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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필자는 영화 '툼레이더(Lara Croft: Tomb Raider)'와 '애틀란티스 (Atlantis: The Lost Empire)'를 감상했다. 이례적으로 두 편을 보게 된 것은 '모험 액션'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가진 영화, 그것도 여름 시즌에 개봉된 영화들 중 어느 한 쪽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부담이 작용한 게 사실이다.
'툼레이더'는 알다시피 컴퓨터 게임을 영화화한다는 얘기가 나올 때부터 인구에 회자된 작품. 게임 매니아들에게는 4편 이후로는 인기가 시들해진 게임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가 영화로 부활된다는 사실이 반가웠을 터이고, 게임에 별 취미가 없는 사람들도 '본 컬렉터'와 '60초'로 친숙해진 안젤리나 졸리가 '여자 인디애나 존스'로 나오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영국 런던에 사는 라라 크로프트는 막대한 유산의 상속녀이자 고고학적 지식과 각종 무술, 무기에 능한, 매력적인 독신녀이다. 16년 전 유적 답사중 사라진 아버지 리처드 크로프트 경(졸리의 실제 아버지 존 보이트가 잠시 출연한다)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속에 늘 품어온 그녀는 어느 날 꿈속의 계시로 집안에 아버지가 숨겨놓은 보물 중 시간과 우주를 여는 열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열쇠를 찾던 수수께끼의 비밀 결사 '일루머너티(Illuminati)'가 보물을 빼앗으려 하고, 라라는 이제 일루머너티의 대리인 맨프레드 파월 일당에 맞서 싸우기 위해 캄보디아와 시베리아로 모험을 떠난다.
막상 막 구워져 나온 따끈따끈한 '툼레이더'를 접한 필자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은 게임에 비해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고, 게임 속의 캐릭터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연기력까지 뒷받침된 졸리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화에 만족할 수 있을 테지만, 순수한 영화적 재미를 기대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서운했던 것이 사실이다.
'좋은 액션영화'의 공식은 최소한의 설득력 있는 스토리와 강도 높은 액션 시퀀스의 적절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액션 시퀀스는 리얼하기보다는 서커스에 가까운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그러나 영화인 이상 아무리 액션이 훌륭하다고 해도 스토리가 함몰될 수는 없는 법. 과도한 액션으로 땜질하는 영화를 보며 관람 내내 지루함을 느끼다가 '그래도 특수효과는 괜찮았어'하고 자족하다가 나중에 스토리를 전혀 기억 못해서 화가 난 경우가 누구에게나 있을 터이다.
유감스럽게도 '툼레이더'는 필자에게는 이 같은 범주에 들어갈 영화다. 영화는 몸에 착 달라붙는 탱크 탑에 초미니 반바지를 입고 쌍권총을 휘두르는 안젤리나 졸리의 풍만한 가슴으로 기억될 것이다(영화를 볼 때 배우보다는 액션에 더 기대를 많이 걸었었지만).
반면, 각 인물들의 개성은 정작 아무 것도 설명 못하는 원작 게임에 충실하기 위한 듯 죽어 있는 느낌. 비밀 결사 '일루머너티'는 게임에서는 한번도 언급이 되지 않은 조직인데, 그토록 정력을 들여 시간과 우주를 지배해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라라를 돕는 집사와 컴퓨터 테크니션 역의 두 배우도 크리스 배리와 노아 테일러도 화면 속에 어색하게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인상적인 장면들도 있다. 영화 중반 '일루머너티' 일당이 보물을 빼앗으려고 라라의 집에 침입했을 때 마침 집안에서 번지점프로 공중 유영을 즐기던 라라가 악당들의 총을 피해 공중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와호장룡'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툼레이더'는 영화라기보다는 스테이지마다 파괴의 강도를 높여 가는 게임의 도식에 충실하다.
이 점이 게임에 영감을 준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와 '툼레이더'의 어쩔 수 없는 차이일 것이다. 한편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더 어린 세대들에게 모험의 꿈을 심어주는 걸작으로 남지만, 또 다른 한편은 여배우의 가슴으로 기억될 테니까.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애틀란티스'는 조금 더 '인디애나 존스'에 가까운 느낌이다. '인디애나 존스 4'가 애틀란티스를 소재로 할 것이라는 루머가 오래 전부터 나돈 가운데,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영역을 선점한 셈.
주인공 마일로 새치(마이클 J 폭스가 목소리 연기)는 대서양에 잠긴 잃어버린 문명 '애틀란티스'의 실존을 확신하는 문헌 연구가. 어느 날 자신의 할아버지와 인연을 맺었던 억만장자의 투자로 초대형 잠수함 '율리시즈'를 타고 대서양 바다 속을 탐사하게 된다. '율리시즈'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물고기 '리바이어던'의 공격을 받은 마일로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애틀란티스에 도착하지만, 곧 보물을 약탈하려는 탐험대장 루크와 그의 부관 헬가와 갈등을 빚게 된다. 여기에 애틀란티스를 지키려는 키다 공주와 마일로의 로맨스가 곁들여진다.
만화영화에 뮤지컬 요소를 도입하고, 그리스 신화와 중국 설화 등으로 소재를 확장해가던 디즈니도 상상력의 한계에 직면한 느낌이다. 미국적이지 않은 소재 차용과 뮤지컬의 조화라는 전략은 작년 말 '황제의 새 인생(Emperor's New Groove)'로 이미 실패를 맛봤다.
