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를 결정할 때, 관객들이 보통 따지게 되는 것.

어떤 배우가 출연하나. 누가 메가폰을 잡았나(때로는 제작자). 어떤 장르에 들어가는가. 여기에다가 조금 생각이 있는 관객이라면 제작비 규모를 따지기도 한다('진주만'은 단일 영화사 사상 최다 제작비 투여됐다는 사실이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요소중 하나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영화관에 어떤 영화가 걸리느냐 이다. 필자는 그런 곡절 속에 일부의 악평을 뒤로 한 채 '소드피시(Swordfish)'를 보게됐고, 영화는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타이틀의 원래 뜻은 '황새치'이지만, 한국 배급사들의 관행을 볼 때, 그같은 제명으로 한국에서 개봉할 것 같지는 않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존 트라볼타가 분한 개브리엘 시어가 커피숍에서 "헐리우드 영화의 문제가 뭔 줄 아냐? 엉터리 영화나 만들고 있다. 1975년 '개 같은 날의 오후' 이후 인질극을 다룬 영화들에서 진실은 사라졌다"는 자기고백(?)을 펼 때만 해도 도대체 무엇을 위한 영화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카메라는 곧이어 그에게 총구를 겨누는 FBI(미 연방수사국) 요원들과 폭탄을 몸에 걸친 채 떨고 있는 인질들의 모습을 잡는다.

개브리엘은 서툰 짓 말라는 듯 '원격조종 폭파스위치'를 집어들고, 본보기로 인질 한 명과 그 주위의 연방요원들을 '날려버린다'. 이 순간을 360도 슬로모션으로 잡은 폭파신은 98년 '아마겟돈'이후 가장 강렬한 액션 시퀀스(극장 안이 잠시 울리는 느낌을 받은 것도 오랜만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360도 회전 총격신을 담은 '매트릭스'의 제작자 조엘 실버의 작품이다.

'스워드피시'는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을 접고 영화 시작후 10분만에 클라이맥스로 곧바로 치달아 관객들의 흥미를 잡아끈다. 그렇다고 영화의 플롯이 관객들을 매혹시킬 정도라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해커' 스탠리 잡슨(휴 잭먼)은 인질극 4일전 정체불명의 여인 진저(할리 베리)의 방문을 받는다. 스탠리는 2년전 사이버 공간의 자유를 위협하는 FBI의 빅브라더 프로그램을 파괴한 혐의로 감옥에 갔다가 컴퓨터로부터 50야드 이내 접근하지 않는 조건으로 가석방된 불운한 해커. 너절한 트레일러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그의 바램은 딸 홀리와 재결합하는 것. 홀리는 알콜 중독자 전처와 포르노 영화감독인 의부와 살고 있다.

개브리엘과 만나기만 하는 조건으로 10만 달러를 준다는 진저의 제의를 받은 스탠리는 개브리엘을 만나고, 개브리엘은 그에게 자신의 계획에 가담하는 조건으로 1천만 달러의 사례비를 제의한다.

개브리엘은 부패한 우파 상원의원 라이즈먼(샘 셰퍼드)을 위해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온 CIA요원이었다. CIA를 떠난 그는 세계 각지의 반미테러리스트를 소탕하기 위한, '애국적인 프로젝트'를 수행코자 마약 단속국(DEA, Drug Enforcement Agency)이 은닉해온 90억달러의 비자금을 탈취할 구상을 하게 된다.

일견 황당하게 보이는 '스워드피시'의 플롯은 실제 있을 법한 가설에서 출발한다. 이미 "콜롬비아산 마약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취득한, 막대한 이익금을 DEA가 유령회사들을 차려서 돈 세탁하는 '스워드피시 작전'이 1980년대에 펼쳐졌다는 주장"을 담은 폭로 저서 '스워드피시'가 미국에서 발매된 바 있다.

제작자 조엘 실버와 감독 도미니크 세나의 콤비가 아니라면, 이 영화는 '매트릭스'와 '스피드'의 짬뽕보다는 '트래픽'에 가까울 수도 있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순수한 오락성으로 따지면, 영화는 여름 블록버스터로서의 충분한 흥행성을 담보하고 있다.

이미 '60초'에서 장대한 차량 추적신을 연출했던 세나 감독은 '60초'팀을 그대로 이끌고 심야 차량 총격신(극 전개상 분명 불필요한 부분이었다)과 은행 습격신을 맛깔스럽게 찍어냈다. 특히 '스피드'에서는 인질들이 실린 버스가 잠시 하늘에 붕 떴지만, '스워드피시'에서는 버스가 아예 대형 헬기에 실려 LA 상공을 나는 장관이 연출된다(제작진은 CG를 거의 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이른바 아카데미상에 이를 정도는 아니지만, 어색한 플롯을 가려줄 정도는 된다. 작년 '엑스맨'으로 헐리웃에 처음 데뷔했던 휴 잭먼은 멜 깁슨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호주 배우로 자리잡은 느낌. 언젠가는 명실상부한 대작의 주연을 맡아 뉴질랜드 출신의 러셀 크로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기대를 던진다.

휴 잭먼은 벤 애플릭에게 돌아갈 배역을 애플릭이 거절한 후 잡았다는 후문. '진주만'의 주연이 거절한 배역을 잡고 흥행배우로 발돋음하려는 잭먼과 애플릭의 희비 쌍곡선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싶다. '팜므 파탈(Femme Fatale)' 할리 베리는 연기보다는 수십만 달러를 더 받고 아주 짧은 순간 가슴을 드러냈다는 것으로 더 주목을 받았다(가슴 때문에 돈을 더 받다니...쩝).

