상 3번째로 높은 수입을 올린 영화로 올라섰다. 커스턴 던스트와 제이 헤르난데스를 기용, 백인과 라틴계의 인종을 넘어선 사랑을 그린 로맨스영화 'Crazy/Beautiful'은 450만 달러의 저조한 수입으로 8위에 데뷔했다.
다음은 이번 주 박스 오피스 순위. ( )는 지난 주 순위, +는 데뷔작.
1 (+) A.I. Artificial Intelligence .. $30.1 million
2 (1) The Fast and the Furious ...... $20.0 million
3 (2) Dr. Dolittle 2 ................ $15.4 million
4 (3) Lara Croft: Tomb Raider ....... $ 9.8 million
5 (+) Baby Boy ...................... $ 8.6 million
6 (4) Atlantis: The Lost Empire ..... $ 7.8 million
7 (5) Shrek ......................... $ 7.1 million
8 (+) Crazy/Beautiful ............... $ 4.5 million
9 (7) Pearl Harbor .................. $ 4.4 million
10 (6) Swordfish .................... $ 4.0 million 2001-07-02 14:2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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