더구나 '애틀란티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나디아'와 '천공의 성 라퓨타'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기에 스토리 자체가 예상할 수 있는 방향(공주를 구하고 토착 문명을 구한다)으로 나아가고, 전통적인 관객층인 어린이들보다는 성인 취향의 분위기를 깔고 있다는 것도 흥행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거론된다.
정작 영화의 상상력이 개입해야 할 애틀란티스 주민들의 생활에 왜 파고들지 못했느냐는 의문은 마일로 일행과 애틀란티스 주민들의 비교 속에 쉽게 풀린다. 영화에서 마일로 일행의 애틀란티스 탐험기는 19-20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제3세계 침략사를 압축한다.
애틀란티스의 수정을 훔치려는 루크 대장은 처음 키다 공주에게 "우리는 평화롭게 왔다(We Come in Peace)"고 말하지만, 곧 본색을 드러낸다. 역사와 영화가 다른 부분은, 현실에서는 토착 문명이 제국주의의 손에 유린되지만, 영화 속에서는 마일로와 그에 감화된 '양심적인 제국주의자들'이 원주민들과 힘을 합해 사악한 제국주의를 무찌른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애틀란티스'는 여전히 오만한 제국주의자들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애틀란티스 문명을 연구해온 서양인 마일로는 고대 애틀란티스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반면, 키다 공주를 비롯한 애틀란티스의 후예들은 '문맹'이어서 그들의 비기(飛機)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정작 원주민들의 토착 문화를 잃어버린 게 한 장본인이 누구였는지는 제국주의의 역사가 증명해준다.
키다 공주가 납치될 때 루크 일당의 총부리에 위압당하는 주민들은 결국 마일로의 도움에 힘입어 공주를 구출해낸다. 서구인들이 말을 건넬 때까지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애틀란티스인의 모습은, 원주민들의 자율의지를 괄시하고 '교화 대상'으로 바라보는 19세기 제국주의자들의 시각이 21세기에도 계속 이어질 것을 시사한다.
'툼레이더' 역시 모험이 펼쳐지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유적 발굴에 동원되는 캄보디아인들의 모습은 '애틀란티스'의 그것에 다를 바 없다. 두 편 다 이런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선전 영화들은 아니지만, 북미인들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여름 시즌에 이런 시각이 담긴 영화들이 동시에 개봉됐다는 것은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툼레이더'는 30일, '애틀란티스'는 내달 14일에 한국에서 각각 개봉된다.
'툼레이더'는 이번 주 박스오피스에서 무려 4820만달러의 수입으로 1위에 올라선 것과 아울러 몇 가지 기록을 세웠다. PG-13 등급으로 3308개의 극장을 습격한 '툼레이더'는 제작사인 패러마운트에게 작년 '미션 임파서블2'(5780만달러) 이후 최대의 개봉 수입을 안겨줬다. 여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 4천만달러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 것도 작년 '미녀 삼총사'(4010만달러) 이후 처음이다.
이미 안젤리나 졸리가 2편의 속편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첫 주의 흥행 성공은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나, 금요일(1800만달러)에서 일요일(1300만달러)까지 갈수록 저조한 흥행성적을 보인 것은 이 작품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디즈니의 '애틀란티스'는 96년 '노틀담의 꼽추'(2100만달러), 97년 '헤라클레스'(2140만달러)와 엇비슷한 2040만 달러의 개봉 수입을 올렸다. 전작들이 1억달러 안팎의 총수입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8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애틀란티스'도 커다란 흥행 호조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반면, 개봉 5주째를 맞은 '슈렉'은 1290만달러로 3위를 지키며 총수입(1억9700만달러)에서 2주 앞서 개봉된 '미이라2'를 앞질렀다. '슈렉'의 선전은 디즈니가 자사의 최대 라이벌로 부각됐던 드림웍스에게 자신의 아성인 애니메이션에서 참패를 당한다는 일부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평단의 혹평속에 지난 주 1위에 올랐던 '스워드피시'는 122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4위로 주저앉았다. 6500만달러 예산의 '스워드피시'는 북미에서는 8천만달러 이내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탑 10 영화들의 총수입은 1억2560만달러로, 1년전 '샤프트'가 2170만달러로 1위 데뷔하고, 2년전 '타잔'이 3420만달러로 1위 데뷔한 시기에 비해 각각 33%, 2%의 흥행 수입 증가를 보였다.
다음은 이번 주 박스 오피스 순위. ( )는 지난 주 순위, +는 데뷔작.
1 (+) Lara Croft: Tomb Raider .............. $48.2 million
2(13) Atlantis: The Lost Empire ............ $20.4 million
3 (2) Shrek ................................ $12.9 million
4 (1) Swordfish ............................ $12.2 million
5 (3) Pearl Harbor ......................... $ 9.5 million
6 (4) Evolution ............................ $ 6.5 million
7 (5) The Animal ........................... $ 5.7 million
8 (6) Moulin Rouge ......................... $ 5.2 million
9 (7) What's The Worst That Could Happen? .. $ 2.8 million
10(8) The Mummy Returns .................... $ 2.4 million
덧붙이는 글 | 영화는 물론 재미가 최우선적인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하지만, 이번 주의 영화들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보니 영화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헐리우드의 한국화. 피할 수 없는 숙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에는 한 때 과대평가된 한인 배우 릭 윤이 출연하는 'Fast and Furious'가 개봉합니다. 영화를 보고, 그의 근황에 대해서도 전하도록 하죠.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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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8 0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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