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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북미 박스오피스 순위는 놀라움과 함께 한국인들에게 묘한 쾌감을 안겨줬다. 세간의 예상을 깨고 한국계 2세 릭 윤(한국이름 윤성식, 만 29세)이 '비중있는 조역'으로 출연한 액션영화 '패스트 앤 퓨리어스(The Fast and Furious)'가 4160만 달러라는 경이적인 수입으로 1위에 올라섰다.
당초 1위로는 짐승들과 대화를 나누는 의사를 다룬, 에디 머피의 코미디 '닥터 두리틀2'가 점쳐졌다. 그러나 7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닥터 두리틀 2'는 전작이 3년전 기록한 개봉기록(2900만 달러)에 못 미치는 2670만 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전편은 1억4천만 달러의 총수입을 올렸었다.
처음에 '주연'이라고 떠들썩하게 와전됐던 데뷔작 '삼나무에 내리는 눈(Snow Falling on Cedars)'의 부진을 생각하면 릭 윤의 '화려한 복귀'는 눈부시기까지 하다. 36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삼나무...'는 1400만 달러대의 총수입에 그쳤지만, '패스트 앤 퓨리어스'는 개봉 첫 주에 제작비(3800만 달러)를 뽑아내는 괴력을 과시했다.
'패스트 앤 퓨리어스'는 LA를 무대로 하는 폭주족들의 이야기다. 운수 트럭을 습격, 가전제품들을 빼돌리는 갱단을 추적하기 위해 신출내기 경관 브라이언 스핀들러(폴 워커)가 폭주족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 분) 일당에 가담한다. 그러나 그는 도미닉의 여동생 미아(조나다 브류스터)와 사랑에 빠지고, 도미닉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돼 자신의 임무와의 사이에 갈등을 느끼게 된다.
영화에서 릭 윤은 FBI와 경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중국계 폭주족 두목 쟈니 트란역을 맡았다. 영화 포스터에는 빈 디젤(Vin Diesel), 폴 워커 등 4명의 모습만이 나오지만, 그가 선보인 악역 연기는 '리셀웨펀 4'의 이연걸을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 그는 불과 다섯 장면에 등장하지만, 가족들과 단란히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 특공대에 분노를 터뜨리며 끌려가는 '대사 없는 드라마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릭 윤이 한국에 처음 알려진 계기는 1999년 1월 25일자 '뉴스위크' 선정 '연예계 뉴페이스' 8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면서부터. 시쳇말로 그는 하룻밤 사이 스타가 됐다. 1999년에만 수 차례 한국을 내왕, 수많은 인터뷰와 방송 출연에 모 자동차와 이동통신의 CF를 찍기도 했다.
그러나 데뷔작 '삼나무...'가 실패하면서 그는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데뷔작에서의 비중도 '주역이다', '주역은 아니라도 버금가는 조역'이라는 논쟁이 무색하게 촬영을 거듭하면서 대폭 줄어들었다.
그의 데뷔 초기 낙종을 한 모 신문사의 영화 담당 기자는 '삼나무...'의 한국 개봉 당시 그의 연기에 대해 "이미지가 기계적이다. 그가 아니라 동양인 조역 그 누구를 기용했어도 영화의 흐름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배역 자체의 비중도 낮고, 다만 '동양인', 서양인으로서는 전혀 '속을 알 수 없는' 한 동양남자의 굳은 표정만이 있을 뿐"이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확인해줄 수 없다'는 그의 부인에도 불구, 잘 나가던 시절 나돌던 '미션 임파서블2'과 '로미오 머스트 다이'의 출연 건도 결국 불발에 그쳤다. 떠들썩한 등장에 대한 거품이 빠지면서 그의 모습도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던 그는 '패스트 앤 퓨리어스'에 등장하기 전 미주 중앙일보(la.joins.com)와 가진 인터뷰에서 '18개월간의 칩거'에 대해 "좋은 역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고 밝혔다. 태권도 등 각종 스포츠에 능한 그에게 몇 편의 무술영화 출연 제의도 들어왔지만, 캐릭터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또 한인이라는 사실이 부담이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외교적이 돼야 한다. 배역 선정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앞으로 할리웃에 진출할 한인 배우들과 아시아계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잘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할리웃에선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가족과 한인사회, 그리고 한국이 모두 자랑스러워 할 일을 하고 싶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영향력이 더 커질수록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두 번째 출연작 '패스트 앤 퓨리어스'. 얼핏 무명배우들로만 채워진 것으로 보이는 '패스트 앤 퓨리어스'는 잘 계산된 액션 영화이다. '데이라잇'(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으로 좌절을 맛봤지만, 80년대 TV 형사물 '마이애미 바이스'로 액션 연출에 일가견을 보여준 롭 코헨이 감독을 맡았다. 롭 코헨의 성공은 유사한 주제(카레이싱)를 담은 스탤론의 '드리번'이 신통찮은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배역은 다인종 사회 미국의 축소판인 LA의 지형을 반영해서 백인(폴 워커)과 흑인(빈 디젤), 히스패닉(조나다 브류스터와 미셸 로드리게즈)에 아시아계(릭 윤)의 조합을 이뤘다. 