굳이 한 가지 딴지를 걸자면, 해킹을 하는 스탠리의 타이핑이 '신의 손'으로 보이고, 해킹 과정이 프로그래밍 코드가 아니라 스크린세이버를 만드는 걸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반미 테러리스트들이 준동하는 원인을 시시콜콜히 따지기보다 "국가의 적들은 일단 쓸어버려야 하고, 그같은 일을 위해서는 정부의 검은 돈은 마음껏 탈취해도 된다"는 개브리엘 일당의 주장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스워드피시'는 비평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분명 '쓰레기 영화'다. 그러나 오락성을 놓고 볼 때는 분명 '봐 줄만한 쓰레기'다. '스워드피시'는 2주간 정상에 올랐던 '진주만'을 3위로 끌어내리고 1840만 달러의 수입으로 1위를 차지했다. 꼭 1년전에는 세나 감독의 '60초'가 2530만 달러의 수입으로 1위에 오른 바 있다.

존 트라볼타로서는 1999년 1월의 법정 드라마 '시빌 액션(A Civil Action)이후 첫 1위 데뷔작이고, 역대 출연작으로는 '페이스 오프'(97년, 2340만 달러)와 '장군의 딸'(2230만 달러) 이후 최고의 성적. 작년 '배틀필드'와 '럭키 넘버스'로 참패를 겪었던 트라볼타에게는 그에게 어울리는 영화를 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그러나 '스워드피시'는 1997년 6월의 '스피드 2'(1620만 달러)이후 가장 적은 수입으로 1위 데뷔한 것이어서 제작비 8천만 달러를 미국 내에서만 거둬들일 수 있을 지는 미지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슈렉'은 신작 2편의 개봉에도 불구, 3715개나 되는 개봉관 수에 힘입어 1710만 달러로 지난주에 이어 2위를 지켰다. 4주째 1억7700만 달러의 총수입을 올린 '슈렉'은 3위로 처진 진주만(총수입 1억4400만달러)에 대해 흥행결산에서 판정승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진주만은 현재의 저조한 흥행 추세로는 다른 경쟁작 '미이라2', '슈렉'과 달리 2억 달러 고지에 오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운석에 실려 지구(미국)에 떨어진 외계 생명체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의 코미디 '진화(Evolution)'은 1320만 달러의 수입으로 4위에 올랐다.

지난 주 3위로 개봉한 코미디언 롭 슈나이더의 '애니멀'은 980만 달러 수입을 올리며 2계단 하락. 역시 6550만 달러의 총수입을 올린 그의 전작 'Deuce Bigalow: Male Gigolo'에는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5천만 달러의 예산이 들어간 '물랭루즈'(760만 달러, 6위)도 평단의 지원사격에도 불구, 북미에서의 수입이 제작비에 못 미칠 것으로 보이고, 마틴 로렌스와 대니 드 비토의 코미디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What’s the Worst That Could Happen?)'도 59%나 관객이 빠지며 7위로 주저앉았다. '빅 마마의 집'과 '경찰서를 털어라'로 주가를 올렸던 마틴 로렌스의 코미디 연기도 한풀 꺾인 느낌.

다음 주에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애틀란티스'와 패러마운트의 액션대작 '툼레이더'가 맞대결을 벌인다.

다음은 이번 주 박스 오피스 순위. ( )는 지난 주 순위, +는 데뷔작.

1 (+) Swordfish ............................ $18.4 million
2 (2) Shrek ................................ $17.1 million
3 (1) Pearl Harbor ......................... $14.9 million
4 (+) Evolution ............................ $13.2 million
5 (3) The Animal ........................... $ 9.8 million
6 (4) Moulin Rouge ......................... $ 7.6 million
7 (5) What's the Worst That Could Happen?... $ 5.4 million
8 (6) The Mummy Returns .................... $ 4.2 million
9 (7) A Knight's Tale ...................... $ 1.7 million
10 (8) Bridget Jones's Diary ................$ 1.2 million

덧붙이는 글 | '스워드피시'의 출연진을 훑어보면, 은행 인질중에 Ann Travolta, Margaret Travolta, Sam Travolta 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하하, 이거 트라볼타 일가족이 총출동했군요.

여기에 개브리엘의 부하로 나와 영화 초반 사살 당하는 William Mapother는 탐 크루즈의 사촌으로, '미션 임파서블2'에서도 악당으로 나온 바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줄대기'는 어쩔 수 없는 느낌.

다음 주 개봉작 '애틀란티스'와 '툼레이더'는 두 편 모두 감상할 계획입니다. 기대해주십시오.

2001-06-11 11:0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스워드피시'의 출연진을 훑어보면, 은행 인질중에 Ann Travolta, Margaret Travolta, Sam Travolta 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하하, 이거 트라볼타 일가족이 총출동했군요.

여기에 개브리엘의 부하로 나와 영화 초반 사살 당하는 William Mapother는 탐 크루즈의 사촌으로, '미션 임파서블2'에서도 악당으로 나온 바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줄대기'는 어쩔 수 없는 느낌.

다음 주 개봉작 '애틀란티스'와 '툼레이더'는 두 편 모두 감상할 계획입니다. 기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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