실제 영화 관람객은 인종별로 골고루 분산(백인 50%, 히스패닉 24%, 아시아계 11%, 흑인 10%)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작사인 유니버셜은 이 영화를 당초 3월에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몇 차례의 시사회를 거친 뒤 이 영화가 방학을 맞은 젊은이들의 호응 속에 여름 블록버스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으로 판단, '6월 개봉'을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역들 중 가장 스폿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빈 디젤이지만, 릭 윤도 아시아계 배우들이 살아남기 힘든 할리웃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북미에서 아시아계, 특히 남성은 '키 작고 유약한 공부벌레' 아니면 '눈이 째지고 속을 알 수 없는 갱단'이라는 극단적인 이미지로 양분되어 있다. 영화 속 아시아계 남성들의 이미지는 이같은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아시아계 배우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결국 연기력뿐이지만, 돌아올 배역도 한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한 현재 할리웃에서 인정받는 아시아 배우인 성룡, 주윤발, 이연걸은 모두 중국계이다. 이들은 할리웃에 진출하기 전부터 동아시아 지역에서 인기를 누렸고, 퀸틴 타란티노 같은 소수 매니아들의 지원 속에 북미에서 조금씩 지명도를 쌓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들중 선 굵은 드라마 연기를 펼친 경우는 '애나 앤 더 킹'의 주윤발 정도이고, 성룡과 이연걸은 홍콩에서 하던 액션 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릭 윤은 모국에서의 걸출한 백그라운드 없이 연기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받은 최초의 한인배우이다. (오순택의 개척자로서의 역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 영화사가 제작한 데뷔작에서 드라마 연기를 펼쳤고, 두 번째 출연작 역시 데뷔작과 같은 유니버셜이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데뷔 초기 존경하는 인물로 '징기스칸'을 꼽았던 릭 윤은 역시 할리웃의 한인 제작자 패트릭 최와 함께 다음 작품 '펜스(The Fence)'를 만든다. "아시아계도 흥행에 성공한다.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지난 주 높은 기대속에 개봉됐던 '라라 크로프트: 툼레이더'는 '패스트 앤 퓨리어스'의 등장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부정적인 입소문의 확산 속에 '툼레이더'는 전주에 비해 무려 58%의 관객이 빠지며 2020만 달러로 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툼레이더'는 첫주의 흥행 열풍에 힘입어 열흘간 842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4위와 5위는 애니메이션 라이벌 디즈니와 드림웍스가 각각 차지했다. 전주에 비해 35%의 관객이 빠진 1320만 달러의 '애틀란티스'는 최종적으로 제작비(9천만 달러)에 근접한 총수입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16.4%의 소폭 하락 속에 관객 몰이를 이어가고 있는 '슈렉'은 2억1580만 달러의 총수입을 올려 작년 여름 최고 흥행작인 '미션 임파서블 2'의 기록(2억1540만 달러)을 경신했다.
탑10의 총수입은 1억3780만 달러로, 작년 '미, 마이셀프 앤 아이린'과 재작년 '빅 대디'가 각각 2420만 달러, 4150만 달러로 1위 데뷔했던 시기에 비해 각각 46%, 10%의 수입 증가를 보였다.
다음은 이번 주 박스 오피스 순위. ( )는 지난 주 순위, +는 데뷔작.
1 (+) The Fast and the Furious .... $41.6 million
2 (+) Dr. Dolittle 2 .............. $26.7 million
3 (1) Lara Croft: Tomb Raider ..... $20.2 million
4 (2) Atlantis: The Lost Empire ... $13.2 million
5 (3) Shrek ....................... $11.0 million
6 (4) Swordfish ................... $ 7.7 million
7 (5) Pearl Harbor ................ $ 7.0 million
8 (8) Moulin Rouge ................ $ 3.8 million
9 (6) Evolution ................... $ 3.6 million
10(7) The Animal .................. $ 3.0 million
덧붙이는 글 | 참고로 릭 윤의 프로파일을 첨가합니다.
▲ 186cm, 65kg.
▲ 한국어: 알아듣기는 해도 말하는 데는 불편하다.
▲ 좋아하는 배우: 숀 코너리와 멜 깁슨. 그들이 맡았던 정보요원 역 희망.
▲ 여자친구: 미국 ABC 방송의 토크쇼 'The View'의 공동 MC 리사 링(중국계).
▲ 웹사이트: www.rickyune.com
▲ 1971년 8월 22일 서울생
▲ 1972년 부모와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으로 이민
▲ 1985년 세인트 존스 군사학교 (중학교 과정) 졸업
▲ 1989년 굿 카운슬 가톨릭 고등학교 졸업
▲ 1992년 올림픽 태권도 미국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메릴랜드 주 대표)
▲ 1994년 펜실베이니아대 워튼 경영대학원 졸업
▲ 1997년 아시아계 최초로 베르사체 모델로 발탁.
▲ 1998년 말 LA 베벌리힐스로 이사,
▲ 1999년 뉴스위크지의 '99년 뉴페이스'에 선정, 한국의 자동차. 이동통신CF에 출연.
다음주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공지능(A.I)'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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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5 1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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